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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언 Apr 25. 2022

베트남 메이드살이 해보셨나요?

- 어쩌다, 호치민 마담 #10

아침 등교 전쟁을 치르고 아파트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다가 본의 아니게 고부간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어머님, 저는 여기 살아서 너무 다행이에요.

요리도 잘 못하고, 청소도 잘못하는데 메이드가 다 해주니까 너무 좋아요.”


살림에 영 재주가 없는데, 메이드 덕분에 편히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호치민 마담살이는 팔 할이 메이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이드 덕에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해도 티 안나는 가사 노동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었다. 가사노동에 어려움을 느끼는 초보 주부에게 메이드만큼 편리한 도우미가 또 있겠냐 싶겠지만, 메이드살이 또한 녹록지 않음을 지내다 보면 깨닫게 된다.  

© jeshoots, 출처 Unsplash



좋은 메이드 = 유니콘?!

흔히 괜찮은 집(집주인), 성실한 운전기사, 좋은 메이드만 구해도 해외 살이도 할만하다고 한다. 그만큼 어느 하나 구하기 쉬운 게 없다는 뜻이다. 메이드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좋은 메이드를 구하는 건 정말 어렵다. 알아서 일도 찾아서 척척 잘하고, 시간당 페이도 적절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베테랑 메이드들이 어딘가에 있다고 들었다. 이야기만 들었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지라, 좋은 메이드는 유니콘 같은 존재라 생각하기로 했다.

© deadqueenines, 출처 Unsplash

다른 마담들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베트남에선 어느 정도 조건만 충족하면 그러려니 하고 지내게 되었다. 카카오톡 단톡방 기준으로 봤을 때 한국 마담들이 메이드를 고용할 때 고려하는 기본 조건은 세 가지인 것 같다.


1. 시간 잘 지킬 것

2. 성실할 것

3. 손타지 않을 것


'손 탄다'는 말은 호치민 마담들 사이에 흔히 도벽이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크고 작게 없어지는 물건들. 의심은 가도 확증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견물생심이라고 눈앞에 현금이나 귀금속이 있으면 혹하지 않을 수 없다. 마담 화장품도 쓰고, 아이들 옷도 가져가는 메이드도 있다고 들었다. 사람을 들이려면 스스로 조심하는 것 밖에는 없다.


흔히 메이드는 소개를 받아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톡방에는 집에서 일하는 메이드가 추가로 일을 구한다며 소개하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시간제 메이드의 경우 비는 시간에 일을 더 잡기를 원해 마담에게 카카오톡 단톡방에 글을 올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메이드가 마담에게 지인을 소개하며 일을 구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검증되지 않은 지인 소개가 카카오톡 단톡에 올라오기도 한다. 이렇게 소개를 통해 메이드를 구한 경우, 검증과 고용 결정권은 전적으로 소개받은 마담에게 달려 있다.   


회사를 통해 메이드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 회사에서 품질 관리를 하기 때문에 문제 발생 시 회사를 통해 수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가장 안정적이다. 간혹 괜찮다 싶은 직원을 개인적으로 연락해 고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불법이라고 한다.


페이스북을 통해 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주로 외국인 거주자들이 쓰는 방법이다. 페이스북에는 호치민에 사는 외국인 거주자들 모임이 꽤 많다. 외국인 거주자들을 위한 임대나 고용과 관련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임들도 있다. 이런 모임에서 메이드나 내니를 소개하는 글을 발견하고 직접 연락해서 고용하기도 하는데, 외국인들의 경우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내니와 헤어질 때 글을 소개글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실력은 검증되었을 수 있지만, 외국인들은 넉넉하게 지급하는 편이라 우리와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메이드를 소개받아, 검증하고, 고용하는 일은 나만의 생활공간에 타인이 들이는 일인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메이드와 가까워졌다 멀어지기

호치민에서 사는 동안 두 번의 메이드를 만났고, 감사하게도 성실하고 꽤 괜찮았던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 메이드 B는 남편의 전임자 집에서 근무했던 메이드였다. 성실하고 밝은 성격이었는데, 아이도 둘이나 있었는데 정말 열심히 살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김치 공장에서 김치도 만들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았다. 남편이 전자제품 수리를 한다고 해서 나중에는 에어컨 청소나 선풍기 수리를 맡기기도 했었다.


B는 아이가 아프거나,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 사정을 얘기하고  빠지는 일이 몇 번 있었다. 보통 시간제의 경우 근무를 하지 않은 날만큼 급여에서 제하거나 추가 근무를 시킨다고 한다. 근무하는 동안에는 꾀부리지 않고, 일이 남으면 마무리하고 가는 사람이라 하루 빠진 걸로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아 그냥 넘어갔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일을 빠진 다음 날엔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구아바나 망고, 수박 같은 본인이 구할 수 있는 과일을 들고 와 고마움을 표시했다.


두 번째 메이드 H는 카카오톡 단톡방을 통해 소개받는 사람이다. 한국 마담 집에서 근무한 기간도 길고, 집도 우리 집 근처라 시간은 잘 지킬 듯싶어 연락해 면접을 봤다. 한국 마담 집에서 3년 넘게 근무했다고 하지만 혹시 몰라 처음 일주일은 일당을 주고 일을 시켜보았다. 7군과 대비해 2군이 인건비가 시간동 1~2만 동 정도 더 비싸다고 하니 고용할 때도 더 신중하게 되는 것 같아.  약속한 시간보다 5-10분 정도 일찍 도착하고, 시간에 맞춰서 퇴근했고 일도 성실하게 하는 편이었다. 처음엔 일이 많다고 투덜댔는데, 일을 조정하면서 익숙해졌는지 나중에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B와는 달리 H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지게 되면 꼭 땜빵을 하려고 했다. 빠지면 월급에서 그만큼 뺀다고 이야기한 것도 아닌데, 근무 일수를 채우려고 했다. 본인이 원하는 바를 솔직히 이야기하는 편이라 지내면서 불편하지는 않았다.


메이드를 그만두게 할 때도 좋게 좋게 해고해야 한다고 한다.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그만둘 경우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일을 잘 못해서 해고하고, 새 메이드를 구하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구하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해고당한 메이드가 여기저기 안 좋은 소문을 퍼트려서 사람 구하기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메이드들만의 커뮤니티가 있어서 그들끼리 악덕 마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 같았다. 물론 한국 마담들도 문제가 있는 메이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카카오톡 단톡방에 공유하니 피장파장이긴 하다. 그래도 메이드를 구할 때 단톡방 블랙리스트에 올라온 사람인지는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다행히 나는 두 번의 메이드와 감정을 상하지 않고 이별했다. B와는 2군으로 이사를 해야 해서, H와는 귀국해야 해서  1달 전에 미리 이야기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했다. B는 2군까지 따라와서 일하고 싶어 했지만 너무 멀어서 포기한다고 했다. H는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언제 돌아오냐고 물어봤다. 해맑게 물어보는 H에게 영영 한국으로 가는 거라고 했더니  이해한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했다. 참 쿨하다. 그들에게 나는 좋은 고용주였던가 새삼 생각해봤다.



메이드는 부재중

메이드 없이 지낼 수 있을까. 익숙해진 편안함 덕분에 메이드 부재는 여러모로 불편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 4themorningshoot, 출처 Unsplash

코로나로 인해 아닌 메이드 부재가 발생했다. 외부인들의 아파트의 출입을 막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조치로 시간제, 전일제 메이드들은 일시적으로 실업 상태가 되었고, 우리는 아닌 메이드의 부재 상태를 맞게 되었다.


어차피 한국에선 매일 화장실 청소를 하고, 매일 빨래를 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도 모르게 메이드가 가져다준 편안함과 깔끔함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 덕분에 메이드의 부재로 인한 가사노동은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메이드의 부재로 집은 지저분해지고, 부족함이 생겼지만 어느 시점을 넘기면 마음이 편해진다. 현실과 타협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사실 메이드를 집에 들이는 것은 일시적인 편안함을 가져오지만, 그에 따른 불편함도 함께 따라온다. 메이드가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밖에 나와서 방황하는 한국 마담들이 꽤 있다. 하물며 같은 성별의 마담들도 어색하고 불편한데, 드물게 남편까지 집에 있는 날은 온 집안이 불편한 공기로 가득했다.


우리만의 생활공간에 일시적으로 들어온 타인이 왜 그렇게 불편했던지 모르겠다. 집은 나에게도 휴식공간인데, 분주하게 일하는 메이드 옆에서 뒹굴거리는 게 처음엔 정말 불편했었다. 메이드 눈치를 보는 것이다. 나의 편안함과 휴식을 위해 가사노동을 분담시키려고 고용한 사람인데도,  사람 부리는데 익숙치 않아서인지 참 어색했었다.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책도 읽고, TV도 보고 내 할 일을 거리낌 없이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메이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한국에 돌아오기를 두려워한다. 익숙해져 버린 편안함 때문이다. 코로나가 가져온 메이드의 부재는 본의 아니게 귀국을 앞둔 나에게 한국 적응 훈련이 되었다. 몸의 불편함은 잠시, 어차피 원래부터 내가 했었던 일이었다.





*13번째 월급.

13번째 월급은 베트남 직장에서 주는 연말 보너스 개념인데, 뗏(음력설) 기간에 풀타임으로 고용된 직원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파트타임(시간제)으로 근무하는 메이드에게 13번째 월급을 줄 의무는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고용하기 전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를 명시하는 것이 좋다. 설 보너스 기념으로 성의를 표시하거나 선물을 주는 정도도 괜찮다고 한다. 주고 싶으면 줄 수도 있겠지만,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가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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