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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Mar 17. 2024

그녀와 나의 노래

어제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3월 14일, 내 생일에 죽음을 맞이한 가족을 가진 지인의 이야기를 들은 게 꽤나 내겐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누구는 그날에 태어났는데, 이제 그 사람은 평생 자기 가족의 죽음을 3월 14일부터 기억할 것이다. (심지어 그 3일장 마지막날은 지인 자신의 생일이다) 그 쓸쓸함은 노래로도 달랠 수 없었다. 주변에서 겪은 지인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할머니가 생각나, 그다음 날 바로 할머니댁에 다녀왔다.


집안 가득 어두움이 깔려있었다. 나의 울적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그 어두움이 싫어, 들어가 자가마자 집안 불을 가득 켰다. 왔냐? 며 나를 반기는 할머니를 만났다.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반가움 뒤엔 그녀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어두운 방 불을 켜는 마음으로 다짜고짜 할머니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어두운 방에서 왜 불을 안 켜고 있어요? 할머닌 안 외로워요?

그러자 할머니는 ‘전기 아낀다는 목적도 있지, 그런데 그것 보단 그냥 이렇게 차부-운하게 있어, 그냥 그런 거지.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거야. 그걸 받아들이고 다스릴 줄 알아야지’.라고 말해줬다. 덧붙여, 그녀는 외로울 땐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아, 노래라니, 그건 생각지도 못했던 해결책이었다.


어떻게 그걸 견뎠느냐고 물음엔 할머니의 어린 시절이 나와 할머니 사이에 펼쳐졌다. 상상 속 할머니의 10살 무렵으로 돌아가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엄마, 내겐 증조할머니인 사람은 할머니 10살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머니가 38살이 되던 때에 아이들만 남기고 사라지신 것이다. 아버지는 그다음 중학생 때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그녀 위엔 어떤 어른도 없었다. 동생들을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끼던 그녀였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에도, 어떻게 해야 인생을 ‘올바르게 살 수 있는지’도 항시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항시’라는 말을 잘 쓴다)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은 그녀 삶이 그녀에게 던진 가장 큰 숙제였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면 그 외로움을 잠시 없앨 수 있으나, 그들은 또다시 떠날 존재들이라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기 때문에, 그걸 스스로 다뤄낼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본능과 감정에만 충실하지 않는 삶 말이다.


사실 그녀는 남에게 수다를 떨며 자기의 불안을 해소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불편하고 두려운 감정을 말로 털어내기보단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고, 그게 자기 자신에게 잘 맞는다고 깨달았던 사람이었다. 말로 쏟아내는 것도 (글쓰기가 아니라면) 결국 타인이 필요한 일이었다.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걸 어린 시절부터 깨달은 그녀는 노래를 고른 것이다.


그녀는 잠들기 전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랫소리는 닫힌 방문이 무의미할 정도로 또렷했다. 약 1분 정도의 시간 동안 가장 낭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선 끝났다. 노래로 달래지 못할 쓸쓸함, 외로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 모든 것을 이미 해소한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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