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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Mar 15. 2024

‘이성적인 인간’을 위하여   

 ‘이성적 인간’을 위하여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도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 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공부 모임 시간에 한 회원이 한탄을 했다. “저희 딸이 몰래 제 핸드폰을 뒤졌어요. 저의 금융 상황을 다 파악했어요.”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읽은 글이 생각났다. ‘요즘 대학생들은 부모님이 퇴직하고 난 후 2년 뒤에 죽기를 바란다.’     


 얼마나 ‘합리적인 생각’인가! 우리가 기른 대로 아이들은 자랐다! 우리가 바라마지 않던 ‘이성적 인간’이 완성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부모님이 그때 죽기를 바랄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려면, ‘이성적 인간’을 포기해야 한다. 앞으로는 조르바 같은 야성적 인간을 길러내야 한다.     


 조르바는 말한다.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도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조르바는 니체가 이상적 인간으로 보는 ‘초인(위버멘쉬)’이다. 그는 좀스럽게 계산하지 않는다.     


 자신을 계속 초극해 간다. 그의 내면에는 ‘생(生)의 의지’가 충만하다. 그는 생의 의지가 향하는 곳으로 간다.     

 유타 바우어의 그림책 ‘색깔의 여왕’을 읽는다.         


 ‘색깔 나라의 여왕님이 성 밖으로 산책을 나왔어요.’ ‘그리고는 큰 소리로 불렀지요.’ ‘파랑!’     


 ‘그러자 파랑이 나타났어요.’ ‘파랑은 부드럽고 얌전했어요.’ ‘파랑은 여왕님께 인사하고는 하늘을 파랗게 물들였어요.’     


 ‘파랑은 여왕님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조용히 사라졌지요.’ ‘여왕님은 이번에는 빨강을 불렀어요.’ ‘빨강!’     


 빨강은 파랑과 정반대였다. 너무 급히 오다 여왕님을 넘어뜨릴 뻔했다. 여왕님은 빨강을 말이 되라고 명령하고, 여왕님을 말을 타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제멋대로인 빨강은 쉽게 흥분했다. 빨강이 위험하다는 걸 안 여왕님은 빨강을 사라지게 했다.     


 이때 노랑이 다가오고, 빨강은 주황이 되었다. 그러다가 점점 사라졌다. 노랑은 괴팍했다.     


 여왕님은 노랑과 싸우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파랑이 말렸지만, 둘 다 말을 듣지 않았다.     


 빨강까지 끼어들어 서로 뒤엉켜 싸우게 되었다. 세상은 온통 회색으로 변하게 되었다.     


 회색은 짙어지고, 여왕님은 소리를 지르고 길길이 날뛰었다. ‘이성적 인간’은 이렇게 쉽게 무너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머리를 텅 비우고, 몸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여왕님은 조용히 훌쩍이다가 목놓아 엉엉 울었다. 여왕님의 눈물에 의해 회색이 조금씩 사라지고, 색깔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여왕님은 자신의 신하들인 파랑, 빨강, 노랑과 함께 축제를 벌였다. 모두 지쳐 잠이 들었다. 파랑이 여왕님을 포근히 감싸 주었다.     


 인간의 이성은 삼라만상을 나눈다. 나눠진 삼라만상은 서로 죽기를 바라며 싸우게 된다.     


 죽음의 잿빛 속에서 우리는 질식한다. 우리는 목놓아 울어야 한다. 눈물이 우리의 마음을 말갛게 씻어줄 것이다.     


 우리는 말간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다시 이 세상에는 온갖 색깔의 꽃들이 가득 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백사장에 앉아 

 모두 한곳을 바라본다.

 육지에 등을 돌리고 그들은

 온종일 바다를 바라본다.


 - 로버트 프로스트, <멀게도 깊게도 아닌> 부분     



 인간의 원초적 고향은 바다라고 한다.       


 ‘육지에 등을 돌리고 그들은/ 온종일 바다를 바라본다.’     


 우리는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항상 출렁이며 신나게 살아가던 아득히 먼 고향이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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