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두루마리 휴지와 키친타월
팬데믹이 시작되었던 작년 3월, 뉴스 보도를 통해 미국 슈퍼마켓의 동난 휴지 코너를 다 보셨을 거다. 휴지뿐만 아니라, 키친 페이퍼 타월, 생수, 손세정제 및 소독용 물휴지까지 한동안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물질 풍요로운 미국에서 슈퍼마켓 식료품 코너 진열대랑, 냉동고의 바닥이 보일 정도로 싹쓸이된 걸 작년에 처음으로 봤던 거 같다. 개빈 뉴썸(Gavin Newsom)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봉쇄령을 내리기 얼마 전, 난 일을 마치고 저녁 6시쯤 습관대로 장을 보러 트레이더 조(Trader Joe's)에 들렸었는데, 매장에 남아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고, 직원들이 텅 빈 냉동고 바닥을 청소하고 있는 걸 목격했었다.
중국 우한은 작년 갑작스러운 봉쇄령으로 인해 식료품 및 생활 용품 구하기가 매우 불편하였다고 한다. 이미 뉴스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주지하였던 미국인들은 생필품 부족을 우려하여 봉쇄령이 내리기 전 일제히 사재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체제 하의 우한처럼 도시 안팎으로 출입이 금지되는 봉쇄령이 캘리포니아에서 내려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기에, 난 식료품 부족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이 나라에서 그 많은 물류 이동을 웬만한 비상사태가 아니고서야 정부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난 평소 이주에 한 번씩 생수를 구매해서 항상 두 케이스 이상 구비되어 있었고, 휴지, 키친타월, 소독용 물티슈 및 손세정제 역시 벌크로 구매하기 때문에 두 달치 쓸 여분은 충분히 됐었다.
그런데 쌀과 라면을 필요 이상으로 비축하는 사람들의 경우, 식구가 몇 명인지 모르지만 그거 다 먹으려면 일 년 이상 걸릴 거 같았다. 여름철엔 쌀에 벌레나오기 쉬운데, 그런 우려는 안 하는 듯싶었다. 내 직장 동료의 동생 가족은 생수 이삼십 케이스를 차고에 쌓아놓았고, 그것도 모자라 거실에까지 쌓아두고 있었다고 한다. 냉동식품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냉동식품을 보관하기 위해 덩달아 냉동고 수요까지 급증하였다. 봉쇄령 당시, 코스코에 장 보러 가면 물, 휴지, 키친타월, 소독용 물휴지 및 손세정제가 당분간 입고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내문을 붙여 놨었다. 그리고 한동안 계란, 닭고기, 냉동새우 등 특정 상품은 한 사람당 한 패키지만 구매할 수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동난 생수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다시 입고되었지만, 휴지와 키친타월은 5월에 들어서도 진열되지 않았다. 두 달 가까이 텅 빈 매장 진열대를 지켜보면서 봉쇄령 초반기의 비교적 여유로운 마음에 조바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롤의 키친타월을 남겨두고, 난 오프라인 매장에 물건이 입고될 것이라는 전망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코스코 웹사이트를 통해 구매를 시도했지만, 하루가 지난 후 주문 자체가 취소돼 버렸다. 내 생전 휴지와 키친타월이 떨어져 본 적이 없는데, 고가 제품도 아닌 생활용품이 물량이 딸리기 때문에 살 수 없는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된 것이다. 이성적 판단이고 뭐고, 남들 사재기할 때 여유분을 사놓지 못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비로소 5월 중순 무렵에야 코스코에 키친타월이 입고되었고, 일인당 한 뭉치 구매로 제한되었다. 한 뭉치 구입한 걸로는 불안해서 그다음 주 장 보러 갔을 때, 한 뭉치 더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키친타월뿐만 아니라, 휴지도 두 뭉치 그리고 생수도 코스코 갈 때마다 두 케이스씩 사다 집에 비축해놓기 시작했다. 코비드 확진자가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도 했지만, 다가오는 겨울철 독감 시즌과 맞물려 상황이 악화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미리미리 필요한 물품들을 쟁여놓는 것이 지난 3월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길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