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다. 거침없이 쓴다. 나는 경망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글을 쓴다. 이렇게 빠른 것은 초고를 쓰는 데까지로 국한된다.
초고를 쓸 때, 나는 오로지 분량만 생각한다. 이야기를 넣어 매수만 맞추려고 애를 쓴다. 나는 초고를 쓸 때, 플롯이나 줄거리의 배분을 고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초고는 거의 쓰레기 수준에 불과하니까.
나의 경우, 초고를 마치면 3~5 일 넘게 쓴 글을 보지 않는다. 이게 나의 퇴고 노하우다. 나는 원고를 보지 않는 3~5 일도 퇴고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을 거쳐야 퇴고를 거듭할 때, 초고의 결점과 보완점이 잘 보인다.
퇴고를 하면 할수록 글이 좋아진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가구를 끼우는 공법을 '짜맞춤'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짜맞춤 공법으로 가구가 만들어졌다. 가구뿐 아니라 궁궐, 절, 고관대작의 집도 짜맞춤 방식으로 지어졌다.
짜맞춤 공법은 틈에 다른 나무를 정확히 끼워 넣어 견고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넣는 과정에서 나무가 부러지거나 갈라져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렇게 되면 새로 가구를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퇴고 과정에서 고치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글 전부를 아니면 단락을 갈아엎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티베트 승려 '초감 트룽파'는 말했다. "무서운 적을 만나더라도 계속 열린 마음으로 대하라. 겹겹이 쌓여 있는 마음의 층을 벗겨내야만 한다"라고.
퇴고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계속 열어나가고 겹겹이 쌓인 층을 벗기는 과정이다. 퇴고는 초고를 쓸 때의 마음을 유지하면서, 문장을 정제하고, 문맥을 다듬는 과정이다.
독자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장이 가장 좋은 문장이라는 것을 반박할 어떤 명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