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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일간의 동행 그리고 이별...(3)

폐암말기라는 친구를 마주하게 되다. 

아들아!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시들기 마련이고 이 나이쯤 되면 아픈 것도 당연한 것이니 아비 때문에 너무 마음 쓰고 신경 쓰지는 마라. 아빠는 괜찮다! 대신 니도 젊다고 너무 건강 자신하지 말고 많은 힘든 일에 해외출장에 밥 잘 챙겨 먹고 다니고 건강이나 잘 돌보면서 일해라! 저것들 건호, 윤호, 지호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손주들 봐서라도 너도 이제 아들 세 놈 키우는 아비니 가정을 지키려면 가장인 너부터 건강해야 되는 거다 아빠말 알아 들었지? 지금 누가 누굴 위로하고 걱정해야 하는지 뒤바뀐 상황에 당황스러움만이 밀려왔다. 거실 소파에 둘이만 멍하니 앉아 수도권순환고속도로를 힘차고 자유롭게 달리는 많은 차들과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가 다시 텔레비전을 보았다가 뭣에도 서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아까부터 틀어둔 전원일기 드라마 재방송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몇 마디 당부 겸 마치 미리 아들에게 유언이라도 하시듯 평소 안 하시던 무거운 잔소리와 아련하고 아픈 마음을 전해오신다. 


이번 서울에서의 정밀검사와 조직검사 등 각종 검사를 받으시며 많이 힘들었던 탓이었을까? 아들집에 온 뒤부터 자꾸만 답답하다시며 포항집에 내려가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셔서 며칠뒤면 다시 서울 올라오셔야 하니 그냥 불편하셔도 아들 집에서 며칠 더 쉬시다가 검사결과라도 듣고 내려가시든 하자고 겨우 겨우 사정하고 말려 집에 머물게 하는 상황이었다. 검사결과를 알게 되고 진료를 받기까지는 며칠 여유가 있어 모처럼 두 분을 모시고 평소 아이들과 자주 가던 대부도로 바람을 쐬러 다녀왔고 바지락칼국수 맛집에서 조개구이에 맛난 식사도 하고 호두과자도 사 먹고 경치구경도 하고 그렇게 지루하지 않은 주말을 보내며 며칠뒤 좋은 결과가 확인되고 전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긴장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17년 12월 20일(수) 드디어 검사결과를 듣고 진료를 받기로 한 날이 밝았고, 아버지는 긴장이 되시는지 집사람이 정성껏 차린 된장찌개에 좋아하시는 카레밥으로 차린 아침상도 드시는 둥 마는 둥 하시고서는 덤덤하게 옷을 챙겨 입으시고 검사 후에는 포항으로 바로 내려갈 요량으로 짐가방을 모두 챙겨 엄마와 함께 분당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모두가 조용히 차창밖만 한 참을 바라보며 각자의 생각과 시간에 빠져있었다. 거의 병원입구에 도착할 무렵이 되어 아버지는 뭔가를 이미 예상하고 작심하신 듯 혹시나 폐암이 맞고 심각하다고 하더라도 나는 항암치료나 조금 더 살아 보려고 병원에 매달려 죽을 때까지 약 냄새 맡으며 시간을 보내는 거는 안 하련다. 무덤덤하게 툭 던진 그 한 마디에 참았던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버지는 아직 병명도 상황도 알지도 못하시면서 무슨 그런 소리를 미리 하고 그러시냐고 버럭 성질을 부리고 화를 내고 말았다. 


아버지의 심정과 지금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적어도 아들의 입장도 우리 가족들의 마음도 좀 헤아려주었으면 싶은 섭섭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침묵 속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 아버지와 셋이서 도착접수를 하고서 폐센터 조영재교수님의 진료를 기다렸다. 아버지 이름이 전광판에 표시되고 긴장된 마음으로 진료실로 들어가 두 분은 자리에 앉으시고 나는 뒤에 서서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긴장 속에서 들었다. 오히려 교수님은 우리 모두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환한 얼굴과 밝은 표정으로 웃어 보이시며 어르신 포항에 사시나 봅니다. 할머니도 같이 오셨네요. 오늘은 뭐 타고 서울에 오셨어요? 검사 끝나고 서울 또 이렇게 며칠 만에 오시느라 힘드셨겠어요? 하고 물어보신다. 아버지는 친절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지난 검사 이후에 막내아들집에 여태 머물고 있다가 이렇게 왔네요 선생님! 하고 답을 하셨다. 침이 꼴딱하고 넘어가고 손에 땀이 난다. 왜 저런 말씀을 먼저 하시는지 싶은 마음이 그 짧은 순간에 떠오르고 극도의 긴장감으로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였다. 


책상에 놓인 모니터를 아버지 쪽으로 보시기 편하게 돌려 사진을 보여주며 뭔지도 모를 폐사진을 가리키며 이 부분이 종양덩어리이고 이번에 여기서 조금 조직을 떼내어 조직검사를 한 것인데 검사결과 폐암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어르신! 하며 덤덤하고 차분하게 검사결과를 전해 주신다. 아버지는 한 참을 아무 말도 없이 긴 한숨만을 여러 번 내쉬시며 멍해 있었고, 엄마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눈이 붉어져 금방 울음을 터트릴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어쩔 수 없지요 뭐!라고 말하는 아버지를 교수님은 위로하듯 어르신! 요즘은 암이어도 약도 좋고 의술도 많이 발전했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치료방법을 잘 찾아보시면 됩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린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금방 정신을 다시 차리고 수술이나 치료는 가능한 것인지 어느 정도의 진행상황인지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는 원래부터 폐기능이 약해 그간 약을 드시고 있었고 레블라이저도 쓰셔야 하니 나이나 상황상 수술적 치료 방법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고 치료를 하게 되면 약물로 치료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이야기하신다. 


엄마의 얼굴을 보니 계속 앉아 있어서는 안 될듯하여 아버지 뭐 더 물어보고 싶은 거나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 치료방법하고 자세한 사항들은 제가 아버지 대신 교수님과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말씀해 드릴 테니 엄마하고 먼저 좀 밖에 나가계실래요? 그렇게 아버지와 엄마를 등 떠밀듯 밖으로 내보내고 교수님께 대놓고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나이나 상황상 수술이 어렵다는 취지의 말씀과 상황은 이해를 했습니다. 정확히 몇 기에 해당되는 지요?  교수님은! 덤덤하게 사실상 말기에 해당하는 3기를 넘은 상황으로 보입니다. 종양도 크기가 좀 크고요. 어르신은 폐기능이 보통사람의 10분의 1 정도 수준으로 유지하고 계시고 평소 지병이 있으시니 수술은 무리라고 판단되고요 다른 병원에 가셔도 마찬가지 판단 일거라 봅니다. 항암치료가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저함도 없이 다만 조금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결과와 방법을 알려 주신다. 


교수님! 결례이고 죄송한 질문입니다만 만약 교수님의 아버지시라면 교수님은 어찌하실 것이고 아들로서 어떤 치료방법을 제안하고 말씀드려야 할지 좀 여쭤봐도 되겠는지요? 병원에 오시는 길에 아버지는 혹여나 암이 맞다고 하면 당신은 항암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이미 하신 말씀도 있으셨고 참 혼란스럽고 저는 뭐가 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좀 도와주세요. 처음 당하는 일이고 뭐가 뭔지도 모르지만 어찌해야 할지요? 그냥 솔직한 심정으로 속에 있는 생각과 말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물어보았다. 한 참을 모니터와 검사결과지를 혼자서 다시 들여다보고 중얼대며 고민하시더니 어르신 뜻이 그러시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시게 도와 드리는 것도 한 방법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통증과 예후가 좋지 않을 테니 치료를 완전히 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은 환자가 좀 말미에 힘드실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셔야 할 듯하네요. 아드님이 잘 판단하시고 가족이나 어른과 상의하셔서 항암치료 상담이라도 한번 받아 보시겠다고 하면 오신 김에 오후에 상담하고 가실 수 있도록 혈액종양내과에 진료시간을 바로잡아 드릴 테니 상담해 보고 가셔도 됩니다. 잡아드릴까요? 


더 이상 교수님을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듯하여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만을 전하고 돌아서 나왔다. 머릿속은 온통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말이 반복 재생되듯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해보는 것이 좋을듯한데 포기하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이래도 후회하고 저래도 후회하는 것이라면 아버지를 설득해서 항암치료에 대한 오후 상담이라도 받아 보기로 하고 다시 교수님께 부탁해 오후 진료를 잡아 두고서 지하로 부모님을 모시고 내려가 이른 점심을 함께 먹었다. 혼란함 때문인지 밥인지 뭔지도 모를 정도로 입맛이 사라져 버린 터라 그냥 속이 좀 좋지 않다고 핑계를 대고서 두 분이 식사를 하는 동안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나와 버렸다. 화장실 변기통에 앉아 그렇게 두 분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한 참을 바보처럼 울었던 모양이다. 오후 진료시간이 조금 남아 식사 후 1층 잔디밭 벤치로 나가 아버지께 믹스커피 한 잔을 뽑아드리고 볕을 쬐며 아무 말도 없이 참 많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아버지는 친절하고 상세하게 항암치료인 주사와 약물의 효능과 발전된 항암치료방법들에 대해 담당 김유정 교수님께 전해 듣고서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한 번 치료를 해보자고 마음을 바꿔주셨고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곧바로 광명역에서 포항으로 내려가는 KTX기차에 몸을 실으셨다. 이제는 함께 친구처럼 늙어가고 살아갈 새로운 친구인 폐암을 마주하게 되었고 싫어도 남은 여생은 함께 동행하면서 살아야 함을 느끼며 그렇게 고향을 향해 내달려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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