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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vs 요약본

by 은하육수

나의 최애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뒤에 와서 말했다.


“그거 좀 있으면 유튜브에 요약본 올라올 텐데 시간 아깝게 뭐 하러 다 봐?”


요즘은 방송이나 영화, 소설 등의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중요 부분만 편집해서 유튜브나 포털사이트 동영상 클립에 올라온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동영상 클립만 몇 개 보면 1시간짜리 드라마를 단 10분 만에 파악할 수 있다.


남편의 유튜브 구독채널을 보면 영화 리뷰나 압축 요약본을 소개하는 것들이 많다. 책은 읽는 독자는 없지만 책을 소개하고 요약하는 유튜브는 구독자가 100만이 넘는다. 물론 이런 요약본 영상을 보고 영화나 책을 보고 싶어 할 수 있겠지만 남편만 보더라도 내용 다 아는데 뭐 하러 다시 보냐고 그런다.


남편의 주장은 이렇다.

“요즘에 볼 게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진득하니 하나하나 다 봐? 그냥 요약한 거 보는 게 훨씬 시간도 절약되고 편해. 요즘 영화 한 편 보러 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요약해 놓은 거 봐서 강력추천한다고 하는 것만 추려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경제적이야.”


남편은 사무실 사람들이 최근 「나는 솔로」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면서 대화에 끼려면 대충 출연자 정보나 내용을 알아놔야 한다며 방송 클립을 골라봤고 「오징어 게임 2」를 다 보고 난 후 시간 아깝게 괜히 다 봤다면서 투덜대기도 했다.

내가 고집스럽게 지루한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있으면 자기는 영화 소개하는 유튜브에서 15분 만에 다 봤다면서 줄거리부터 결말까지 계속 스포일러를 던지고 깐족거려 나한테 등짝 스매싱을 맞기도 했다.


나는 되도록 책 한 권, 드라마 한 편, 영화 하나를 온전히 다 보려고 하는 편이다. 남편이 요약본을 보고 있으면 괜히 눈감고 귀를 막으며 안 볼 거라고 손사래를 쳤다. 나는 이게 그걸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보면 소설의 한 단락이나 시의 클라이맥스 부분만 나올 때가 있는데 나는 굳이 그 문학작품의 원본을 찾아보고 다 읽어야 뭔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고 온전히 이해가 됐다. 친구들은 요약본을 보지 시간도 없는데 뭐 하러 찾아보냐며 나를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비웃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수능을 잘 못 본 건지도 모른다.)


회사 사람들이 당시 인기 드라마를 주제로 서로 “어제 봤니? 남자 주인공 너무 멋있지 않니?”하며 신나게 이야기할 때도 나는 그들의 대화에 낄 수 없었다. 나는 드라마 앞부분을 다 보지 않아 어제 드라마를 안 봤다고 하니 동료들이 요약본을 보거나 2배속으로 대충 다 보고 다음화를 봐도 된다고 얘기해 줬지만 끝내 나는 그들의 수다에 참여하지 않았다.


공부에도 요약집이 있었다. 줄줄이 서술식으로 쓰인 교과서나 두꺼운 전공서 대신 중요한 내용만 압축 요약해서 만든 개조식 책은 수험생들 사이 필수책이었지만 나는 꾸역꾸역 두꺼운 책을 들고 다녔다.


왠지 요약된 걸 보면 찝찝하고 개운하지 않았다. 뭔가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만 같았다. 친구들이나 어른들은 내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 하나하나에 너무 신경을 써서 정작 전체 흐름이나 큰 그림은 보지 못한다고 충고했다.(엄마는 공부 못하는 애들이 꼭 저런 사소한 거에 신경 쓴다고 핀잔을 줬다.)


하지만 나는 나무 하나하나를 보는 게 좋았고 중요했다. 숲에 큰 강줄기만 본다면, 커다란 나무와 화려한 꽃들만 본다면 그건 숲이 아니었다. 잔잔한 풀꽃, 조그만 나무들, 그들 사이로 지저귀는 새들이 같이 존재해야만 숲이 완성되었다.


내가 만약 요약본만 애용했다면 국어 교과서에 실린 <그 여자네 집>에서 곱단이와 만득이의 사랑과 일제강점기 때 비극적으로 인생이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운명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아름답게 변해가는 사계절에 맞춰 성숙해 가는 주인공을 보지 못했을 거고 요리하는 소리가 그렇게 달콤하고 찰지게 들린다는 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지난하게 타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경기도민의 피곤한 얼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 드라마의 수많은 배경들과 사람들, 소설의 문장 하나하나를 만드는 데 작가와 제작자는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고 의미를 부여하는가. 특히 내가 글을 써보니 글자 하나하나에 나름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인데 다 잘라버리고 한 줄로 띡 간추려버리면 내가 쏟아 부운 시간과 열정이 공중에 날아가버려 허탈할 것 같았다.


그들이 작품을 만드는 데 고민했을 시간들과 노고를 생각해서 당장이라도 덮고 싶은 책을 꾸역꾸역 다 읽고, 드라마의 재미없는 부분을 스킵하려는 내 손을 억지로 부여잡고, 남들이 재미없다고 시간낭비니 보지 말라 하는 것도 내가 판단하지 않는 이상 끝까지 다 보고 평가한다.


남편은 내가 참 답답하고 비효율적으로 산다고 비웃었지만 창작자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매너이자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자잘하지만 소중한 의미들을 챙길 수 있는 능력이라 믿고 계속 유지하고 싶다.

이렇게 해야 만드는 사람이 덜 힘 빠지고 계속 만들어 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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