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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 Oct 08. 2021

흙수저들이 만들어낸 젓가락 문화

밸런스 게임, 젓가락 vs 포크

포크, 나이프, 스푼 당신의 선택은?


테이블 코디네이트 실습.

학교에서 10여 년 동안 강의하고 있는 과목이다.

이 과목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주는 토론 주제는

'포크, 나이프, 스푼'에 관한 것이다.


서양식 식사를 할 때 손으로 들고 사용하는 포크, 나이프, 스푼.

지금은 가장 기본적으로 세팅이 되는 이 세 가지 

처음부터 이것들을 동시에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사용되었을까?

왜 그것이 가장 먼저 사용되었을까?


이 주제를 가지고 다들 그럴싸한 근거를 제시하며 열띤 토론이 이어진다.

마치 자신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엄청난 확신으로 오답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있고,

그 확신에 찬 주장에 설득되어 정답을 선택했다가 오답 쪽으로 넘어가는 학생들도 있다.

사실 정답을 맞히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평소엔 특별히 생각해 본 적 없는 포크, 나이프, 스푼에 대해

좀 더 다양한 시각에서 고민해보는 과정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포크, 나이프, 스푼 중 가장 먼저 사용된 도구는

바로 '스푼'이다.

초기 인류는 주로 손을 이용해서 식사를 하였다.

손가락이 도구를 대신한 것이다.

손으로 식사를 하면 뜨거운 음식이나 국물이 있는 음식은 먹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고자 조개껍질을 이용한 것이 스푼의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남은 나이프 vs 포크, 당신의 선택은?


스푼이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포크와 나이프는 사용되지 않았다.

당시 유럽에서 서민들의 주식이 빵과 수프였기 때문에

사실상 포크와 나이프 같은 도구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귀족계층들은 어땠을까?

귀족계층들에게 도구가 필요하지 않았던 이유는 

식사할 때 시종을 드는 하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인들은 식사하는 동안 옆에서 먹기 좋은 크기로 음식을 잘라서 나누었고,

그들이 사용하던 도구는 개인용 식사도구가 아닌 여러 사람을 위한 공용 도구로 분류된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중세시대가 되어서야 귀족계층들이 개인용 나이프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는데

개인용 나이프는 음식을 자르기도 하고, 뾰족한 부분을 이용해서 찍어 먹기도 하는 다목적용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2등은 나이프이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못 맞춰서 실망하고 있다면..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처음부터 포크를 밀었었더랬다.

아주 그럴싸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강렬한 확신에 차 있었다.

‘1등이 아니라면 2등이라도 하겠지’했는데...

도박이었다면 나는 아마 파산했을 것이다.



포크가 마지막이어야 하는 이유


11세기가 되면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서 끝이 두 갈래로 된 포크가 등장했다.

당시 베네치아 총독의 후계자가 비잔틴의 테오도라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테오도라 공주가 처음으로 포크를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 수백 년이 지나도록 포크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르네상스의 바람을 타고 문화와 예술의 새로운 탄생이 일어나면서

'포크' 고급문화 아이템(명품 신상템 같은 존재)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귀족들의 신분을 과시하는 사치품으로 

은으로 만든 포크, 나이프, 스푼에 화려한 장식까지 더해져 세 가지 도구가 세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금수저, 은수저’하는 단어가

‘은스푼을 입에 물고 태어나다’라는 서양 속담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이처럼 고가의 사치품이었던 포크를 서민들은 쉽게 이용할 수 없었고,

여전히 빵과 수프가 주식이었던 서민들에게 사실상 포크는 꼭 필요한 아이템도 아니었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전개되고 나서야 사회 계층들이 새롭게 정리되면서

대중들에게도 '포크, 나이프, 스푼 식사법'이 일반화되었다.

그러니까 서민들이 포크, 나이프, 스푼을 이용해서 식사를 하기 시작한 것은 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숟가락, 젓가락 당신의 선택은?


숟가락과 젓가락은 어땠을까?

동양 문화권에서 식사를 할 때 주로 사용하는 숟가락과 젓가락.

동양 역시 식사용 도구로 가장 먼저 사용된 것은 숟가락이다.

젓가락을 처음으로 사용한 지역은 중국인데 

처음엔 조리를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가

점차 식사를 위한 개인용 도구로 발전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개인용 젓가락에 대한 문헌은 진나라의 기록인데 그러니까 최소 2000년 전인 것이다.

서양의 포크, 나이프, 스푼과 비교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차이이다.

중국보다 다소 늦었던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해도 1000년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을 알고 나서

갑자기 내 어깨가 으쓱했던 기억이 있다.

1등, 2등 다 놓쳤던 포크 마니아, 쭈글이는 어디 가고 어느새 엄청난 자부심이 부풀어 올랐었다.


그런데 숟가락, 젓가락 문화가 빠르게 대중들에게 일반화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를 알고 나서는

오히려 올라갔던 어깨와 부풀었던 자부심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젓가락이 포크보다 더 위대한 진짜 이유


서양의 포크는 종교적인 이유로 한참 동안 사용에 제한이 있었다.

포크의 모양이 악마의 삼지창을 닮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귀족층의 주도에 의해 포크의 사용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포크를 만들기 위해 주로 사용되었던 ''이라는 재료는 서민들에게 너무 고가였고,

포크라는 아이템이 가진 유용성보다 사치품에 가까운 이미지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사용되기까지 너무 많은 과정과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반면 동양의 젓가락은 서민들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

서민들이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만든 젓가락이 유용하게 사용되면서

이것이 귀족의 식탁으로, 이어 임금님의 식탁에까지 전해졌다는 것이다.

많은 수의 서민들에게 유용성이 검증되면서

젓가락을 만드는 재료나 사용 대상이 다양화되었기 때문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그러나 매우 자연스럽게 대중적인 식문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동양의 젓가락 문화가 서양의 포크 문화보다 더 우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손으로 식사를 하는 수식 문화권이 전 세계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동양의 숟가락, 젓가락 문화권 30%, 서양의 포크, 나이프, 스푼 문화권 30% 의 비율이다.

사실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절대적으로 평가할  없는 것이 '문화' 영역이기에 이 부분에 있어서도 우월성을 논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예술과 문화는 

 세계적으로 귀족이나 지배계층 주도로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거대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옛날에 우리 선조들은 숟가락, 젓가락 문화를 서민 주도형으로 만들어냈고,

우리 식탁에서 매일 마주하는 젓가락은 여러 유용성과 우수성을 검증받으며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진짜 위대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러니 적어도 '젓가락 vs 포크'의 대결에서 만큼은 

서민들에 의해 주도된 식문화라는 부분에 있어 젓가락의 손을 들어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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