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Ed Moses <Now and Then>
2015년 6월 한국에 다녀오기 전, 에드 모지스(Ed Moses)의 전시회 두 군데에 다녀왔다.
LA 지역에서 현대미술을 주로 취급하는 개인(private) 갤러리들이 군집하고 있는 지역이 산타 모니카에 위치한 버거모트 스테이션이다. 이름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1875년부터 1953년까지 기차역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남태평양 열차 회사에 의해 운영되던 열차 승객 서비스가 1953년 이후 중단되자, 버거모트 스테이션은 화물 보관 및 운반 서비스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1980년대 후반 산타 모니카 시가 버거모트 스테이션 부지와 남아있는 건물을 사들이게 되었고, 1993년부터 갤러리에 리스를 주게 되면서 오늘날 현대 미술의 최전방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사실 요즘은 컬버 시티 갤러리들이 더 핫하다)
에드 모지스 <Now and Then>은 버거모트 스테이션에서 가장 지명도 높은 갤러리 중 하나인 터너 갤러리에서 열렸다. 모지스는 LA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화가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2018년 작고) 당시 89살의 모지스는 엘에이 근처 롱비치 출신이지만, 실제로 그는 하와이에서 롱비치로 향하는 선상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관계로 홈스쿨링을 했고, 프리메드(예과라고 보면 됨) 프로그램에 일 년 정도 몸 담았을 정도로 매우 영리한 학생이기도 했다. 의과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후, 미대로 방향 선회하였다. 이미 UCLA 재학 시절 개인전을 치를 정도로 그의 예술적 재능은 일찌감치 인정을 받았고, 서부를 대표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모지스는 1968년부터 University of California at Irvine(UCI)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하였고, 그와 더불어 작품 활동도 왕성하게 하였다.
터너 갤러리에서 <Now and Then>이 오픈하기 전 5월, LACMA에서 열리고 있던 20여 년에 걸친 모지스의 스케치 작품들 모음 전시회에 다녀왔기에 그의 작품과 작품 성향을 개인적으로 고찰할 기회가 있었다. 그의 초기 작품은 건축학적 성향과 함께 몬드리안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격자무늬를 사용하고 있었다. 오늘날 현대미술의 쟝르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듯이 그의 그림 역시 캔버스와 물감을 사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레이텍스나 양피와 같이 회화에 있어선 비전통적인 재료들을 사용하였다.
<Now and Then>은 당시 최근 3년 동안 작업한 그의 작품들이 선보였는데, 솔직히 내 기대치보다 못한 것들이었다. 이전 그의 작품들이 틀을 깨면서도 전통적 개념의 구도와 색채 이론을 근저에 깔고 작업하는 경향을 보였다면, 전시회 작품들은 작가로서의 자유로움이 지나쳐서 좋게 말하면 유치원생의 순진무구함 나쁘게 말하면 별 생각 없이 작업을 했나 싶을 정도로 그림을 하나로 묶는 통일성이 결여된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건 순전히 내 개인의 의견이다. 전시 중이던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아래 그림이다.
이런 전시회 오프닝을 가보면 느끼게 되는 게 두 가지다. 첫째는 predominantly white. 둘째는 old. 미국은 다문화, 다인종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 외에 순수 미술 분야나 클래식 음악 분야를 보면 패트론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고, 하얀 분들이다. 언젠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이 재정적 적자 상태를 겪고 있는 이유가 나이 드신 분들이 오페라를 보러 오기 힘든데 반해, 젊은 인구층이 새롭게 유입되지 않기 때문이란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또한, 미래 순수 미술계 성공의 열쇠가 백인 외의 다른 인종을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요지의 강연도 들은 적이 있다.
이십여 년 전 버거모트 스테이션에 갤러리들이 하나, 둘씩 문을 열기 시작한 게 오늘날 엘에이 지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산실이 되었다. 비록 나이 든 백인 부유층이 패트론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Now and Then> 오프닝을 하던 토요일 저녁 6시 버거모트 스테이션엔 천 대에 가까운 차량들이 넓은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날 전시회 오프닝을 한 갤러리가 터너 갤러리 말고도 두 군데 더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처럼은 아니지만, 대부분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캐쉬 바 (현금을 내면 마시고 싶은 술을 잔에 따라 주는 곳)에서 알콜을 사서 홀짝거리면서 그림을 관람하기도 하고, 힙스터 차림의 비교적 젊은 층들은 주차장에 세워진 푸드 트럭에서 음식을 사서 먹으면서 밴드 음악을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기도 하였다.
난 혹시나 에드 모지스의 실물을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