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지휘자 길버트 카플란에게 영감을 얻다.
피아니스트 미국 출신의 사업가이자 저널리스트이자, 무엇보다 (아마추어) 지휘자였던 길버트 카플란이 2016년 첫날 타계했다. 향년 74세. 길버트 카플란은 말러 교향곡 2번에 푹 빠져 오직 이 곡을 지휘하기 위해 나이 마흔에 지휘를 배우고, 평생 이 곡만 지휘했던 '괴짜'다. 나는 그가 2005년 성남아트센터 개관공연을 위해 한국에 왔을 때 인터뷰한 적이 있다.
길버트 카플란은 금융전문지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Institutional Investor)'의 발행인이자, 경제 칼럼니스트이자,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는 또한 말러 교향곡 제2번만을 연주하는 지휘자였다. 그는 '이중생활자'였다. 요즘 말로 하자면, 지휘자는 그의 '부캐'였던 셈이다. 다른 음악가들이 거치는 전문교육 과정을 마치지 않은 '아마추어'였지만, 말러 교향곡 제2번에 있어서만큼은 평가받는 지휘자였다. 그는 어떻게 해서 말러 교향곡 제2번만 연주하는 지휘자가 되었을까.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 3년 동안 피아노를 배웠죠. 하지만 연습을 게을리 해서 어머니가 레슨을 중단시켰어요. 그래도 음악은 꾸준히 들었어요. 스무 살쯤엔 웬만한 클래식 레퍼토리는 섭렵했죠. 하지만 그때까지 말러의 음악은 듣지 못했어요. 말러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1965년 뉴욕 카네기홀에서였어요. 스토코프스키의 지휘로 말러 교향곡 제2번을 들었죠. 그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항상 음악을 들을 때마다 어떤 ‘감성’을 느끼긴 했지만, 그런 격정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것을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는 말러를 오랫동안 사랑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음악과 사랑에 빠진다고 해서 모두 지휘자로 나서지는 않는다. 그도 처음부터 지휘할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말러와 사랑에 빠진 뒤에도 15~16년간은 그냥 듣는 데에 만족했다. 그러다 나이 마흔 살에 지휘 공부를 시작한다.
“내가 지휘를 할 수 있게 되면 이 음악을 왜 이렇게 사랑하게 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직접 지휘를 하면 제가 겪은 그대로의 감흥으로 음악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지휘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는 ‘감당해야 할 위험’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고 한다. 그가 꼽은 위험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지휘를 해서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 두 번째, 지휘를 하지 않고 평생 ‘내가 왜 그때 시도해보지 않았나‘ 후회하는 것. 그는 첫 번째 위험을 선택했다.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평생 후회하면서 사는 것은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81년, 그는 줄리아드 음대 졸업생에게서 지휘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5시간씩 말러 교향곡 제2번을 지휘하기 위해 공부를 했다. 음악 애호가로서 음악 지식을 갖추고 있었지만, 다시 악보와 음악을 ‘읽는’ 방법을 배웠고, 지휘 테크닉을 공부했다. 이렇게 7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그해 전 세계에서 열리는 말러 교향곡 제2번 공연을 모두 쫓아다녔다. 리허설을 빠짐없이 보고 지휘자를 만나서 얘기를 나눴다. 그러면서도 회사는 계속 경영했다. 그는 이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도 멋진 한 해였다고 회상했다.
다음해인 1982년, 그는 자비를 들여 링컨센터에서 아메리칸 심포니와 말러 교향곡 제2번을 연주했다. 그야말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연 공연이었다.
“저는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오케스트라는 비평가들이 절대 공연 평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연주에 응했습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 두 명의 평론가가 약속을 깨고, 공연 평을 썼습니다. ‘아주 훌륭한 연주’였다는 호평이었지요.”
그는 ‘두 평론가 덕분에 제가 오늘날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오직 말러 교향곡 제2번만으로 빈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프라하 심포니, 러시아 국립 오케스트라 같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1984년에는 카플란 재단을 설립하고 말러의 음악을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말러 교향곡 제2번의 원본 악보를 구입하고, 말러의 사진과 저서, 레코딩 같은 관련 자료들을 방대하게 수집했다. 그가 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말러 교향곡 제 2번 음반이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나온 것은 그가 이 곡의 해석과 연주에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길버트 카플란은 사업가로서의 인생과 음악가로서의 인생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는 질문에는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와 나눴던 대화를 소개하며 기자들을 웃겼다.
“게오르그 솔티를 만났을 때 저는 너무 많은 음악적 질문을 해서 그의 시간을 빼앗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그의 대답은 이랬어요. ‘이렇게 월스트리트에서 온 사업가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기쁩니다. 왜냐하면 나는 음악가 동료들과 얘기할 때는 항상 돈 얘기만 하기 때문이지요.’
내한 공연에서 그는 개런티를 받지 않고 항공료와 체재비만을 주최 측으로부터 제공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아마추어’의 첫 내한 공연은 한국의 음악 팬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멋진 아마추어’는 웬만한 프로를 능가한다. <'나도 가끔은 커튼콜을 꿈꾼다' 중에서 발췌>
길버트 카플란은 내가 40이 다 되어 쇼팽 스케르초 2번을 연습하기 시작할 때 떠올렸던 이름이기도 했다. 실력도 안 되면서, 20년간 피아노를 안 치다가, 갑자기 그런 난곡을 치겠다고? 하지만 내 주제에 스케르초 2번을 쳐서 웃음거리가 될 위험보다는, 평생 내가 왜 그때 시도해보지 않았나 후회하게 될 위험이 훨씬 더 컸다. 그러고 보니 그는 나에게 큰 영감과 자극을 준 사람이었다. 당시엔 크게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를 따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부고를 들었을 때, 마치 잘 아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듯한 기분이 된 것도 그래서였나 보다.
그는 ‘부활’로 불리는 말러의 교향곡 제2번을 연주할 때 '순수한 기쁨’을 느끼게 된다면서, 이 곡이 ‘천국으로의 초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멋진 아마추어 길버트 카플란. 그는 아마 천국에서도 '부활'을 연주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