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여인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시는 밤이여드란 구비구비 펴리라
-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부분
황진이는 조선 중종 때의 기생으로 박연폭포, 서경덕과 함께 송도 3절(松都三絶)의 하나였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유학과 예악의 교양을 두루 갖춘 지체 높은 양반들이 기생인 그녀를 흠모했을까?
남성에게 매혹적인 여성은 어떤 유형일까? 심층 심리학자 칼 융은 아니마(남성 내면의 여성)를 4단계로 설명했다.
첫째는 본능적 성적 수준의 에로스(이브), 둘째는 낭만적인 사랑(헬레나), 셋째는 종교적 사랑(마리아), 넷째는 영원한 여성상으로 지혜의 여신(소피아)이다.
그 당시 돈과 권력을 다 가졌던 양반들은 이브, 헬레나는 많이 만나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여성, 소피아는 만나보지 못했을 것이다.
헬레나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여인이다. 스파르타와 트로이 사이에 전쟁을 일어나게 하여 트로이를 멸망에 이르게 한 여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반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그녀와의 사랑이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가 파리스에게 불멸의 여인으로 남았을까? 그가 더 성숙한 후에 황진이를 만났다면? 그는 황진이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을 것이다.
황진이의 시들을 읽다 보면, 눈앞에 신비로운 황홀경이 펼쳐진다. 그녀의 마법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남성이 있을까?
다양한 여성을 겪은 양반들은 그녀의 불꽃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불나방처럼 날아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