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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준 Mar 26. 2022

8월 1일~8월 8일

2차 수정완료

8월 1일(일).


무료한 주말 아침 당직근무를 서고 있던 중 cctv에 검은색 벤츠 한대가 눈에 띄었다. 뭔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기다려 보자. 뭐 위병소에서 연락 오겠지.”

여유롭게 다리를 꼬며 나의 평화로운 근무시간에 방문한 이 손님을 cctv를 통해 계속 쳐다봤다.


이내 위병소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무전이 왔다.

“화상 환자입니다. 치료를 원한다고 합니다.”


아 환자는 예상 못했는데.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평일에 우리가 환자를 몇차례 본 적이 있다고 듣긴 했는데, 주말에 모두가 쉴때, 특히나 내가 당직일때 외국인 화상 환자가 오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또 우리가 어떤 민족이냐. 우리는 동방 빨리빨리의 민족이다. 말도 안통하는 외국인이 화상을 입고 부대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며, 위병소에서 근무하는 인원이 문을 열어줄지 말지에 대한 판단을 당직사령님과 나에게 요구할 때 내 똥줄이 같이 타는 건 당연한 이치다.


급한 마음에 의무대에 우선 연락했다. 무전으로 연락하니 주말에는 환자를 응급환자를 제외하고는 보지 않는다고 연락이 왔다. 생각에보니 응급환자인지 증상은 어떤지 등 기초적인 것도 확인하지 않았다. 다시 위병소를 통해서 외국인 환자의 화상부위를 확인했다. 확인 결과, 환자는 응급환자가 아니었고, 이전에 화상을 입고 우리에게 치료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으며, 오늘 다시 약을 받기 위해 방문한 일반 환자였다.


의무대의 답변을 지휘통제실에서 내가 무전을 통해 듣고, 이를 다시 위병소 한국군에게 전달했다. 위병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군 특전사 인원이 아립인 환자에게 의무대의 입장을 잘 전달하고, 이를 아랍인 환자가 충분히 이해한 뒤 잘 돌아가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외국인 환자는 안타깝게도 영어를 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한국어를 알아듣는 눈치도 아니었다. 우리 인원도 아랍어에 유창하지 못했다.  다시 아랍어로 해당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한국인 아랍어 통역 군무원을 통해 이 아랍인 환자와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미안한데 응급환자가 아니라 단순히 약을 받으러 온 거라면 주말에는 제한 돼. 이 한 마디하려고 과정을 몇 단계나 거쳐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핸드폰으로 아랍어 통역군무원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다.

“아뿔싸. 핸드폰이 안되네.”


 하필이면 레바논의 기름 난으로 인해서 휴대폰도 잘 안터졌다. 시간을 보아하니 오전 9시 20분. 그래 모두가 주말 아침 모처럼 늦잠을 즐길만한 시간이다. 그래도 제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전을 하였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하나다. 날도 더운데 약도 받지 못할 저 화상환자는 열리지도 않는 남의 나라 파병부대 문 앞에서 제대로 된 답변도 받지 못한 채로 이미 충분히 기다렸다.


이마에서 땀이 주륵주륵 흘렀지만, 급한 마음에 빠르게 통역 군무원 방으로 뛰어가서 방문을 두들겼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무슨 일이에요?”

샤워를 하고 돌아온 듯 타월로 머리를 닦고 있는 군무원님이 물었다.

“아 진짜 지금 죽을 것 같습니다.”


자초지종 상황을 설명했고, 레바논의 경제난이 일요일 아침 09시 25분에 나로 하여금 지휘통제실에서 여기까지 뛰게 하였음을 불평했다. 상황을 파악한 통역 군무원님은 내가 가져온 무전기를 통해 아랍어로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이내 환자는 평일에 다시 오겠다며 돌아갔다. 상황 종료.


더운 날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녔다. 정말이지 양말이 다 젖었기에 전투화를 벗고 테라스에 잠깐 앉아 그늘에서 숨을 좀 돌렸다. 방에서 통역 군무원이 시원한 물을 한잔 가져다 주었다.

한 모금 마시고 발을 말리며 현지 상황에 익숙한 통역 군무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아 항상 뭔가 제 근무때만 뭐 상황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먼저 앓는 소리를 건넸다.


“아 그렇지도 않습니다. 다른 분들 근무 때도 화상 환자들 많이 옵니다.”

군무원님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다른 환자는 오지 않고 항상 화상 환자만 우리부대에 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소문이 다 났다는 것을 의미해요. sns 나 우리로 치면 맘 까페 같은 곳에 댓글로 다 알려줘요. 그래서 우리 작전지역에서 엄청 먼 곳에서도 한국군이 무료로 약을 주니까 오고 그래요.”


“ 우리의 민군활동의 목적이 작전 지역 내의 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서 작전을 원활하게 하는 건데, 우리의 작전 지역이 아닌 곳에서 오는 경우는 목적에 안 맞네요. 근데 그래도 백번 양보해서 우호의 범위를 넓힌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근데 한국군이 무료로 제공하는 의료품은 한정되어 있잖아요. 지금처럼 주말이나 언제나 시도때도 없이 환자들이 우리에게 온다면 언젠가 우리의 능력 밖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건데, 그때 누군 주고, 누군 주지 않는다는 것은 불만이 되죠.”


“하긴 그쵸.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의료품을 지원할 때 우리는 지역 당국과 각 마을의 시장단을 통해서 지원하는 거죠. 현지 당국의 자치력에 간섭 안하고.”

우리는 그동안 민군활동을 통해 각 마을 시장단과 협조하여 원격으로 의료 상담을 하고 지역 당국을 통하여 의약품을 전달하고 있었다.


“근데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물론 그런 일이 우리 작전 지역에서 일어나진 않겠지만, 고의로 고아와 같은 어린 아이들에게 화상을 입게 하고 의약품을 타가서 되파는 행위에요.”

 그냥 마음 아프니 도와주자는 나의 무지한 1차원적인 생각보다 현실은 고차원적이었다. 당장의 온정만으로는 해결 할 수 없고, 오히려 단순한 온정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의무대의 최우선 임무는 우리 병력을 치료하고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쓸 약품까지 손댈 순 없다.


물 한잔에 대화를 주고 받다보니 어느새 발바닥의 땀은 다 식었고, 다시 돌아와서 근무에 투입했다. 주말 당직근무는 더더욱 체력 안배에 집중해야하는데, 아 초반에 힘을 너무 많이 뺐다.


(참고 :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그래도 끝끝내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지난 어느 날 서부여단 지휘관 회의에서 각 국가의 대대장들이 회의를 하다가 현지 화상 환자들에 대한 각 국의 애로사항이 주제로 나왔다. 귀가 번쩍 뜨였다. 비단 우리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었구나.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이 상황에 대처하고 있나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마찬가지로 다른 국가들도 의료품 지원은 지역당국을 통해서만 하고 있었다. 값 비싼 화상약품을 많이 얻어내기 위해 어린아이를 이용한다는 사례가 회의에서 나왔다. 괴담인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



8월 3일
 
 서부여단장 야간 TOA 행사.



8월 4일 (수)


오전에는 딱히 큰 업무가 없었다. 이 유엔 업무가 그렇다. 일이 많을 때는 막 한꺼번에 몰아치다가 또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물론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관계, 레바논의 국내 정세에 따라 우리의 업무도 확확 바뀔수는 있지만 말이다.


어제 저녁에 신임 서부여단장 이취임식이 있었고, 늦게 부대로 복귀하여 오전까지 그 피로가 가시지는 않았다. 꾸역꾸역 점심시간까지 커피 한 잔으로 견디고, 점심을 11시 30분쯤 먹고 퇴근하여 낮잠을 잤다.

그때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지난번 근무 취침때도 그런 것 같았는데. 왜 항상 내가 침대에 누워있을 때만 상황이 터질까. 기분탓인가.

이불을 발로 찼다. 벌떡 일어나서 전투복을 다시 챙겨 입고 방문을 열었다. 모두들 뛰어다니고 있었다. 빠르게 상황실로 뛰어갔다.


대피호로 대피하는 인원들은 모두 빠르게 대피호로 이동하였고, 위기 대응반도 모여서 정보를 모으고 상황을 추적했다.


먼저 12시 15분 부 레바논 남쪽에서 이스라엘 북쪽으로 로켓 2발을 발사했다. 우리 작전지역은 아니고 동쪽에서 쏜 것이었다.

이에 대응하여 1차로 이스라엘은 12시 30분에 레바논 남쪽 동부여단 작전 지역에 8발을 포격대응했다.

그러자 다시 이번에는 레바논 남쪽, 우리의 작전 지역인 서쪽 나쿠라에서 이스라엘로 18발을 쐈다.


우리 쪽에서 발생한 포격은 아니었지만, 다른 부대에서 공유되는 내용들과, 레바논 현지 뉴스, 인터넷 신문 등에 촉각을 세우며 정보를 모았다.


12시 54분 부 인터넷을 통해 이스라엘 국방부에서 성명서를 냈다. UN에서 추가적인 조치가 없을 시 이스라엘은 포격을 이어가서 더욱 대량 보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성명서를 내고 잠시 뒤, 2차로 13시 25분에 이스라엘은 레바논 동쪽에 44발, 서쪽에 26발. 3차 포격으로 동쪽 2발 발사했다.

3차례에 걸쳐 155mm 포로 총 80발을 쐈다.  


유엔군의 모든 정찰 및 순찰활동이 즉시 중지되어 순찰중이던 유엔군들은 가장 가까운 유엔군 기지로 대피했고, 한국군 주둔지 근처를 순찰중이던 폴란드 대대의 인원들이 한국군의 대피호로 대피했다.


1520분부 레바논군과 이스라엘군의 긴장을 높이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유엔은 양국 모두 모두 국경선인 블루라인 일대에 위치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모두들 긴장한 가운데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서 한참을 기약 없는 기다림만 했다. 아마 윗선에서 대화 중이겠지. 이제 그만 서서히 대화를 마무리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때 즈음 하고도 조금 더 지나자 유엔군 사령부로부터 상황 해제 전달이 나왔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피소에서 나왔다.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사람들에 길 고양이들은 제법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점심 휴식시간은 다 지났고, 사무실로 돌아와 숨 돌렸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 잠깐 다시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에 서부여단에서 임무교대식이 있었다. 여단장님을 비롯하여 주요직위자들은 오늘이 임무수행 1일차다.

시차적응은 다 하셨나. 레바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해당 내용은  AP통신, Aljazeera 통신 등의 공개자료입니다.)



8월 6일(금)

오전 11시 07분 공습 경보가 또 다시 울렸다. 이런 또 점심시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다. 긴박한 상황이긴 했지만, 마음 속으로 긴장은 덜했다. 한숨 한번 푹 쉬고 내 자리로 갔다.


상황을 보아하니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선에 위치한 가나 대대가 엄청한 폭음을 들었고, 이에 가나 군이 서부여단과 그 예하의 모든 대대에 경고한 것이었다.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위해서 자리에 앉아 실시간 뉴스를 검색했다. 레바논 인터넷 뉴스와 이스라엘 국방부의 트위터를 보니, 레바논 남쪽에서 한 정치세력이 이스라엘의 골란 고원으로 로켓 20발을 발사했다. 이스라엘은 대공 방어체계인 아이언 돔으로10여발을 격추하였고, 즉각적인 대응사격을 하였다.


‘아오, 오늘도 점심 먹기는 글렀다.’

아쉬운 마음에 식단표나 한번 확인하고 추가적인 정보가 입수될 때까지 멀뚱멀뚱 자리에 있던 찰나 상황 종료 메세지가 전파 되었다.

이틀 전 상황에 비해 상당히 빨리 상황이 종료되었다.


모두들 생각보다 상황이 일찍 종료되었다며 좋아했다. 어서 또 상황이 변하기 전에 빨리 밥을 먹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점심 식사가 따뜻함에 감사하며 밥을 먹고 또 다시 비상상황이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낮잠을 청했다.


낮잠에서 깨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출근했다. 인터넷을 보니 아까 전 상황을 동영상으로 찍은 것이 트위터에 올라와 있었다.

어떤 트럭을 마을 사람들이 둘러싸고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오늘 상황이 일찍 종료된 이유는 레바논 주민들 덕분이었다. 레바논 정치세력이 로켓포를 발사하는 소리를 듣고 인근 레바논 마을 주민들이 나와서 그 정치세력들을 붙잡았다. 그 로켓포를 실은 트럭을 포위하고 군과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레바논 지역 주민들이 직접 나와서 로켓포 미사일 차량에 항의를 하며 그 차량을 에워싸고 또 경찰에 인계하는 동영상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오늘 레바논의 정치세력이 사용한 로켓포는 사거리는 15km 정도이고 큰 차량 뒤에 탑재하여 이용한다고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로켓포라고 해서 휴대용 RPG 정도를 생각했는데 멍청한 생각이었지, RPG로 십여 킬로미터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YTN에 나오는 북한의 다연장포처럼 생긴 것을 우리의 두 돈반 같은 차 위에 실어놓았다.


실상황의 이 사진을 뉴스에서 보자 우리 한국군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군은 레바논 남쪽으로 이어지는 큰 고속도로에 감시 초소를 운용한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국경지대로 승인받지 않은 불법 무기나 전투원들이 유입되는 것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볼때마다 나 같으면 감시 당하는 큰 고속도로가 아닌 좁은 흙길이라도 이용해서 돌아오거나 차 트렁크에 분해해서 차에 어찌어찌 숨겨서 남쪽 국경선 일대로 가져오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차에 숨겨서 가져올 수 있는 사이즈의 무기들은 두 국가 간에 긴장감을 고조시키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무기들이고, 두 국가를 긴장시킬만한 사이즈의 무기는, 큰 도로를 통해서만 운반 가능한 사이즈라는 것을 파병 몇 개월만에 새로 배웠다.

우리의 임무가 중요하긴 하네. 그건 그렇고 주말엔 상황 없기를.



8월 8일(일)


어제 오늘, 주말내내 휴대폰만 계속 보고 있다. 이게 온전한 휴식이 아니고 뇌를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은 굳이 엄마가 말 안해도 알고 있다. 유튜브와 인스타, 넷플릭스, 카톡을 번갈아가면서 하다가 피곤하면 시간에 상관없이 자고 있다. 우울증 초기의 증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병 오기 전 계획을 세울 때까지만 해도 파병지에서 할 것이 실로 많았다. 파병지에서는 어느 정도 반 강제로 외부와의 어느정도 단절이 된 채, 개인 시간이 많으니 그동안 시간이 없다고 핑계대온 자기계발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독서, 운동, 인생 장기 계획, 태닝 등 해야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딱 처음 한 달, 길어야 세 달 계획대로 산다는 파병 유경험자들의 경험담은 나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갖게 하였다.


파병 후 약 4개월이 지난 오늘, 침대에 누워서 앱 세 개만 주구장창 돌리며 눈 아프거나 피곤할 때 바로 자는 주말을 보내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처음 파병지에 와서는 개인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 느꼈다. 일부 2인 1실 쓰는 인원들이 있고, 예전에는 컨테이너 하나에 열 명 가까이 침대만 두고 살았다고 하니, 좁긴해도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 좀 적응하고 살만 한지, 누워서 천장을 보며 방의 사이즈를 보자 개인 공간의 크기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 없는 방안에 문 닫고 있으니, 생각이 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답답한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답답하긴 답답하지. 근데 사고가 확장이 안되고 무언가 갇힌 느낌. 사고가 이 안에서만 맴돌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간이 정신을 지배한다.


창문이 없으니, 그래서 좀 더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었고, 그래서 휴대폰으로 보는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이라던지 유튜브가 창문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예전에 본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원’ 이 떠올랐다. SF 영화로, 시민들은 암울한 현실을 잊기 위해 매일 증강 현실의 삶에 중독되어 로그인한다. 그 결과 현실도 구분을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그나마 그 증강현실 마저 대기업이 자본으로 사버려서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내려고 하자 약자들이 연대하여 대기업을 물리쳐 내는 내용이었다.

그래 현실을 잊기 위해 들어온 증강현실인데, 증강현실에서도 돈의 논리로 약자가 된다면 또 어디로 도피해야한단 말인가.

같은 영화를 보고 다른 해석이 나오고, 사람마다 감동을 받는 포인트가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결론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좋아도 매주 목요일은 가상현실의 서버를 운용하지 않아서 모든 플레이어들이 현실의 삶을 살도록 하는 정책을 반영한 것!

마지막 그 5분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담지 않았을까.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지금에서야 해석되었다.

 잠을 자는 것도 마찬가지. 현실 세계의 삶에 좀 더 집중하자. 탈춤의 해석. 양반을 비판하고 싶다. 그러한 현실. 하지만 도피. 늘 존재해 온 이상향.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현실로부터 도망다니는 답답한 사람들은 있어왔구나.


다시 집중.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내 집 앞 누가 장판을 버려놓았다. 내 것이 아니라서 그냥 방치해 두었다. 딱 문 열자마다 보이는 내 앞마당인데 말이다. 그래 이거 누가 버렸나 찾아내고 감정싸움 하느니 그냥 내가 버리자.


장판을 들려하자 생각보다 무겁고 보기보다 커서 들지 못했다. 화가 솟구쳤다.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아니 이걸 모르고 버릴리도 없는 사이즈에 크기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그리고 버리고 가더라도 모를 수가 없다. 식당 가는 길에 내 방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세 번은 왔다갔다 하면서 자기가 버린 장판을 마주했을 것이다.

평생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나 끼치며 살아라. 짜증이 확 나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이성을 되찾고 장판을 혼자 나를 수 있을까 견적을 내보았다. 아오, 가장자리를 들어보니, 이건 도저히 혼자 나를 수 없다. 방치된 사이 흙먼지도 가득 묻어서 보아하니 장판을 나르면 옷도 더러워지고 땀도 흘리는 것은 분명했다. 기왕에 옷을 버리고 땀까지 범벅이 될거라면, 한바탕 뛰고 치우자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간 가량 뛰었다. 땀에 흠뻑 졌었다. 티셔츠를 땀에 적시고 난 뒤 군수과의 끌게를 가져와서 혼자 가져다 버렸다. 누군가 버린 장판. 그 뒤 그 옆에 못보던 쓰레기들도 나왔다. 젠장,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내 방 앞에서 볼 줄이야.


앞마당 쓰레기까지 이왕 장판 버린 김에 다 모아 버리고 군수과의 끌게도 반납했다. 오며가며 장판을 본 내 기분도 늘 안좋았었는데 한결 나아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그냥 내가 버릴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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