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문고에 북토크 행사가 있어서 다녀왔다. 이번에는 은유 작가와의 만남이었다. 작가님에 대해 잘 몰랐지만, <해방의 밤>이라는 책 제목에 끌려서 북토크 참가 신청을 했었다. 권민창 작가, 송길영 작가에 이은 세 번째 작가와의 만남이었다.
창비 출판사 편집자님과 은유 작가님의 인터뷰 형식으로 북토크가 진행됐다. 작가님의 첫마디는 "구미에 오고 삼일문고라는 서점에 처음 와봤는데, 여기는 정말 하루 종일 있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정말로."였다. 그리고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점에 들어서면 새 책이 주는 긴장감과 의욕에 세포가 살아나는 것 같아서 참 좋죠."
그 표현은 빠르게 다가와 스며들었다. 서점이 회사 근처이다 보니 평소 점심 때도 가끔 방문한다. 짧은 시간에 서점을 둘러보고 나갈 때 항상 아쉽고, 처음 보는 책들이 있으면 눈에 밟혔다. 그 느낌을 한 줄로 정리하지 못했는데, 작가님의 표현이 딱 맞았다. '새 책이 주는 긴장감과 의욕'. 서점에서 느낄법한 참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었다.
편집자님이 질문했다. "작가님은 글쓰기도 그렇지만 읽는 걸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은유 작가님이 답했다. "책 근처에 머무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 삶의 동선을 책 근처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읽는 사람이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또다시 작가님의 표현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삶의 동선을 책 근처로 하다'라는 표현이 '서점으로 자주 퇴근하는' 나의 삶을 보란 듯이 표현해 주는 기분이었다. 피곤해도 퇴근 후 책을 읽으러 서점으로 향하는 나의 의지가 삶의 동선을 책 근처로 하는 행위가 되는 순간이었다.
두 번 연달아 작가님의 표현에 마음을 뺏겼다.
<해방의 밤>은 사람과 삶, 책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셨다. 해방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고 그 후 해방의 글쓰기, 해방의 밤편지를 거쳐 <해방의 밤>이 최종 제목이 되었다고 하셨다. 책에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밤은 존재의 해방구다. 강연, 북토크는 저녁 시간에 주로 이뤄졌다. 하루치 노동을 마치고 부랴부랴 모여든 이들은 비로소 자신을 대면하는 자리가 주워졌음에 감격했다. 웅크린 존재의 등이 펴지는 만개의 시간, 밤."
"노동자가 연장을 내려놓고 펜을 잡는 시간 밤은, 사유가 시작되는 시간,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 다른 내가 되는 변모의 시간이다. 이러한 뜻을 모아 '해방의 밤'으로 제목을 정했다." (24-25p)
은유 작가님이 하신 말씀 중 독서에 관해 조언하신 부분이 있다. 첫째는 "질문이 내 안에 반드시 있어야 좋은 책 좋은 문장을 만났을 때 내게 쫙 달라붙습니다. 그래야 책들이 답안지가 될 수 있습니다. 고민이 없으면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 둘째는 "책을 많이 읽다 보면 편협적인 사람이 될 수 있어요.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고, 혼자만의 생각에 갇히시면 안 됩니다. 책을 읽고 타인에게 배타적이게 되는 것을 경계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사려 깊은 글쓰기가 가능합니다." 그리고는 "나한테 당연한 게 남한테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꼭 아셔야 합니다."라고 조언해 주셨다.
책에도 나오지만 작가님은 어느 순간부터 계모임을 줄이고, 독서나 글쓰기 모임에 더 시간을 많이 쓴다고 하셨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생각을 접해봐야 한다고 하셨다. "돌아갈 때 발걸음이 가벼우면 그게 좋은 모임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또다시 이 표현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이 끝나면 보통 밤 열 시가 된다. 집에 갈 때 택시를 타고 가서 부담 없기도 하지만 늦은 시간에도 피곤하지 않다. 독서모임은 좋은 것 같다고만 생각했는데 작가님의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돌아갈 때 발걸음이 가벼우면 그건 좋은 모임'이라는 그 말.
"어느 모임이든 헤어질 때 발걸음이 가벼운 곳으로 갑시다. 우리 삶에 이로운 곳은 몸이 알려줄 테니까요." (280p)
편집자님이 질문했다. "글쓰기에 관한 책도 많이 쓰셨는데 글쓰기를 오래 하시는 비결이 있으신지? 독자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은유 작가님은 짧게 이렇게 답하셨다. "독서와 글쓰기가 삶의 1순위가 되면, 놓치지 않게 되더라고요." 참 멋있는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꾸준함의 비결이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메모장에 기록한 부분은 여기까지이다. 은유 작가님이라는 사람을 알게 돼서 좋았던 시간이었다. 은유 작가님은 '밥'에서 해방되셨다고 한다. 자녀들이 크면서 매일 밥을 차리는 엄마의 삶에서 이제는 해방돼서 좋다고 하셨다. 우리 모두는 각자 탈출하고 싶은, 해방의 대상이 있지 않나 싶다. 해방의 순간을 모두가 꼭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삼일문고 대표님께서 작가님께 마지막 한 마디를 부탁드렸다. 작가님은 아주 잠시 고민하시다 입을 떼셨다. "해방의 밤, 구미 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깔끔했던 작가님의 마무리 인사로 북토크 한 편이또 끝이 났다. 오길 잘했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