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헤테로토피아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부분
백석 시인은 회식 자리에서 불멸의 여인, 기생 자야를 만났다.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말했다.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내 여자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 우리에게 이별은 없어.”
그는 그 여인에게 ‘자야(子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자야는 이백의 시에 등장하는 여인의 이름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백석은 홀로 떠나면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를 남겼다.
마가리는 어디일까?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말한 ‘헤테로토피아’다.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는 ‘다른 장소’라는 뜻이다.
푸코는 말한다.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의 공간에서 발견되지만, 다른 공간들과는 정반대인 단독적 공간이다.”
어린 시절의 다락방을 생각하면 된다. 어릴 적 다락방에 가면, 우리는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았던가!
나의 마가리는 ㄱ 섬에 있는 ㄷ 리다. 그곳에 그녀의 자그마한 자취방이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오로지 우리 둘의 세상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사라졌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훤히 보였지만, 우리는 우리 둘만 보였다. 우리의 낙원만 동그마니 있었다.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출출이 우는’ 에로스의 에덴동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