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아십니까?

by 고석근

도를 아십니까?


거기엔 눈이 미치지 못하고, 말이 미치지 못하고, 마음이 도달하지 못한다. - 우파니샤드



길을 가다 가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도를 아십니까?” 언젠가는 도를 묻는 척하며 도를 가르쳐주고 싶어 하는 그를 따라 그의 ‘도량’에 간 적이 있다.


그와 논쟁을 하다 서로 얼굴을 붉히며 헤어졌다. 치기어린 한 때의 객기였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도는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노자는 말했다. 고대 인도의 경전, 우파니샤드에서도 말한다. ‘거기엔 눈이 미치지 못하고, 말이 미치지 못하고, 마음이 도달하지 못한다.’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의 언행록인 ‘전습록(傳習錄)’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스승님이 산길을 가고 있을 때, 어느 친구 한 분이 낭떠러지에 있는 꽃을 가리키며 물었다.


“사람의 마음 밖에는 어떤 사물도 없다고 했는데, 저 꽃나무는 저절로 꽃이 피었다가 저절로 지곤 하는데 나의 마음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 물음에 스승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자네가 이 꽃을 보지 않았을 때에는 이 꽃과 자네의 마음은 다 적막 속에 돌아가 있었다. 그런데 자네가 와서 이 꽃을 보게 되자, 이 꽃들의 빛깔이 일시에 뚜렷해졌다. 이것으로 이 꽃이 자네의 마음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는 왕양명의 친구처럼 산에 피어있는 저 꽃은 우리가 보건 안 보건 거기에 피어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 양자물리학에서는 왕양명의 말처럼 ‘이 세상의 사물은 우리가 볼 때만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가 보지 않을 때는 ‘사물은 적막 속에 돌아가 있다’고 한다. 이 세상의 실체는 ‘에너지 장(場)’이라는 것이다.


이 상태는 우리가 눈을 감고 명상을 해 보면 느낄 수 있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차츰 이 세상은 하나의 파동임이 느껴진다. 우주의 춤, 인도 시바의 춤이다.


그러다 눈을 뜨고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물들이 눈앞에 드러난다. 현대물리학에서는 이것을 '관찰자 효과'로 설명한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자로 불리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파동이 약한 것들이 물질로 드러난다.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는 사물들은 사실 우리의 감각이 지각하는 것들이다.”


사물이란 우리의 마음이 감각기관을 통해 파동이 낮은 것들을 지각하는 것이다. 사물은 텅 비어 있다. 빠르게 운동하는 전자들 때문에 사물들은 다다가면 서로를 튕겨낸다.


그래서 우리는 사물들이 어떤 공간을 차지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실상은 텅 빈 공간,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다.


이 공의 세계에서 우리의 마음이 눈을 통해 보는 것들이 사물(불교에서 말하는 색色)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공은 색이요, 색은 공이다.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텅 빈 도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는 하나다.


이 텅 빈 세계, 도는 온 몸으로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지만 언어로는 뭐라고 말 할 수가 없다.


사실은 삼라만상이 도의 세계인데, 우리의 마음에 의해 나라는 사물, 다른 사람이라는 사물, 동식물이라는 사물, 산천초목이라는 사물이 실재하는 것처럼 감각으로 느껴진다.


도의 세계는 무한한 파동, 율동이기에 우리가 도의 세계에 들어가면 우리는 마냥 즐겁다. 살아 있음의 환희다. 황홀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귀천》부분



도의 세계가 실재의 세계이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승의 삶은 감각으로 지각되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확히 안다면, 우리의 삶은 즐거운 소풍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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