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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준 Dec 07. 2021

UN 메달 퍼레이드

성매매 포주 아주머니와 명예

11.29 ~ 12.3( 월~ 금)


지난 주말 간 인사장교님과 유엔 메달 퍼레이드 행사에서 사용할 사회자 멘트를 함께 고민하고 맞추었다.

유엔 메달이란 일정 기간 이상 유엔군으로 복무한 평화유지군에 대하여 유엔 사무총장이 수여하는 메달이다. 메달을  수여 할 때는 메달 퍼레이드 행사를 진행한다.

행사는 여단장급 이상의 지휘관이 주관하고 인접 국가의 대대장, 외교 대사 등 손님들을 많이 초청하여 성대하게 진행한다. 어찌보면 각 국가의 홍보가 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행사 당사국의 입자에서는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쓸 수 밖에 없다.


안그래도 일이 많은 인사과에서 큰 축을 담당하고 있던 실무자 한 분이 소령으로 진급 후 한국으로 복귀했다. 그 공백으로 생긴 많은 업무들을 하나씩 받아쳐 내는 것도 벅찰텐데 파병 임무 수행간 한번 있을 큰 행사를 준비하는 인사장교의 얼굴은 어두워져만 갔다.

예배를 다녀오고 난 뒤 일요일 오후는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큰 행사를 앞두고 당직 근무까지 변경하며 일하는 인사장교님을 생각했다.


통상 유엔에서 행사를 진행할 때는 영어와, 현지어(그러니까 레바논의 경우에는 아랍어)로 사회를 진행한다. 유엔의 예하로 임무수행하는 다른 국가의 경우에는 해당 국가의 모국어까지 포함한다. 지난번 말레이시아 대대의 진 교대 행사를 보았을 때는 영어와 아랍어 그리고 말레이어 총 3가지 언어로 행사를 진행했었다. 우리도 영어와 아랍어 그리고 한국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간 영어로 사회를 봐오는 것은 통역장교들의 고유 업무였기 때문에 내가 사회자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연병장에 나가서 식순과, 지휘관들의 동선을 함께 머릿속으로 그리며 사회자 멘트를 정리해 나갔다. 다행히 이전 진에서 행사에 사용했던 식순과 사회자 멘트가 파일로 남아 있어서 필요한 부분만 조금 손 보았다.


함께 파병 온 특전사 인원들도 전통북 공연과 태권도 시범을 준비하였다. 멀리 수송부 아래 쪽에서는 북소리가 계속해서 울려왔다. 학교 축제나 잔치의 시작은 항상 사물놀이가 알린다. 멀리 지나가다가도 북과 꽹과리 소리는 호기심에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북소리와 하나 둘 하나 둘 마이크를 점검하는 소리에 한국에서 느꼈던, 행사 전의 떨림이 느껴졌다.


준비 간에 레바논 군이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어와 영어만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행사에 참석하는 200여명의 병력이 연병장에 대열을 갖추고 섰다. 200여명이 행사 병력으로 참석하고 각 나라의 지휘관을 모시고 우리 한국을 홍보하는 행사에 사회를 맡게 되다니 망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부담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내가 참석한 다른 나라의 행사에서 아무도 사회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은 UN 메달 퍼레이드 예행 연습. 스크립트를 수정하고 처음으로 병력들과 예행 연습을 하였다. 영어를 말할 때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빨리 말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어를 빨리 한다고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니까 잘 생각하자.

묵념곡. 묵념사를 영어로 다하고 한국어로도 하려고 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1분 9초라는 묵념곡 시간안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에 너무 빨리 읽고 말았다.


작전 대대의 북소리와 태권도 반주 소리. 영어와 한국어로 동시에 사회. 얼마 남지 않은 집으로 가는 . 조금만  참자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생각보다  직사광선 왼쪽 얼굴이 얼얼하였다.


다음날 다시 예행 연습을 실시했다.

도대체 시나리오 수정을  번을 했는지 세지도 못했다. 적어도 5 이상은 수정했다. 인수인계 받을  남아있던 행사 파일들을 보면 제목이 행사 사회자 멘트_ 수정, 사회자 멘트_수수정, 사회자_ 최종, 사회_찐최종 등등 여러가지의 파일들이 있었다.  


아랍어를 뺸 뒤에도 영어만으로 행사를 진행하기로 하여 한국어를 모두 뺐다. 하지만 사회자가 영어로만 진행하다보니 행사 병력들과 소통하는 부분에서 문제가 나타났다. 한국어로만 행사를 한 경험이 있는지라 오히려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었다. 다시 한국어를 짧은 형식으로 수정하여 넣었다.

내외 귀빈들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주시길 바랍니다.”  “모두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등으로 변경했다.

 어느덧 나의 폴더에도 최종, 찐최종 등이 늘어가고 있었다.


예행 연습을 하다가 서부 여단의 의전 부서에서 이탈리아 대위 1명과 상사 1명이 왔다. 이탈리아의 의전개념과 맞지 않은 부분의 식순들을 다시 수정하였다. 이어서 10시에 단장님 사열 간 추가 수정소요가 발생하여 다시 반영하였다. 행사가 끝나기 전까지 수정사항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묵념 곡과 영문으로 읽는 것의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스트레스다.


12.3(금)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아왔다. 날이 흐리고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하였으나 기우였다. 오히려 해가 너무 강하게 내리쬐어 문제였다. 단상 위 지휘관과 내빈들이 앉는 자리까지 해가 들어왔고, 뒤에 수행하는 참모들과 경호 인원들이 그늘에 앉을 수 있었다.

'그래 이런 날도 있어야지. 수행하는 참모들이랑 경호팀도 좋은 자리 한번 앉아봐야지. 항상 햇볕이 내리쬐는 자리에만 앉았던 그간의 행사와 훈련 참관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일사병이 걱정되고 머릿가죽이 익어가는 것을 느낀 이탈리아 연합훈련 시범식 교육. 딱 지휘관 자리까지만 차양막의 그늘이 들어와서 눈이 탈 뻔한 기억이 있는 유엔 평화의 날 행사 등등.


내가 잠깐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다른 부대원들은 모두가 모여 계획한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본부중대의 취사반은 남수단 파병경험이 있는 급양관을 중심으로 피로연 음식을 분주하게 준비하였고, 정보과는 야광 조끼와 견광봉을 챙겨서 위병소로 내려갔다. 위병소에서 각 대대의 참석 현황을 파악하며 출입자를 통제하며 무전으로 실시간 전파했다. 각 부서별로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영어를 잘하는 인원들은 차출되어 부대 내의 주요 길목마다 배치 되었다. 손님들이 주둔지 내에서 헤메이지 않도록 하였다.


 행사 병력의 제대장인 대대장님은 마지막까지 아쉬운 마음에 행사 인원들의 경례 소리를 신경썼고, 통신은 음향을 점검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아일랜드 대대였다. 아일랜드 대대장 코너 중령이 아닌 그 후임자였다.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하고 헤어져서 아쉬웠다. 이어서 가나 대대에서 도착하였다. 말레이시아 대대도 지난번 말레이시아 부대 교대 행사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후임 대대장이 도착했다. 각 국의 대대장들이 도착하고 이제 남은 단 한 사람. 서부 여단장님만 도착하면 되었다.


단상에는 지휘부와 인사과를 중심으로 오늘 행사의 최선임자인 서부여단장 이탈리아 스테파노 준장의 위치와 도착 예정 시간을 서부여단 의전장교를 통해 시시각각 파악하였다. 행사 시작 시간은 11시이지만, 서부여단장은 10분 일찍 도착 예정이었다. 위병소에 위치한 정보과에서 무전이 왔다. 서부여단장이 도착했다.


10분 일찍 서부여단장이 도착하자 인사과에서 나에게 큐 싸인을 던졌다. 그래. 지금이야. 오늘만 지나면 드디어 다 끝이다. 행사만 잘 마치면 이제 복귀까지 20일 정도만 남았고, 나는 정말 말년 병장과 같이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동하리라. 부푼 가슴을 안고 그간 수 없이 준비해온 멘트를 시작하였다.


"Ladies and gentlemen, Distinguished guest, Sector west commander, All rise ,attention,"

"지금 서부여단장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모두 일어서주시기 바랍니다. 부대 차렷."


나의 멘트에 단상에 있는 각국의 지휘관들은 일어났고, 대대장님은 행사인원들을 정렬시켰다.


"부대-차렷."

대대장님의 구령에 지휘관의 입장을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모두가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차렷자세로 대기하였다.


바로 그때 여단장님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약 200여명의 인원이 음악만 잔잔히 흘러나오는 가운데 조용히 차렷자세로 서 있는데 당사자인 서부여단장님께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신 것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보아하니 당황한 것은 나뿐만 아니라 큐 싸인을 준 인사과 또한 당황스러워 보였다.


생각해보니 행사가 11시 시작이면 11시에 시작하는 것이 맞다. 특히나 여러 국가가 함께 일하는 국제적인 조직이나 기구의 경우 다른 훈련도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시간 약속을 정확히 지켜왔다. 여단장도 당연히 행사 10분전에 와서 숨 좀 돌리고 물이라도 한잔 하고 싶었을 수 있지. 해우소라도 들려서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고 싶을 수 있지.

 

그렇게 모두가 선 채로 약 1분의 시간이 흘렀다. 일각이 여삼추였다. 제발 이제 그만 나오셔라 라는 생각을 다시 1분 넘게 하자 다시 지휘부에서 싸인이 내려왔다. 통신은 방송을 끄고, 나에게는 각국의 내외귀빈들에게 다시 착석하라는 안내 멘트를 하라는 것이었다.

"Guest on the podium, Please take a seat."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조금 웅성대다가 다들 자리에 앉고 대대장님의 지시에 병력들은 쉬어 자세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기류가 심상치 않은데.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여기서 더 망치면 이건 국제적인 망신이다."


카톡을 확인해보니 단장님께서 행사시간이 10여분 남아서 서부 여단장님과 차 한잔 하고 행사 시간에 맞춰 입장하시겠다고 단톡방에 글을 남기신 상태였다.


11시가 되자 본청 앞 입구가 부선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인사과에서 큐 싸인이 들어왔다. 아니 이번에는 내 눈으로 봐야겠다. 큐 사인을 이해 못한 척하고 본청 건물을 계속보니 서부 여단장님과 근접 경호팀, 단장님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제야 인사과에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이번에는 진짜라고 진심을 담아서 목소리를 더 크게 내질렀다.


"Ladies and gentlemen, Distinguished guest, Sector west commander, All rise ,attention,"

"지금 서부여단장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모두 일어서주시기 바랍니다. 부대 차렷."


다시 병력들은 차렷 자세로 들어가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Salute to the General. 여단장께 대한 경례."

영어도 천천히 읽고, 영문과 한국어 사이에 쉼을 적당히 두어서 행사 지휘자인 대대장님이 충분히 인지하게 하였으며, 또박또박 읽어서 방송실이 노래를 틀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게 하였다. 완벽했다.


"Next, there wil be a general inspection of ROKBATT forces. 열병."


이번에도 영어 멘트 뒤에 마음속으로 둘 셋 쉬고 열병이 들어갔다. 이어서 대대장님의 열병 구령이 이어졌다. 단상에서 내려와 병력들에게 내려가는 서부 여단장을 호위하기 위해 전통 호위 무사 옷을 입은 인원 두명이 발을 맞춰 걸어왔다.

 

 통풍도 잘 안되는 긴 한복을 두 세곂을 입고 뙤약볕에 계속 서서 예행 연습 때부터 해온 고생을 알기에 마음 속으로 응원했다. 제발 발이 맞아라. 다행히 우측으로 90도 꺾어야하는 난코스 구간 2군데를 모두 이상 없이 넘겼다. 확실히 타국의 행사는 즐기며 관찰하는 입장이었다면,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들 모두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다 보니 몰입감이 달랐다.


이어서는 국민의례가 있었다. 이전 TOA 행사와 마찬가지로 유엔가, 레바논 국가, 애국가 순으로 나왔다. 이전에는 길게만 느껴졌던 국기에 대한 경례가 그리 길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이전 부대 교대 행사 떄는 우리로 인해 머나먼 타국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온다는 그 사실에 감격하고, 물론 조금이지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메달을 받으며 퍼지는 애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릴 때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무사히 끝나길만을 바랬다.


다음은 유엔 평화유지 작전 간 순직한 인원들에 대한 묵념이 이어졌다. 315명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그 뜻을 이어받겠다는 사회자의 멘트를 그 묵념곡에 맞춰서 끝내야 했다. 정해진 멘트는 영문 3줄 정도에 불과하였고, 묵념곡은 1분 9초나 되었다. 여기저기서 좀 더 감정을 실고 높낮이를 다소 격해게 표현해달라는 주문들이 들어왔다. 특유의 반골기질이 올라와서잠깐 흐느낄까 하는 충동이 들었으나 참았다.


아무리 시도해봐도, 단어 하나 하나 읽어봐도 무리였다. 결국 고안한 방법은 뒤늦게 들어가는 것이었다. 일동 묵념하고 바이올린 연주가 나오고 작은 북이 들어갈때 일으면 묵념을 하며 순직자를 기리다가 잠깐 딴 생각을 할 수있는 그 타이밍에 사회자가 멘트를 쳐서 315명의 유엔군들이 레바논의 평화를 지키려다가 순직하였다는 정보를 주어 다시금 생각을 다잡을 수 있게 하니 말이다.


연습한 대로 작은 북이 서서히 클라이막스로 향하고 있을 때 멘트가 들어갔다.

"315 souls have fallen for the peace and security of Lebanon..."


거의 음악 종료 1~2초를 남겨놓고 종료했다. 발음부터 호흡 끝나는 파트까지 거의 하나의 음원이라 볼 수 있을 만큼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이어서 서부여단장의 메달 수여가 있었다. 주요 직위자 10여명을 단상 위에서 여단장이 메달을 패용해주면, 메달을 받은 10여명이 연병장으로 내려가 나머지 인원들의 메달을 수여해주었다.

다른 사람이 서로 메달을 달아주고 있을때 얼른 내 메달을 내가 스스로 달았다.


서부여단장의 훈시가 이어졌다.

"명예로운 유엔 메달을 수여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남은 기간도 끝까지 임무완수 해주길 바랍니다."


훈시 뒤 경례까지 하고 이어서 축하공연 모듬북과 태권도가 이어졌다.


“모듬북은 한국의 전통 타악기로서 전투의 시작을 알리거나 전투 중 사기를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주되었습니다.” 나의 말에 세계 곳곳에서 방문한 손님들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는 태권도 격파 시범이 이어졌다. 모두 끝난 뒤 지휘관들과 인원들은 연회 장소로 이동하였다.

김치전, 호박전, 등갈비, 잡채, 직접 담근 식혜 등 급양관과 취사병들이 솜씨를 뽐내었다. 기름진 전 냄새에 따끈할 떄 먹어야 한다는 생가이 간절했다. 아직 나는 케이크 커팅식과 샴페인 개봉 식순을 앞두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식순을 다그치듯이 진행하였다.

먼저 케이크 커팅식이 있겠습니다. 이어서 바로 샴페인 개봉이 있겠습니다. 다들 음식을 빨리 먹고 싶었는지 한마음 한 뜻으로 나의 사회에 잘 협조한 결과 모두 두 개의 식순을 연달아 헤치워 버렸다.

“One, two, three!”


 다 같이 박수를 치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다들 눈치를 보며 음식을 담을까 말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외국군들이 아직 다들 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먼길 자리 해주신 귀빈들이 먼저 담고 한국군이 담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에 나도 기다렸다. 그렇게 아일랜드 대대를 먼저 음식을 담을 수 있게 배려하였다. 이어서 가나 대대도 보내려했으나,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나 대대의 대화가 다 끝나고 음식을 다 받기를 기다리기에는 사회를 보면서 에너지를 많이 썼고, 탕수육과 칠리새우, 잡채가 식어가고 있었다. 어쩔수 없이 바로 접시에 들어서 한국군 중 1등으로 줄에 섰다.

가장 막내 계급인 중위가 스타트를 끊자 이어서 다른 한국군들이 모두 일어나서 내 뒤에 붙었다. 갑자기 한국군들의 대거 유입으로 줄이 밀리고 등이 떠밀렸다. 내 바로 앞은 아일랜드 군이었기 때문에 나까지 밀린다면 이건 외교적 문제였다. 뒤에서 밀었지만, 허벅지에 힘을 주고 내 앞의 아일랜드 여군까지 밀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일랜드 여군은 처음 보는 한국의 잡채가 신기한지, 맛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지 몇 번이고 집게로 잡채를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결국 핸드폰으로 사진까지 찍었다. 명백히 뒤에 한국군들의 줄을 보지 못한 눈치였다. 한계였다. 뒤에서는 줄이 계속 밀리고 행사 내내 서 있었던 터라 허벅지의 힘은 풀리고 있었다. 간신히 피로연 사회도 빠르게 마쳤는데 이렇게 잡채가 굳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That is korean traditional fried noodle. You should definitely try.”

자연스러웠다. 간단히 한국 음식을 친절히 소개시켜주는 척하면서 뒤에 수 많은 사람들이 서 있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인지시켜 주었다.


다행히 눈치를 챈 아일랜드 여군은 빠르게 진도를 빼주었고, 나도 오랜만에 접시에 음식들을 가득가득 담았다.


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뒷문으로 가보니 급양관님과 취사병들이 있었다. 음식을 더 준비하고 떨어지면 바로 채워넣기 위해 대기중이었다. 굳이 행사장에서 먹지 않고 뒷문을 통해 나와 구석에서 서서 먹었다. 손바닥만한 김치전을 손으로 들고 접어서 싸먹었다. 기름이 흘러나와 입술에 흘렀지만, 너무나도 맛있어서 웃음만 나왔다. 남은 기간 중 가장 큰 업무인 유엔 메달 수여식도 다 끝났겠다. 보는 사람도 없겠다. 음식은 충분하겠다. 홀가분했다.


명예로운 유엔 메달을 왼쪽 가슴 아래에 달고 구석에 서서 음식들을 다 먹고 유유히 빠져나와 방으로 돌아갔다.


큰 행사를 마치고 오후는 휴무였다. 배도 부르겠다 전투복을 뱀 허물처럼 벗어 바닥에 둔 다음 침대 위에 뛰어 들어갔다. 앞으로 정복에 달 메달이 하나 생겼다.

앞으로 사람들이 정복에 있는 메달이 무어냐고 묻거든 파병 이야기를 자연스레 하겠지. 나의 경험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주변으로부터 인정 받는 것. 그게 곧 명예겠지.


이번 행사 간 유독 명예라는 말이 많이 쓰였다. 귀빈을 소개할 때도 명예로운 여단장이라고 하였고(대개 다른 나라의 행사를 보아도 최상급자가 연설 등을 할때 사회자는 명예로운 아무개가(Honorable Commander) 연설을 하시겠습니다. 라고 멘트를 친다.) 명예로운 유엔 메달 수여식에 참석하여 영광이라고 모두가 이야기 했다.


명예란 무엇일까? 일단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즉 권력이고 자본으로 가치를 표현한다. 예를 들어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되고, 수요가 높은  물건의 가치는 높은 가격대에 형성된다. 노동력의 경우에도 소위 말하는 전문직, 변호사나 의사 등은 해당 분야에 대한 많은 투자, 즉 노력을 하여야 하고 높은 월급을 통해 가치를 인정 받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원리대로 굴러가지만은 않는다.


1년에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매매업소를 엄마가 딸에게 물려주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성매매 포주의 이미지는 대개 조직 폭력배의 모습이지, 엄마의 모습을 띄지 않는다. 같은 여성끼리 성을 착취하였다는 것과 또 그것도 엄마가 딸에게 대를 이어서 물려주었다는 소식이 자극적이었다. 연 매출 100억이라는 숫자도 뇌리에 남았다. 일단 세금을 내지 않고, 업소들은 대로변의 좋은 상권에 위치한 것이 아니니까 월세도 얼마 나오지 않겠지.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이 카드로 계산하는 것도 아니고 현금 영수증은 더더욱 바라지도 않겠지. 아니다. 연 백억대의 매출이면 그냥 그 건물을 샀다.


군인의 월급으로 평생 100억원이라는 돈을 만져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럼 군인의 군 복무보다 엄마가 딸에게 물려준 성매매 업소에서의 성 착취가 가치 있다고 판단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원리로 보자면 그렇다.

여기서 우리의 상식은 현실과 괴리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를 괴리감을 보듬어주기 위해 만든 개념이 명예다.


나의 일은 가치가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제 값을 받지 못한다. 그 간극을 채워줄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명예가 있다. 결국 명예란 인정받고 싶고, 또 그러지 못한 현실을 위안 받고 싶은 심리였던 것이다.


핸드폰으로 사전에 쳐봤다.


 명예.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일컬어지는 이름 (예) 명예를 회복하다.

 도덕적 존엄에 대한 자각 또는 도덕적 존엄이 남에게 승인되고 존경·상찬되는 일.

 사람의 사회적인 평가 또는 가치.

 지위나 직명을 나타내는 말위에 쓰여서, 그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고, 또 그 공로를 찬양하기 위해 증여되는 칭호. (예) 명예 총재 / 명예 시민



기준이 다 남한테 있다. 외부에 있다. 그러니까 이런 메달들로, 계급으로, 훈장들로, 복장으로 나타내겠지. 옷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게. 그럼 사회가 변하면, 그 평가가 달라지면 그에 따라 명예도 달라지겠네.


부와 명예와의 관계.

가치의 상징은 부. 그러자 문제가 생겼다. 상식과 맞지 않는 "부" 그래서 생겨난 개념 "명예"

군에서 명예를 강조하는 이유.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만한 돈을 못주니, 스스로 명예심을 고취. 이것이 복장으로 나타남.


명예롭다면 언제든지 라는 태양의 후예의 대사. 이게 다 밥그릇 때문이라는 알리의 가사. ‘~가 밥 먹여주냐.’ 라는 말에 담긴 자본의 원리와 명예의 괴리.


침대에 누웠다. 김치전을 하나 더 먹을걸 그랬다.

김치전 또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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