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크에서 언제나 나오는 단골질문이다. 어떤 작가님들은 하루에 시간을 정해두고 매일 쓰기도 하고, 어떤 작가님들은 느낌 가는 대로 몰아서 한꺼번에 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역시나 저마다의 방식과 속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글 잘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계속해서 글을 쓰는 루틴이나 비법이라도 있는 것 마냥 우리는 그들의 하루를 샅샅이 파헤치려 한다.
<#낫워킹맘> 책이 출간되고 시간이 제법 흘렀다. 이제는 누군가 나를 부르는 ‘작가님’이란 호칭도 익숙해졌다. 공식적인 행사도 간간히 생겼고,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도 늘었다. 그만큼 글을 쓰는 마음도 더 커졌고 생활의 일부분이었던 취미생활이 생활의 대부분이 되었다.
아침이면 두 아이들의 등교준비를 도와주고, 나도 뒤따라 나와 집 근처 호숫가를 걷는다. 일정한 속도로 걸으며 ‘이 호수를 H작가님도 매일 걷는다고 했는데, 왜 나는 여태껏 마주치지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집에 필요한 식료품이 무엇인지, 오늘 할 일은 뭔지, 도서관에 반납할 책 목록을 머릿속으로 나열해 보는 것으로 생각이 갈라진다.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 휘발되어도 상관없을 정도의 하찮은 것들이다. 꼭 해야 하는 것들이 아닌 이상, 하루쯤 잊혀지더라도 괜찮은 것들. 그럼에도 나의 하루를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경치를 보며 걷는 것이고, 걷다 보면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니 시간을 투자하지 않을 수 없다.
글 쓰는 일을 하다 보면 적어둔 기록들에 감사해질 때가 있다. 매일의 일상은 사소하지만 글에 적힌 일상은 소중한 찰나로 남겨져 있다. 특히나 하나의 계절 안에 파고들어 있으면서도 조금씩 바뀌는 자연을 눈치챌 때면 나는 흥분이 되어 빨리 집으로 달려가고 싶다. 그 순간의 감정을 잊지 않으려고 떠오른 단어를 여러 번 되뇌며 돌아온다.
“내 목표는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네. 삶의 순간순간에서 그 순간의 정서를 음미하면서 말야.” -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중에서
동네 책방에서 글쓰기 모임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아직 부족하다고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거듭되는 부탁에 하는 수 없이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웬걸. 이 모임을 하지 않았으면 어쨌을까 땅을 치고 후회했을 정도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열린 마음을 덤으로 가지고 온다. 에세이라는 것은 온갖 마음들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타인의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편이다. 대부분 좋은 표현을 칭찬하며 글 쓰는 것을 독려한다. 처음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은 분들에게도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었다며 용기를 드린다. (그럼에도 머뭇거리는 분들에게는 몇 년 전의 내 글을 꺼내 보여주고 싶다.)
글쓰기 모임 사람들과 함께 ‘나의 계절’을 기록하고 있다. 모임 이름을 ‘순간의 정서’라고 짓고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글로 공유하는 중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선물 같은 자연, 매년 반복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나의 경험과 추억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으며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한 듯 매주 재생되고 있다. 되찾은 감정들에 그야말로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대단한 표현에는 다 같이 박수를 쳐주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속마음을 내비칠 일이 없는데, 웬일인지 이런 모임에서는 오히려 내 마음을 보여줘야만 될 것 같다. 있잖아, 이거 비밀인데, 너희들만 알고 있어! 하고 우리들만의 울창한 대나무숲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고 나니 언제나 글을 쓰고 공유하며 뿌듯함을 느낀다. 일상에 이처럼 재미나고 힐링받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오늘도 나는 익숙한 풍경 속에서도 자꾸만 두리번거린다. 내 마음을 두드리는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어 한다. 적어 내려간 문장에 나만의 적당한 밀도와 온도를 채워 사람들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다. 정선 작가가 이끄는 ‘순간의 정서’가 나의 하루를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