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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Sep 06. 2023

1. 코난

소설 [살롱 드 북스]

오전 11시. 베이커 타운 221번지 골목 상점의 두 곳이 동시에 불이 켜진다. 1층의 A호는 '파이프'라는 카페가 있다. 점심 장사가 피크인 이곳은 한 시간 뒤쯤부터 주변 회사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커피를 사 마시러 오는 곳이다. 카페 사장님은 문을 열어두고 환기를 시키며 바로 옆의 B호 사장님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늘은 날씨가 덥네요. 얼음을 많이 얼려둬야겠어요.”

“안녕하세요.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221번지 B호 상가는 '살롱 드 북스'라는 서점이 자리 잡고 있다. 서점 주인의 책을 아끼는 마음으로 서점 안에서는 음료를 취급하지 않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종이와 책을 아끼는 마음도 함께 품고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다른 서점과 차별화를 두어 책만 팔고 있는 것인데, 요즘 시장생태계를 본다면 맞지 않는 논리이다. 과연 책만 팔아서 장사가 될까? 하고 카페 사장은 줄곧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철학 때문에 책을 사서 바로 옆 카페로 옮겨와 책을 읽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동네 사람들은 외출할 일이 있으면 두 곳을 엮어 다녀가기도 하며, 멀리에서 오는 사람들은 당연히 ‘221번지에 오면 가야 하는 필수 코스’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찍어 인증글을 올리기도 한다. 두 가게 사장님의 잘생긴 얼굴도 한몫 하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구조로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열게 된 이들은 단골고객들을 위한 쿠폰 도장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논의 중이긴 하다.


카페 사장은 그렇지 않아도 점심때가 되면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손님들이 많기 때문에 처음엔 책을 들고 카페로 들어와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는 손님들이 신경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서점에 비해 유독 살롱 드 북스서점의 손님이 많기 때문에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살롱 드 북스 서점 주인의 이름은 셜록이다. 어릴 때에는 이름 덕분에 코난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탐정과 비슷한 분위기 풍기므로 셜록 사장도 어느샌가는 하나의 연출처럼 자신의 이름과 걸맞은 옷차림을 하고 서점에 출근하게 되었다. 몸에 딱 맞는 셔츠차림에 짙은 회색이나 체크색 정장바지를 즐겨 입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멜빵 차림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가끔은 체인 줄이 걸린 동그란 안경을 끼고 오는 날도, 탐정 모자를 쓰고 오기도 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차에서 내려 검은색 장우산을 펼쳐 들고 걸어오는데 흡사 걸음걸이까지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직까지 케이프 숄까지 걸친 적은 없다.


셜록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베이커타운의 221번지 B호에 자신이 서점을 차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셜록 홈스>의 탐정사무소는 221번지 B호에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서점을 차리기로 마음먹은 후부터 자신의 이름과 이곳 서점은 운명과도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장소에 대한 애정은 셜록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221번지 B호점을 아슬한 타이밍에 놓치고 A호점을 계약하게 된 파이프 카페 사장의 이름은 도일이었다. 때문에 도일의 어릴 적 별명도 코난이었고, 이 둘은 운명적으로 이곳을 운명의 장소로 콕 집어뒀던 것이다.


코난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두 남자.

이 두 사람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오전 11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손님들을 관찰하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묘한 궁금증을 품는다. 아마 자신의 깊은 마음속에는 의뢰인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은 흥미가 생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어둑해진 골목길에 close 간판을 붙인 두 가게가 나란히 불을 밝히고 있을 때가 있는데 그런 날이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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