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진 잎사귀처럼
이번 여름엔 홍제천에서 자주 걸었다. 특히 밤을 만끽했다. 일이 끝나고 밤만 되면 홍제천 말고도 여기저기로 밤마실을 나갔다. 여름밤을 좋아하게 되어서 여름이 가는 게 아쉽다. 최근에는 밤마실을 나가면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기도 하다. 2022년의 여름이 가고 있다.
흐드러진 잎사귀와 여름 곤충 소리, 퍼붓는 비가 가고 있다. 가벼운 옷차림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것처럼 다녔다. 마음이 정말 가벼웠는지는 자세히 바라보진 않았다. 노느라 바빠서. 몸은 가벼워졌다. 몇 달간 식이요법으로 체중조절을 했다. 살면서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여름에 해외에 다녀온 친구들이 있어서 친구들 얘기 듣는 것이 낙이었다. 하지만 나도 매일 놀러 다녔다. 한국에서 제일 재밌게 놀며 산다는 것 같다고 과장 섞인 말을 듣고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흐드러지게 놀고 다녔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과외 회사에서는 여름에 단 일주일 공식 휴가 기간이 있다. 여기에서 이제 3년 차 일한다. 작년과 재작년 휴가 기간엔 가족과 시간을 맞춰 시간을 보냈으나, 이번에는 가족들과 휴가 기간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주말에 하루만 가족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휴가 기간 동안은 그냥 일을 했다. 휴식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휴식해봤자 계속 평소에 노는 것처럼 놀 것 같아서.
평소에 어떻게 놀길래? 사람들을 만난다. 오래된 친구들, 처음 만난 사람들, 서로 호감 있는 지인들. 상관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다가오면 두려웠다. 과외 일은 혼자 하지만, 과외 일을 제외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다가오면 불안해졌다. 혼자 있는 시간을 직면하기가 두려웠다.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사람들의 집에 방문했다.
그래도 친구들은 내가 사람들과 시간을 잘 보내며 교류하는 것에 대한 장점도 있다고 얘기해주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또 하지만, 여름 내내 대화를 하며 즐거웠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마음 한편에 음악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기타를 처음 잡는 것처럼, 꾸준히 작업해야 실력도 늘고 작업물도 생기는데, 고민이 나를 가로막는다. (는 변명일까.) 생각만 해서는 달라지는 게 없는 걸 아는데. 그래도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 새 작업을 하기도 했다.
밴드 베이스의 음악을 하다가 왜 시퀀서로 작업하게 되었는지, 이전 작업물들과 느낌이 왜 달라지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나 같아도 궁금할 수 있는 부분인데 그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스러웠다.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거나, 생각해보면 이유가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했다. 이유를 살펴보니 그럴싸하지 않고 멋있지 않은 것 같아 말해도 되나 망설여진다.
8월, 여름의 끝이 다가온다. 이제 가벼운 옷차림으로 어디에서든지 흐드러지게 놀 수 있었던 여름이 끝나간다. 7월 초에도 "6월에 너무 놀았어. 이제 정말 그만 놀 때야."라고 했고, 8월 초에도 "7월에 너무 놀았어. 이제 정말 그만 놀 때야."라고 했다. 9월이 다가오는데 "8월에 너무 놀았어. 이제 정말 그만 놀 때야."라고 말한다. 사실 계속 놀고 싶다. 음악 작업 좀 열심히 하고 싶다는 얘기다. 조심스레 하나둘 시작한다. 작년에 정말 책을 만들어야 할 때가 왔던 것처럼. 올해 정말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때가 온다.
가벼운 이부자리, 가벼운 공기, 가벼운 옷차림. 그리울 거야. 이 집에 이사 오고 나서 가장 많이 놀았던 날들. 내 방은 그대로인데, 벌써 2022년 여름의 내 방이 그립다.
여름을 함께 보내준 사람들에게.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