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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Jan 01. 2025

케이크의 쓸모

8월의 감정

생일 때마다 선물과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케이크. 어릴 때에는 케이크를 잘 먹지 않았다. 생일날 어쩔 수 없이 케이크를 사야 할 때에도 빵집에서 가장 작은 사이즈를 샀다. 부모님은 단 음식을 즐겨하지 않았다. 그 입맛을 나도 닮아서였는지 포크로 몇 번 건드리고 나면 나머지는 버려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음식물이 생기면 엄마는 좋아하지도 않는 그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치우던가, 그것도 아니면 은박지에다가 남은 음식을 싸서 냉동실에 넣었다. 어느 날 배가 고파져 냉동실을 뒤지다보면 은박지에 싸인 정체모를 것들이 보였다. 나는 그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 뭉쳐져 있는 은박지를 두 손으로 벌렸다. 까보면서 조금의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늘 실망감은 배가 되었다. 거기에는 딱딱하게 굳은 스펀지 빵과 그보다 더 딱딱해진 생크림이 얼기설기 엉겨 붙어있었다. 케이크 본래의 층층이 레이어 되어있던 모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주먹밥처럼 보이는 은박지도 까보면 케이크였다. 이제는 둥그렇게 뭉쳐진 그것을 나는 농구선수처럼 쓰레기통에 던졌다. 딱딱한 은박공이 골대를 맞고 튕겨져 나와도 내용물이 터질 일은 없었다. 결국 케이크의 최후는 입으로 들어가지 않고 쓰레기통 행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케이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릴 적 입맛이 뭐 어디 가겠냐만은 그것보다 나도 엄마를 닮아서인지 남은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고이고이 모아놓는 꼴이 싫었다. 케이크는 나에게 쓸모없는 것들의 총체 같았다. 케이크 위에 꽂힌 초들은 한 번 불을 밝힌 뒤 버려지고 아이들이 토핑만 쏙쏙 빼먹은 뒤 건드리지 않은 케이크는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다. 잠깐의 기쁨을 위해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언제나 얼굴을 찌푸렸다.


생일날엔 좋은 것보다 싫은 것을 더 많이 받게 되는 날이기도 했다. 가까운 지인들은 생일선물로 굳이 나에게 어울릴만한 것들을 골라왔다. 그중에 내 취향은 없었다. 백화점에서 산 물건들엔 교환증이 딸려 있었으나, 내가 맘에 드는 것을 고르면 금액이 맞지 않아 결국 조금의 돈을 더 보태어 내 것으로 취해야 했다. 이럴 바에야 선물도 케이크도 전부 받기 싫을 때가 많았다. 차라리 현금이나 상품권이었으면 어떻게든 유용하게 썼을텐데,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내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내가 정한 ‘쓸모 있음’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곤 한다. 그 판단으로 사람도, 물건도 가치의 기준이 달라졌다. 기념일마다 버려지는 케이크처럼 자주 내 주변의 사람들과 물건들을 가지치기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버려진 것들에 잘못이 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기도 하며, 쓸모 있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모든 것을 쓰임에 따라 매기는 척도가 어쩐지 정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최근에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대화가 흘러가니 나를 보는 시선에서 경멸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부터 배워야겠구나.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의 눈으로 보겠구나.’


올해 생일에는 처음으로 케이크가 없었다.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어쩐지 허전했다. 그리고 그제야 케이크의 쓸모를 알았다. 온 가족이 모여 일 년에 한 번 불러주는 생일축하곡이 그렇게 따뜻했구나, 초를 불며 소원을 비는 몇 초간의 정적이 그렇게 간절했구나, 몇 입 베어 문 케이크가 그렇게 달콤했구나. ‘쓸모없음’에 사랑을 장착하니 모든 것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 딸아이가 처음으로 사준 립스틱은 얼굴 톤과 맞지 않는 색이었다. 그래도 자주 그것을 꺼내 발랐다. 딸아이가 나를 쳐다본다. 방그레 웃는다. 그것으로 립스틱의 쓸모는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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