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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다정 Nov 05. 2022

집에 가기 싫은 밤

아이유의 노래 중에 '싫은 날'이라는 노래가 있다. "혼자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가기 싫다"라고 말하는 화자는 집에 있으면 더 외로워지는 것 같고, 방 안의 공기도 차갑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한다. 나도 유독 집에 가기 싫은 밤이 있다. 집에 가기 싫은 이유가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날엔 어차피 들어가도 다시 나오게 된다. 그러니 일단 걷는다.

걸으면서 재생목록에 노래를 몇 곡 추가해 본다. 주로 '싫은 날' 같은 발라드가 담긴다. 이런 날에는 유튜브에 있는 새벽 감성류나 가을 감성류 플레이리스트가 잘 어울리곤 한다. 밴드 데이식스의 노래 중에 ‘I loved you’나 ‘혼자야‘ 같은 노래도 적절하다.


그런 날을 생각이 많은 날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걸으면서는 여러 생각을 한다. 방금 전까지도 연락하던 친구가 '밥은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 물어보는 다정함을 떠올리며 따뜻하다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친구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서먹한 관계의 친구와는 왜 연락을 안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을 되짚으며 연락을 해 볼까 하고 연락처를 찾아본다.

어떤 친구에게는 오랜만에 연락해봤다며 짧게 연락을 주고받아 보기도 한다. 다른 어떤 친구와는 연락하기 껄끄럽고 어색한 '계기'가 떠올랐을 때, 연락하고 지내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든다. 한때 친하게 지내던 이와 연락하기 어려운 아쉬움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감정들은 한 번 손에서 놓치면 어디까지 풀릴지 모르는 두루마리 휴지처럼 사정없이 풀려 나간다. 풀려 나가는 건지 내가 푸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번엔 그렇게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두며 걷다가 두어 시간 정도를 걷기도 했다. 어디쯤까지 걸었는지 인증하는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생각이 많냐며 친구에게 걱정 어린 답장을 받기도 했다.


걷고 나면 어지럽게 꺼내놓은 옷을 정리한 후처럼 머릿속에 보이던 문장들이 줄어들어 있는 느낌이다. 어디까지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싶을 때쯤엔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 진다. 다시 그때 돌아오면 되는 것 같다. 집에 가기 싫-지 않은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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