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어른들에게 말하면, 어른들은 도무지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어보지 않는다. “그 애의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애는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그 애도 나비를 채집하니?” 절대로 이렇게 묻는 법이 없다. “그 앤 나이가 몇이지? 형제들은 몇이나 되고? 몸무게는 얼마지? 그 애 아버지는 얼마나 버니?” 항상 이렇게 묻는다. 이렇게 묻고 나서야 어른들은 그 친구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왕자』에서
우리는 이 세상을 시간과 공간으로 파악한다. 우리는 약속을 할 때, ‘언제 어디서’ 만난다는 말을 한다.
이렇게 세상을 보는 방법이 근대 과학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의 물리학이다. 그가 보는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다.
우리는 그의 인식 방법으로 세상을 본다. ‘시간과 공간은 당연히 절대적이지.’ 우리의 상식이 되었다.
이 상식은 숫자로 표현된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러한 사고를 하지 않는다. 숫자로 세상을 보는 것은 우리가 자라면서 배운 ‘지식’ 때문이다.
어른들은 자녀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 아이는 어디 살아? 그 애 아버지는 직업이 뭐야?”
‘어디 사는가? 직업은?’ 이 질문에 자녀가 대답을 하면, 그 아이는 숫자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 사회의 신분질서 속에서 그 아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어른들은 당연히 그 아이를 다 알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야. 사회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거지.’
그 아이의 존귀함은 사라지고 만다. 인간은 남과 비교되는 순간, 하찮은 존재가 된다.
연봉이 높다고 자부심을 갖더라도 더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을 만나면 주눅이 들게 된다.
그리고 그 연봉이 언제 삭감될지 날아갈지 몰라 늘 전전긍긍하게 된다. 우리의 문명사회는 숫자화 된 인간들의 바벨탑이다.
산에 가면 우리는 가슴이 탁 트인다. 삼라만상 다 고귀하기 때문이다. 큰 나무의 가지 위에 앉아 있는 다람쥐, 그와 나무는 친구다.
큰 나뭇가지에 내리쬐는 하얀 햇살들, 나뭇잎을 흔들고 가는 바람들, 큰 나무 곁에서 자라는 무수한 풀들... 다 친구들이다.
누가 누구보다 더 높고 더 낮지 않다. 각자 존귀한 존재로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산을 좋아한다.
아이들도 만나면 서로 친구가 된다. 그들은 아직 서로를 숫자로 볼 줄 모른다. 그 아이의 개성만 본다.
그들은 서로 이렇게 묻는다. “그 애의 목소리는 어떠하니? 그 애는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그 애도 나비를 채집하니?”
어떤 ‘개성’을 지닌 아이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다른 아이로 대체될 수 없는 단독자다.
어른들은 이 거대한 세상의 부품이다. 다들 좋은 부품이 되기 위해 일생 동안 자기계발을 한다.
서로를 미워하고 질시하며, 그래서 어른들은 행복할 수가 없다.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존재들은 늘 신난다. 서로 존중하는 세상에는 사랑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깊은 내면에 있는 아이를 깨워야 한다. ‘어린왕자’는 어른들의 깊은 내면에 있는 아이를 깨우게 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중국 명나라의 뛰어난 유학자 이탁오는 누구나 아이의 마음, 동심(童心)만 깨우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제 자신을 숫자로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누구나 숫자가 되어야 했다.
봉건사회에서는 출신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정해졌었다. 한평생 벗어날 수 없는 숫자였다.
그 후 근대산업사회가 되면서 인간은 신분에서 벗어나 개인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습성으로 자신을 숫자화 하려 한다.
현대 인공지능시대에는 누구나 개인, 단독자가 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면서 서로 사랑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상식이었던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허구임이 밝혀졌다.
우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던 물질도 양자물리학에 의해 헛것임이 밝혀졌다. 물질은 인간의 마음에 의해 나타나는 허상이었다.
우리는 이제 우리 모두 이 우주의 고귀한 단독자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랑을 품고 있는 영혼만이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영혼만이
아름다움과 더불어 살고
성숙할 수 있습니다.
- 칼릴 지브란, <사랑을 품고 있는 영혼만이> 부분
사람은 누구나 남을 사랑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과 달리 남을 미워하며 살아간다.
영혼이 사랑을 품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려면 우리는 단독자가 되어야 한다. 숫자 속에서 탈출하여 자신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