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잎사귀들이 햇빛을 받아 진실로 진해지는 것처럼
바람결에도 우수수 떨어지며 흩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대화는 매번 그랬지
찬이슬이 눅진하게 내린 새벽 같을 때도 있었고
정오의 태양에 뒷통수가 뜨거울 때도 있었지
널 만나면 언제나 부끄러웠어
우리의 대화에 언제나 표정을 들키는 건 나였지.
부러 너의 앞자리보단 옆자리를 택했던 것은
나의 붉은 표정 탓
오늘은 어쩌다 닭볶음탕을 먹으러 갔어
나는 술잔에 맥주를 따랐고
너는 술잔에 보리차를 따랐지
비슷한 색깔을 띠는 술잔 두 개가 참 예뻤어
언제나처럼 나는 붉어졌겠고 너는 그런 나를 바라봤지
가끔가다 꼬고 있는 다리에 너의 발이 걸릴 때도 있었어
닭볶음탕 위에 있던 기다란 파가 숨이 죽을 때까지
우린 말이 없었지.
그러다 듣게 된 너의 말
아빠가 치매에 걸렸대. 어제 검사를 받고 오는 길이야.
나는 아무 말도 못했어.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 너의 마음은 지금 어떤지, 너의 가족은 괜찮은지, 내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혹은 무엇을 해주지 않아도 되는지. 궁금한 게 많았는 데 결국 한 마디도 못한 채 국자로 그릇에 담긴 감자만 눌러 부스러트렸어
오늘은 너의 앞자리에 앉아 다행이라 생각했어
그나마 내 손에 들려져 있던 것이 국자라
식어버린 너의 그릇에 빨간 국물을 끼얹어줄 수는 있었지
우리의 대화에 언제나 표정을 들키는 건 나였어.
하지만 오늘은 너의 표정을 살필 수 있었어
친구는 고맙다고 말했고 나는 답했지
“뭐가?”
우리의 대화는 이번에도 몇 문장만 남긴 채 흩어졌지만
너의 입에서 듣고 싶었던 말은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여전히 붉은 빛을 띠는 나만이
햇빛을 보고 있을 때나 바람을 느낄 때나 심지어 저녁을 지으며 국자를 들을 때에도
당분간 너의 안부를 걱정할 것 같다.
우리의 대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