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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일간의 동행 그리고 이별...(9)

나는 왜 그동안 아버지가 뭘 좋아하시는지 한 번도 묻지 않고 살았을까?

" 아버지도 나와 같은 그냥 평범함 남자였음을 나는 왜 몰랐나?"


아버지!
아버지는 제일 좋아하시는 꽃이 뭐예요? 글쎄다. 꽃들은 뭐 다 이쁘고 좋지 뭐! 생각 안 해봤는데! 

아니 그래도 그중에서 특별히 좋아하시는 꽃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냥 그게 뭔지 궁금해서요. 지금 생각해 보시고 하나만 이야기해 보세요. 뜬금없는 아들의 예상치 못한 엉뚱한 물음에 수화기 너머로 기운 없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오늘 힘들었던 하루 일과와 일들을 마치 의무감으로 알려주듯 내뱉던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름 생기가 돌고 목소리 톤도 대화하는 느낌도 밝아지고 달라지신다. 얼마 전 아들이 당신 회고록을 써주기로 약속했고 대신 뭐든 물어보면 잘 이야기해 주셔야 된다고 진작부터 강요하듯 여러 번 말해둔 탓에 아버지도 내가 뜬금없는 것을 물어보는 이유와 의미는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글쎄다. 그래 나는 장미꽃이 참 이쁘고 좋더구나! 너 엄마도 빨간 장미를 많이 좋아하고 말이다. 

예 잘 알았어요. 아버지! 아버지도 엄마도 장미꽃을 제일 좋아하는지 저는 오늘 알았네요. 그러고 보니 포항제철 울타리들이며 우리 주변에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장미꽃이기도 하니 그럴 만도 하네요. 제가 진작 좀 물어볼걸 그랬어요. 피곤하실 텐데 오늘도 머리맡에 가습기 좀 약하게 틀어두시고 푹 좀 주무세요. 내일 아침에 또 전화드리게요. 죄송함인지 뭔지 모를 묘한 후회스러운 감정이 또 벅차게 올라왔다. 1995년 장교로 군생활을 시작한 후 철이 들면서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이 넘도록 매일 아버지와 엄마와 안부를 묻는 수많은 통화를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왜 부모님이 뭘 좋아하시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을까? 


아버지도 나도 영락없는 경상도 남자라 평소 과묵하고 정말 재미하나 없는 성격인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지만 그래도 나름은 서울에서 오랜 기간 동안 생활을 해오면서 다정다감한 아들이고 싶었고 그렇게 나름 실천하면서 살아왔다고 여겼는데 말이다. 순간 나는 그동안 부모님께 자식으로서 내가 뭘 물어봐주었고, 과연 내 부모님들에 대해서 남들과 달리 알고 있는 것이 뭐였는가? 하는 죄송한 생각과 미안한 마음이 떠올랐다. 경상도 사내들은 그리고 여느 집의 아들들은 다 비슷하고 그냥 무심한 것이 당연하다는 말로 스스로를 변명하고 다른 집 자식들도 뭐 별반 다를 것 없이 다 비슷할 거야 하는 핑계로 지나쳐 가기에는 참 후회스러움이 많이 남는 순간이었다. 


지난 주말에 새해맞이 가족모임을 하면서 가족들과 부모님을 뵙고 온 것이 불과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다시 부모님께 달려가 밀린 숙제를 하듯 이것저것 밤새 당신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삶을 물어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돌아보니 평소 안부 전화를 할 때면 내가 꼭 빠트리지 않고 부모님께 물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뭐 오늘도 별일 없으셨죠? 였던 것 같다. 참 바보 같은 질문이 아닌가 싶다. 부끄러웠다. 저런 바보 같은 질문을 매일 하니 부모님은 아들에게 마땅히 해줄 말이 없어 그냥 별일 없었단다.라고 말해왔었던 것이고 그런 답은 정해진 답안처럼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 충격이 생겨 아버지와의 전화를 끊고 곧바로 노트북을 펼쳐 간단한 회고록의 목차를 정리하였고, 특히 앞으로 내가 아버지에게 물어보아야 할 소소한 질문과 부모님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무엇인지 목록들을 정리해 나갔다. 꼭 아버지의 회고록을 쓰기 위한 집필의 목적이라기보다는 내 아버지에 대해 아들인 내가 도대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자식임에도 너무 아버지를 모르고 있구나 하는 점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버지와 내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더 허락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이런 나의 문제점과 잘못을 알았으니 결단코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반성과 의무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와 아버지의 묻고 답하는 대화와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아버지 당신도 가장으로서 힘들게 하루하루 팔십에 가까운 인생을 자신이 아닌 우리 가족을 위해서만 살아오면서 삶에 찌들어 잊고 있었던 자신의 힘들었던 삶과 희로애락의 추억들을 다시 하나 둘 소환하고 기억 속에서 끌어내 주는 계기가 되어갔다. 무엇보다 이제는 누구를 위함도 아닌 오로지 자신의 기준에서 당신 스스로를 돌아보는 하루하루의 일과가 되어 가는 듯했다. 나도 또한 자식으로서 부모님이 뭘 좋아하고 어떤 굴곡의 삶을 살아오셨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는 잘못을 뼈저리게 느끼며 부모님과 함께 하는 동안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하며 아버지를 바라보고 알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나도 대부분의 사람도 가족들에게는 엄하고 무관심하면서 남들에게는 관대하고 사랑으로 살갑게 대하며 참 바보같이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매일 아버지의 인생과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생겼고 그렇게 나는 점점 아버지를 알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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