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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Sep 16. 2024

아는 만큼 본다

미술관을 다녀온 후 든 생각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만큼 세상을 볼 수 있다'와 같은 류의 말들을 좋아한다. 



어느 순간부터 위의 문장들이 다시 보였다. 예시를 굳이 꼽아보자면, 독서모임을 통해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을 읽었던 경험이 떠오른다.


예술 분야는 흥미가 없어서 별다른 기대 없이 책을 펼쳤다. 그중 '빈센트 반 고흐'의 스토리가 기억에 남는다. 고흐는 당시 유행하던 압생트라는 독한 술에 빠졌다. 과다 복용할 경우 모든 것이 노랗게 보이는 부작용이 생기는 술이었다. 고흐는 그걸 알아차리면서도 샛노란 색을 그림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노란 높은음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일 필요가 있었다."는 말을 할 정도로 고흐는 기어코 활활 타오르는 노랑을 보기까지 중독자가 되었고, 고통에 빠졌다. 그 과정에서 <밤의 카페테라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걸작이 줄지어 세상에 나왔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던 고흐는 정신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병세가 심했다. 그 와중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질환과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빈 센트 반고흐의 서사를 알고 그림을 보니 다르게 다시 보였다.



참 신기하게도 그 후 또 그의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회사의 한 연수에 참가했는데 '빈센트 반 고흐'를 주제로 한 강연이 있었다. 알고 있던 만큼 강연을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고흐와 그 동생 테오는 형제간의 우애가 참 깊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테오의 아들이 탄생했을 때 이름을 형의 이름과 똑같이 지었을 정도였다. 우리가 흔히 아는 <꽃피는 아몬드 나무>라는 작품은 고흐가 조카를 생각하며 그린, 동생 테오에게 선물한 그림이다.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성은 사후에야 알려졌다고 한다. 작품을 팔아서 돈을 벌어보지도, 대중의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강연을 통해 빈 센트 반고흐의 서사를 좀 더 알게 되었다.


훗날 네덜란드에 가서 온종일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을 꿈꾸게 된 시간이었다. 그의 작품도,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걸 체감했다.






어제 오후, 대구 간송미술관 '여세동보, 세상 함께 보배 삼아' 전시회에 다녀왔다.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인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의 작품들을 비롯해 추사 김정희, 정선의 작품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 등 국보 보물 40건 97점이 전시 중에 있다.


토요일에 티켓 구매 시도를 계속했고, 운 좋게 일요일 표 예매에 성공했다. 표를 예매하고, 대구 간송미술관 전시작들을 미리 살펴봤다. 화가 신윤복이 그중 눈에 띄었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 예전에 시청했던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떠올랐다.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을 주제로 한 드라마였기에 재미 삼아 다시 보기를 했다. 당시 시대상과 화가의 서사, 작품들을 미리 엿보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아는 범위를 조금이라도 넓히고 싶었다. 단원 김홍도는 서민의 생활을 즐겨 그렸고, 혜원 신윤복은 양반가의 생활 특히 남녀가 어울리는 모습을 화폭에 주로 담았다. 긍재 김득신은 단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유사한 풍속화풍을 계승했다고 한다.



관람 전, 두 가지 관전 포인트를 미리 정해 놓았다. 첫 째는 드라마에서 봤던 혜원 신윤복의 원본 작품들 자세히 감상하기 그리고 둘째는 김홍도와 김득신의 화풍이 정말 비슷한지 비교해 보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두 가지 모두 얻었다.



혜원 신윤복의 작품들을 처음 마주 했을 때, 드라마 영상에서 봤던 그림이 눈앞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원본의 실제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는데 작은 화폭이었지만 시선이 빠르게 이끌렸다. 신윤복의 작품은 김홍도, 김득신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색채가 특히 눈에 띄었다. 두 화가와 유사하게 대체로 흑백의 색을 썼지만, 붉은색과 푸른색의 배치가 돋보였다. 색감 표현이 뚜렷했고, 이는 인물들에 집중하게 했다. 




여러 장면들로 이어진 《혜원전시첩》 작품들 모두에  남녀가 한 화폭에 담겨 있었다. 배 위에서 남녀가 정답게 쌍을 이루고 있는 <주유청강>, 단옷날 냇가에 모여 그네를 타고 머리를 감는 여인들 그리고 그들을 몰래 훔쳐보는 두 동자승들 <단오풍정>, 눈썹달이 뜬 깊은 밤 등불을 든 젊은 선비가 한 여인을 은밀히 만나는 <월하정인> 등 혜원의 그림에는 남녀가 있었다. 인물 한 명 한 명의 표정, 시선처리, 옷맵시 그리고 배경을 보고 있으니 그 장면이 생생하게 상상됐다. 참 세밀했다.



김홍도의 화풍을 계승했다던 김득신의 작품도 유심히 보았다. 참 신기하게도 작품만 봤을 때 단원의 그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비슷해 보였다.  단원 김홍도의 <씨름>, <서당> 등의 작품들과 느낌이 비슷했다. 섬세하게 그려 낸 인물의 표정과 생동감 있는 동작의 표현이 특히 유사했다. 그중에서도 김득신의 <야모도추>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병아리 한 마리를 물고 도망가는 고양이, 새끼를 잃은 암탉, 도망가는 남은 병아리들, 고양이를 쫓으려다 넘어지기 직전인 남자. 긴박함을 참 잘 그려낸 생동감이 느껴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를 또 체감한 하루였다.



미리 공부했던 김홍도, 신윤복 그리고 김득신의 작품은 눈에 들어왔지만 그 나머지 전시품들은 얕은 시선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청자를, 추사 김정희의 서체를, 정선의 작품들을 보면서도 감흥을 못 느꼈다. 아는 것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관람을 마치고, 아쉬움이나 부족함을 크게 느끼진 않았다. (그저 관람객이 많아 구석구석 작품을 감상하지 못한 점이 미련에 남았다. 화가 정선의 작품관도 사전에 알아보고 갔으면 좀 더 좋았겠다 정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뒤에는 ,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는 신념도 있다.



이 세상에는 과학, 수학, 경제학, 미술학, 철학, 인문학 등 수많은 분야가 존재하지만 모든 지식을 다 알 수는 없다. 철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이게 철학적 사고구나를 알면 되는 것이고, 인문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인문 서적을 읽고 인문학의 매력이 이거구나를 알면 된다. 미술학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미술 작품을 아는 만큼 감상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 가볍게라도 뭐 하나라도 안다고 할 수 있으면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던 것 같다.



미술학은 잘 모르지만 빈 센트 반고흐와 혜원 신윤복 이 두 명의 화가는 안다. 이 정도만으로도 미술 분야에 대한 허들은 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화가와 작품을 다 알 수도, 다 알 필요도 없다. 내 기준으로 내 시선으로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되는 것 같다. 아는 부분을 욕심내지 않고 차차 늘려가면서 시야를 넓혀나가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물론 많이 알수록 더 많이 보인다. 다 알 수는 없다는 한계는 받아들이면서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저 알 뿐이다.



넉넉하게 세 시간 정도의 시간을 미술관에서 보냈다. 아는 만큼 보고 나왔다. 예술적 감성도 기술도 없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즐겼다. 엄마와 시간을 함께 보내서 시간의 농도가 더 짙게 느껴졌다. 가끔은 일상에 이런 문화생활을 더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아는 만큼 경험하지만, 경험하는 만큼 알게 되는 것 같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화가의 가슴속에
 만 가지 봄기운 일어나니,
붓 끝은 능히 만물의 초상화를 그려준다.


                           가슴 속은

              언제나 시시사철 봄이구나

   

                               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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