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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by 고석근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한국사회는 다른 국가와 달리 유독 타인의 욕망이 개인의 삶을 지배한다. 타인의 욕망이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의 삶은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혹은 “남보다 뒤처지지 않은 삶을 살아야 돼”라는 말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기본적으로 내 삶의 주체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현정,『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에서



27년 동안 성인 대상의 강의를 하며 많은 것을 느꼈다. 그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회원들의 실력이 쉽게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들 시험 보는 훈련을 오랫동안 해왔기에, ‘삶을 위한 공부’는 그분들에게 참으로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공부를 잘했던 분들은 시험 보는 기계가 된 ‘뇌구조’ 때문에 생생한 삶을 위한 공부가 힘든 것 같았다.


그럼 공부를 못했던 분들은, 잘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얀 백지에는 어떤 그림도 그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분들은 학벌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인문학을 지식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결국 가장 큰 공부의 방해물은 그분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타자의 욕망’이었다.


여봐란 듯이 사는 것! 대한민국 공부의 목적이다. 이 사고가 부모님, 학교 교사, 사회문화에 의해 우리의 무의식 깊이 내면화되었다.


나는 인간의 길을 찾아가는 공부가 참으로 쉽다는 생각을 한다. 인문학이 어려울 이유가 있겠는가?


그 안에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데... 그런데 회원들은 자신들의 진짜 욕망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문학 공부의 지름길은 ‘뒤풀이’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술을 마시고 마구 떠들다 보면, 자신의 얘기를 적나라하게 하게 된다.


우리의 본성(本性)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 진선미(眞善美)가 있어, 적나라하게 드러난 우리의 마음을 정확하게 분석해 준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알게 된다.

맨 정신으로 인문학을 공부하게 되면, 계속 지식만 쌓이게 된다. 공부가 오히려 삶을 방해하게 된다.


나는 프로이트를 흉내 내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문학 공부는 너무나 쉽다. 그냥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



그들은

내 입 안에서 만난다

침으로 뒤범벅되어


- 이순현,『사과와 사과라는 말과』부분



사과와 사과라는 말이 입 안에서 침으로 뒤범벅되어 만나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는 우리의 몸에서 피와 땀과 뒤범벅되어 만난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한다. 그 언어들이 우리의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있다고.


그래서 우리의 공부는 우리의 몸과 따로 논다. 공부는 저 혼자 허공을 떠돌고, 우리의 몸은 살덩이가 되어 지상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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