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갓집은 전라북도 무주 부남면 굴암리에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외진 곳이라 차도 잘 다니지 않는 곳이다. 외갓집 마루에 앉아 있으면 앞쪽에 커다란 산이 보였는데 그 산 아래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외갓집 식구들은 그곳을 ‘큰물’이라고 불렀다. 나는 왜 ‘큰물’인지 그렇다면 ‘작은 물’이라는 곳도 있는지 궁금했지만 질문에 명확히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물가에는 키가 큰 미루나무들이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주어 외할아버지께서 그곳에 앉아 수영하고 노는 우리를 바라보곤 하셨다. 물가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넓게 깔려 있었고, 그 돌들을 밟고 걸어가면 얕고 따뜻한 물이 나왔다. 좀 더 걸어가면 물이 무릎에 닿을 만큼 깊어졌고 그제야 물이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물속에 돌들이 많아 걸어가다 기우뚱 넘어지기도 하면 넘어진 김에 그냥 물속에 푹 들어가 수영을 했다. 물에 깎여 돌들은 둥글둥글했고 물고기와 다양한 생물들이 내 인기척을 느끼고 꽁지 빠지게 도망을 갔다. 건너편은 어른 키도 넘을 만큼 물이 깊어 가면 위험하다고 했다.
건너편까지 가는 길 3분의 2쯤 되는 곳에 ‘산태 바위’ 가 뾰족이 솟아올라 있었다. 왜 ‘산태 바위’냐 물으니 아주 옛날 산사태가 났을 때 굴러 떨어진 바위라고 했다. ‘큰물’이 익숙한 사촌 언니들이 그곳에서 나에게 수영을 가르쳐주었다. 한 언니가 나를 산태바위에서 4미터쯤 위쪽으로 떨어진 곳에 세워두었다가 하나, 둘, 셋 하고 나를 놓았다. 그럼 나는 산태바위 쪽으로 수영을 하는 건지 물에 떠내려가는지 모르게 물살 따라 흘러갔다. 산태바위에서 기다리던 언니 두셋이 나를 잡아주었다. 그렇게 나는 수영을 배웠다. 나는 큰물에서 노는 것이 참 좋았다. 밀짚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둥둥 물 위에 누워 따뜻한 햇살을 느꼈다. 물잠자리, 고추잠자리가 날아와 내 머리카락 위에 앉아 간질였다. ‘윙’ 날갯짓 소리가 평화로웠다.
작은 외삼촌은 큰 돌을 높게 쌓아 물고기를 잡았다. 잡힌 쏘가리들은 매운탕과 어죽이 되었다. 외갓집에서 먹는 어죽은 매콤 시원하니 정말 끝내주게 맛이 있었다. 또 하나의 외갓집 특별한 음식은 ‘고딩이 국’이었다. 외갓집에서는 다슬기를 ‘고딩이’ 또는 ‘도슬비’라고 했다. 우리는 고딩이를 싹쓸이 하러 다 같이 양파자루 하나씩을 들고 저녁 무렵 큰물에 들어가곤 했다. 커다란 돌을 들추어내면 크고 작은 고딩이들이 ‘나를 잡아가시오’하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우리는 누가 많이 잡았는지 얼마나 큰 것을 잡았는지 내기하듯 서로 자랑하며 신나게 잡았다. 저녁에는 된장, 호박잎, 부추를 넣고 끓인 고딩이 국과 밥을 말아 시원하게 먹었다. 그리고 나서는 마루에 모여 앉아 바늘과 이쑤시개를 하나씩 들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고딩이를 까먹었다. 네다섯 개를 한 번에 모아 꽂아 서로 입에 넣어주며 사랑도 꽃피웠다.
여덟 남매 중 막내인 엄마는 외갓집에 가면 활기가 넘쳤다. 엄마의 수다에 모두가 한 번씩 크게 웃었다. 나까지 괜스레 웃음이 났다. 시원한 여름밤 하늘엔 별이 수두룩하게 쏟아질 듯 반짝였고, 마루는 정겨웠다. 염소는 ‘메~’, 소는 ‘음머~’하고 한 번씩 존재감을 드러냈다. 꼬리를 흔들며 헉헉대고 웃으며 마당을 뛰어다니던 강아지는 마루 밑에서 잠이 들었다. 낮에 잡아서 양동이에 넣어놓은 물고기를 고양이가 와서 한 번씩 앞발을 흔들며 도둑질을 할 때를 기다렸다.
새벽에 일어나면 외할머니와 숙모가 가마솥에서 밥을 푸고 계셨다. 김이 모락모락 고소한 누룽지 내음이 군침이 돌았다. 언니들은 키가 높은 자두나무에 장대를 가지고 가 먹음직스러운 빨간 빛깔 자두를 따 주었다. 새콤 달콤 잘 익은 자두의 맛을 잊지 못해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자두가 되었다. 이것저것 너무 많이 먹어 배탈이 나면 외할아버지께서 조용히 오셔 엄지와 검지 사이를 손가락으로 꼭, 꼭 눌러 주물러 주셨다. 한참을 그렇게 주물러주시는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이 따뜻했다.
외갓집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흐뭇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이라 이런 곳을 추억 할 수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칠십이 넘은 엄마는 여전히 고딩이 잡는 것을 제일 좋아하신다. 이제는 나의 아이들이 외할머니를 따라 고딩이를 잡으러 가고 통발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으며 추억을 만든다. 나의 아이들의 어린 시절도 행복한 추억으로 가득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