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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chel Feb 28. 2023

알고 들으면 더 비극적인 5 중창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속 Quintet

'비극이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비극이 왜 비극적으로 느껴지냐니, 어리석은 질문일 수도 있겠다. 이에 알맞은 답은 비극의 역사나 요소를 검색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내가 원한 건 옳은 답이 아닌, 나만의 답이었다. 희극보다 비극에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는 나에게는 꽤 중요한 질문이기 때문에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대부분의 일은 결과나 결말을 예상하지 못한 채 마주했을 때 더 크게 와닿는 법이다. 예를 들어 중요한 시험결과를 앞둔 사람의 상황을 가정해 보자. 시험에 합격했으리라 믿으며 시험결과를 기다리는 것과 떨어졌을 경우를 미리 걱정하며 기다리는 것은 상반된 결말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시험에 당연히 합격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이유로 떨어진다면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크게 다가올 것이다. 반면 불합격을 예상하고 상심한 상태에서 뜻밖의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안도감에 더 큰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일말의 의심도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레 맞이하는 일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선사함과 동시에 한 사람을 처참하게 무너뜨릴 수도 있다.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불리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이 작품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한 채로 이상을 꿈꾸는 토니와 마리아, 제트파와 샤크파 그리고 아니타, 다섯 집단의 인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5 중창을 통해 동시에 각자 원하는 바를, 각각 다른 목소리로 노래한다.


그리고 작품 밖에서 그 인물들을 바라보는 나. 그들이 바라는 일들이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다 알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는 이미 예견된 비극적인 결말에 혼자 괴로울 뿐이다.





https://youtu.be/mFk782RkcG4


제트파
오늘 밤은 제트의 밤이 될 거야
오늘 밤, 제트의 방식대로 할 거야

샤크파
걔들을 놀라게 해 줄 거야 오늘 밤
반토막을 낼 거야 오늘 밤

아니타
아니타는 끓어오를 거야 오늘 밤
오늘 밤은 은밀하고 특별할 거야

토니
오늘 밤, 오늘 밤 내 사랑을 만나러 가
우릴 위해 별들은 제 자리에서 빛날 거야

마리아
오늘은 일 분이 한 시간 같아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가

<Tonight quintet> 中
*가사는 오리지널 버전 번역을 참고.



1막 하이라이트 장면의 5 중창 퀸텟. 제트파와 샤크파, 토니와 마리아 그리고 아니타 다섯 집단이 각자 원하는 목적을 동시에 노래하는 장면이다. 넘버 후반부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하나의 화음을 이루며 금관악기와 퍼커션 연주로 웅장함이 돋보이는 넘버이다.



서로 적대심에 가득 차있는 제트파와 샤크파는 그저 싸움 생각뿐이다. 어떻게 하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지만 궁리한다. 아니타는 싸우는 게 일상처럼 익숙한 샤크파의 리더이자 연인인 베르나르도가 싸움이 끝나고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토니와 마리아는 첫눈에 반한 서로를 생각하며 함께 맞이할 아름다운 밤을 기대한다.



넘버를 들어보면 사실 음악 자체는 전혀 슬프지 않다. 다만 상황과 맥락을 살펴본다면 이 넘버에서 슬픈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해 봤니 비 오는 날 보다 더 심해'라는 경쾌한 노래 속 가사처럼 말이다. 


당장 오늘 밤 각자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이렇게나 다르다니... 안타까운 동상이몽이 아닐 수 없다. 앞에서 말했듯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정정당당한 승부도, 연인과의 오붓한 시간도, 풋풋한 설렘도 아니다. 한 순간의 실수가 만든 비극적인 결말만이 소리 없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 이 장면을 보는 내내 든 생각은 '차라리 이 모든 게 자고 일어나면 사라질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비극이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 비극은 예상치 못한 사고처럼 갑자기 한 사람의 인생에 끼어들고 그에 따른 감정은 높은 파도가 휘몰아치듯 한 순간에 덮쳐오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기쁨과 같은 행복한 감정이든, 슬픔이나 비참함 같은 감정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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