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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Jul 20. 2023

엄마의 비밀병기, 샐러드

7월의 감정

결혼한 지 몇 년차가 되면 요리고수가 되는 것일까? 처음에는 주방에서 혼자 요리하는 것이 뭔가 부당하고 귀찮아 요.알.못처럼 살았다. 그런데 요리 못하는 척 몇 년을 살다 보니 정말로 요리를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전업주부로 살면서 할 줄 아는 요리가 고작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라니. 가끔은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요리에 공을 들이는 시간보다는 집 앞 반찬가게에서 찬거리를 사 오는 것으로, 제철음식을 해 먹이진 못하지만 보양음식을 잔뜩 사 먹이는 것으로 가족들의 밥상은 언제나 풍족했다. 그럼에도 뱃속이 채워지지 않고 가끔 허전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릴 때 우리 집 냉장고 안에는 멸치볶음과 콩자반, 진미채 볶음이 늘 있었다. 맞벌이였던 엄마는 자식들의 끼니걱정을 하며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밑반찬들을 커다란 통에 잔뜩 만들어 두셨다. 매일 똑같은 반찬으로 먹는 것이 싫증이 나서 냉장고 문을 여는 것이 싫었지만, 궁시렁거리며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만들어놓은 음식들은 헛헛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뭐가 되었든 엄마가 만들어놓은 반찬들엔 한결같은 사랑이 참깨처럼 콕콕 박혀있었다. (그걸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여름이 시작되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맨살이 노출되어 아이들은 자주 배를 움켜잡았다. 그럼에도 따뜻한 음식은 더워서 먹기 싫다며 손사래를 쳤다. 더위에 지쳐 집에 들어온 가족들에게 냉모밀, 물냉면만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요리보다는 조리에 가까운 행위들만 하다 보니 냉장고에 식재료들이 있을 리도 없다.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사다 놓은 600원짜리 아이스크림들만 매일 정확하게 3개씩 없어졌다. 애석하게도 우리 가족의 건강한 여름 나기는 물 건너간 듯 보였다. 


요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에는 미안한 마음들 때문이었다. 헛헛한 느낌이 이내 마음에 걸렸다. 냉동고에는 아이스크림과 냉동식품들이 한가득이었지만, 냉장고는 비참했고, 김치 냉장고는 캔맥주와 음료를 보관하는 용도로 쓴 지 오래다. 우리 집 식구들이 냉장고 문을 열면, 엄마의 한결같은 사랑이 비칠까? 고작 정기적으로 사다 놓는 아이스크림으로는 어림없을 듯하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운동과 더불어 매일 샐러드를 챙겨 먹었다. 샐러드를 먹은 지 3개월 정도 되었고 매번 사 먹기엔 돈이 아까웠다. 이제 샐러드는 직접 손질해서 소분해 놔야겠단 생각이 들던 차였다. 


매주 주말마다 신선한 야채들을 사 와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한다. 본격적, 이라는 말이 좀 거창해 보이지만 야채를 꼼꼼히 씻어 야채 탈수기에 돌리는 작업부터 손으로 하나하나 손질하는 모습은 그동안 내가 가족들에게 보여줬던 모습이 아니다. 음식을 해서 먹는 수고스러움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 냉장고 안을 알록달록하게 채워 넣는 것도 보기 좋았다. 요.알.못이 도전하기에 만들기도 쉽고 해 놓았을 때 뿌듯한 것이 샐러드였다. 여전히 반찬가게에서 반찬들을 사 오는 날이 잦지만 올여름 우리 집 식탁 위에 샐러드 하나쯤 거뜬히 만들어 올리는 것으로 위안을 받는다. 그렇게 샐러드는 감추었던 엄마의 비밀병기 요리가 되었다. 혼자서만 먹던 샐러드를 식구들과 같이 먹으니 맛도 좋았다. 


샐러드 1. 토마토 마리네이드

나는 방울토마토의 껍질을 싫어했다. 원래도 즐겨 찾지 않던 방울토마토를 다이어트한다고 먹어대면서도, 가끔 인중 안쪽 잇몸 위로 껍질이 달라붙을 때면 그게 그렇게도 짜증이 났다. 김치찌개를 먹다가 이빨에 고춧가루가 끼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는데, 하여간 껍질이 문제였다. 그런 내게 소울 푸드가 뭐냐고 물어보면 이제는 단연코 ‘토마토 마리네이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만드는 과정 속에서도 재미가 더해진다. 토마토에 칼집을 두 번 내고, 끓는 물에 데쳐 칼집 낸 방향으로 토마토 껍질이 꽃잎처럼 펼쳐지면 나는 두 손으로 빨간 꽃잎을 어루만진다. 찬물에서 토마토 껍질을 벗겨내는 것은 묘한 희열감이 느껴졌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과 레몬즙 조금으로 버무려 냉장고에 넣어두면 알알이 톡톡 씹히는 달콤 새콤한 토마토 마리네이드 완성! 아, 쉽다. 


샐러드 2. 당근 라페

요리를 잘하지 못해도 칼로 야채를 채 써는 것은 자신 있었다. 제일 자신 있는 음식이 볶음밥이었고, 볶음밥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든다. 하지만 당근 라페를 만들 때에는 채칼이 필수다. 당근 라페는 굵기가 얇고 일정해야 식감이 좋기 때문에 어설프게 식칼을 들지 않는다. 김치를 싫어하는 남편은 요즘 당근 라페에 빠졌다. 당근 라페는 홀그레인 머스터드와 식초, 올리브유의 오묘한 조합으로 새콤한 맛이 나는데, 특히 삼겹살을 굽거나 스테이크 요리를 내오면 당근 라페를 어김없이 찾는다. 내가 고기에는 마늘장아찌나 물김치를 곁들여 먹는 것처럼. 남편은 당근 라페가 아삭아삭, 입맛을 돌게 하는 김치류다.


샐러드 3. 천사채

천사채를 흐르는 물에 씻고, 채 썬 오이와 냉장고에 있는 크래미 몇 개를 결대로 찢어 양푼에 담는다. 설탕을 조금 뿌리고 마요네즈를 듬뿍 짜낸다. 아이들은 마요네즈를 짤 때마다 소스병에서 방귀소리가 난다며 킥킥거렸다. 그러면 나는 “아닌데? 엄마 방귀 소린데?” 하며 장난을 쳤다. 손으로 오물조물 섞고 나서는 검은깨를 톡톡 뿌려 하얀 얼굴에 주근깨를 가득 만들어 놓기도 했다. 매콤한 쭈꾸미 볶음 밀키트를 빠르게 휘리릭 볶고 나서 한 손에 깻잎 한 장, 쭈꾸미볶음, 천사채 샐러드를 한 쌈으로 만들어 가족들 입에 넣어준다. 오독오독 입안에 퍼지는 맵고 단맛이 상상이 가는가? 그냥 웃게 된다. 




우리 집 여름 식탁에는 샐러드가 올라간다. 가끔은 병아리콩을 삶아서 양상추 위에 올리고, 요즘 한창 맛있는 참외로 샐러드도 만든다. 그렇게 하나 둘, 요리를 배워간다. 아이들이 그렇게도 원하던 시원한 음식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차곡차곡, 냉장고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정수기에서 냉수를 따라 마시는 것보다 냉장고 문을 열어 유리병에 담긴 보리차를 먹는 상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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