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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채록 May 18. 2024

현대미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디지털 스토리: 이야기가 필요해>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는 영상, 설치 등 미디어를 활용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 <디지털 스토리: 이야기가 필요해>가 진행중이다.


이 전시에선 성연주, 김태균을 비롯한 작가 40명이 디지털 소프트웨어로 제작한 사진, 영상, 애니메이션 등 작품 50여 점을 볼 수 있다. 기존 회화, 조각과는 다른 스토리 전개 방식을 통해 현대미술의 특성을 전하기 위해 마련되었다고 한다.


전시는 ‘이미지 퍼즐’, ‘장면의 연출’, ‘가상의 세계’ 이렇게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이미지 퍼즐은 포토콜라주(photocollage), 동영상 콜라주, 오브제를 조합하여 만든 설치작품 등 퍼즐 형태의 다양한 이미지 작업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동원의 <Quilting-기억의 편린>(2017)은 멀리서 보면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실재하는 사물을 해체하여 재배치한 이미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작품이 주는 느낌이 달라 다양한 각도에서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차민영의 <토포필리아의 무대>(2017)은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인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북촌-I,II’은 캐리어에 담긴 한옥이 물에 잠겨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고, ‘Subtopia’는 캐리어에 불야성을 이루는 거리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았다. 작품 제목에 쓰인 ‘토포필리아(Topophilia)’와 ‘subtopia’라는 단어가 낯설어서 찾아보니 토포필리아는 그리스어의 장소, 땅을 의미하는 토포스(topos)와 애착, 사랑을 의미하는 필리아(philia)를 합성하여 ‘장소에 대한 사랑’으로 개념화한 것이라 한다. 또, subtopia는 교외(suburb)와 유토피아(utopia)를 합성한 이 단어는 대도시 주변의 교외 확장을 의미하는 신조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목과 이미지를 함께 생각해 본다면, 작가가 좋아했던 공간이 도시 개발로 인해 사라져가고,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강영민의 <KMJ의 얼굴들>(2007)은 한 인물의 얼굴 사진을 해체하여 파이프들로 재구성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사람의 얼굴을 이렇게 하나하나 뜯어보다 보니 눈, 코, 입 얼굴을 이루는 요소들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 얼굴의 주인공은 누굴까를 고민하게 하였다. 이 사진의 주인공 KMJ는 바로 드라마 <뉴하트>(2007), <미스터 선샤인>(2018) 등에 출연한 배우 김민정이라고 한다.

박준범의 <Hypermarket4>(2008)은 어느 한 건물에 다양한 간판들이 하나둘 붙기 시작한다. 간판은 건물의 원래 모습이 무엇인지를 잊게 할 정도로 빼곡이 들어찬다. 지금은 도시 미관 개선 사업을 통해 간판의 형태가 어느 정도 통일성을 갖추었는데, 과거엔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간판들이 건물에 걸려있던 모습이 이 영상을 보며 떠올랐다. 2008년 작품이니 그 당시 상업주의에 병들어 가는 사회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드러낸 작품인 것 같다.


2부 장면의 연출은 작가가 원하는 순간이나 광경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출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정연두의 <DMZ 극장 시리즈-을지극장>(2019)은 DMZ 전망대를 찾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망원경으로 군사분계선 너머를 들여다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망대에 있는 의자에 앉아 바깥을 조망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분단의 현실을 저마다의 다른 모습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사진에는 수영복과 군복이 빨랫줄에 걸려있고, 빨래를 하는 사람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곳에서 북녘을 보면 선녀 폭포라는 폭포가 보인다고 한다. 과거에 북한군이 선녀 폭포에서 대남 심리전을 펼쳤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고 하는데, 이러한 내용을 익살스럽게 담아낸 것 같다.

김기라의 <세상의 저편_표준화된 시점>(2018)을 처음 보았을 때 독박육아에 지쳐가는 한 엄마의 모습을 통해 사회적인 문제를 비판하는 내용이라 생각했다. 리플렛에 기재된 작품 설명을 보니 내가 생각한 이야기와는 전혀 달랐다. 어린 남매의 사투를 통해 이주를 둘러싼 이념 대립과 불안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손종준의 <Defensive Measure in Kanagawa 07006>(2004)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갑옷을 입고 있다. 이 작품을 보고 번뜩 떠오른 드라마가 있는데, 그건 바로 2014년 KBS에서 방영된 <아이언맨>이다. 배우 이동욱이 맡은 캐릭터 ‘주홍빈’은 화가 날 때면 몸에 칼이 돋아나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도 사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갑옷을 입은 모습을 표현한 것 같다.


3부 가상의 세계는 작가의 상상 속 세계를 담은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전정은의 <Strangely Familiar>(2012)는 꿈속 풍경을 그린 듯 몽환적이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그런 작품이었다.

류호열의 <Baum>(2011)은 파란 하늘 아래 서 있는 나무의 낙화를 그린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인증샷을 남길 정도로 이목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파란 하늘에 흩뿌려지는 하얀 잎을 보고 있으니 절로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이 신기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허태범의 <일본 쓰나미>(2011)는 이렇게 심플하게 재난을 표현할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하였다. 폭설로 인해 땅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고, 모든 것이 하얗게 보여 방향과 거리를 가늠할 수 없게 되는 화이트아웃(Whiteout) 현상을 활용하여 재난을 겪은 이가 보았을 풍경을 그린 것 같았다.

임창민의 <Into a  Time Frame 8>(2014)은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풍경을 표현하였는데, 따뜻함과 쓸쓸한 기분을 함께 느끼게 하는 오묘함이 있는 작품이었다.


자신만의 시선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이미지 하나에 다양한 층위가 있어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이고, 또 기존의 표현 방식이 담아내지 못하는 풍성함이 이 현대미술의 매력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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