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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chel Mar 12. 2023

쇼팽의 왈츠를 좋아하시나 봐요?

층간소음인 듯 아닌 소음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어딘가로부터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우리 집 위층 어딘가에는 피아니스트가 살고 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피아니스트는 작년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한 곡만 연주하고 있는데 그건 바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나오는 쇼팽의 왈츠 7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주보다는 연습에 가깝지만.)


*피아니스트는 쇼팽의 이름에서 빌려 C라고 하겠다.




https://youtu.be/HESwPzW3-BA


쇼팽의 왈츠 7번 Op.64 no.2 (2분 30초~)


고등학생 때 중국어 선생님이 보여주신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속 두 명의 인물이 숨 막히는 피아노 배틀을 할 때 흘러나오던 곡. 워낙 피아노 배틀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이기에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C도 이 영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걸까? 아니면 주걸륜의 엄청난 팬이라던가? 단순히 쇼팽의 왈츠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이 한 곡만 내리 연습하는 이유라도 따로 있는 건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C는 이 한 곡을 끝까지 제대로 연주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항상 빠른 속주가 시작되기 직전의 4-5초만 반복해서 연주하곤 했다. 서툴게 양손으로 연주하다가도 오른손, 왼손 따로 연주하기도 하고.




보통 어느 한 곡을 연습하다가 잘 풀리지 않으면 난이도를 낮춰 다른 곡을 연습하지 않나? 적어도 피아노를 배울 때 난 그랬다. 난이도가 꽤 높은 곡을 호기롭게 골라 연습하다가도 내 수준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객관적인 판단이 서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완주할 수 있는 다른 곡을 먼저 연습했다. 한 곡을 끝까지 연주할 수 없거나 오랜 연습에도 실력이 늘은 것 같지 않으면 순간 그 곡에 대한 흥미가 팍 식어버렸으니까. 작년부터 한 곡만 연습하는 걸 보면 C는 확실히 나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연주자는 아닌 듯하다. 나름 집요하고 뚝심이 있다.







최근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C의 연주가 놀랍게도 진전을 보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동안의 연습이 무색하지 않은 발전이랄까. 항상 연주가 맥없이 끝나던 지점이 있었는데 요즘은 몇 마디 더 나아가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속도도 원곡과 비슷한 수준으로 조금 빨라졌는데 왠지 자신감이 붙은 느낌이었다.



C의 피아노 연주는 관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작년부터 시작된 층간소음일 수도 있다. 심기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꽤 크게 들리는 건 사실이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때때로 C의 피아노 연주가 기다려진다. 어쩌면 그가 쇼팽의 왈츠를 끝까지 연주하기를 응원하는 마음에 가까운 걸지도 모르겠다.


실력에 상관없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는 (너무 이른 시간이나 늦은 밤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듣기 좋은 것 같다.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는 치유의 에너지 비슷한 게 있어서 소음보다는 음악 자체로 다가온다. 



C가 과연 쇼팽의 왈츠를 완벽히 마스터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전곡을 연주하게 된다면 난 그의 노력에 작게라도 박수를 쳐 주고 싶다. 그동안 연주 잘 들었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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