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의 화려한 야경을 보다 보면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하게 유령처럼 서있는 커다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4군에서 1군으로 넘어가는 다리에서 바로 보이는 그 건물은 크고 높은데다, 눈에 띄는 위치에 있어서 매번 지날 때마다 쳐다보게 된다. 하지만 오래전에 공사가 중단되었는지 녹슨 철근 구조물과 색이 변한 콘크리트, 흩날리는 가람막은 호치민판 유령의 집(haunted house)을 떠오르게 한다. 호치민시내를 다니다 보면 이렇게 중단된 건물들이 종종 보이는데 미관상 보기 좋지 않은 데다가 남모를 사연이 있어 보였다. 물론 완공되고도 귀신이 많이 나와서 사람들이 살지 않아 유령의 집이 되었다는 곳도 종종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물은 앞서 언급했던 호치민판 유령의 집 사이공원타워(Saigon One Tower), 사이공강 너머로 보이는 독특한 모양의 전시관 스펙(Saigon Planning Exhibition Center)이다.
사이공 원타워(Saigon One Tower)
출처 http://vanphongchothuequantanbinhhcm.com/
사이공원타워는 1군 함응히-똔득탕-보반낏 교차되는 곳에 위치한 6,600평방미터 부지에 위치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지상 42층에 지하 5층, 높이 185미터로 호치만의 세 번째 높은 건물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이 건물은 주거용 아파트와 쇼핑몰, 오피스까지 포함한 주상복합건물이었다. 당시 5 조동(약 2.13억 달러)이 투자되어 2007년에 시작된 공사는 2009년에 완공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1년 경제 위기로 인해 골조만을 남겨둔 채 투자사는 빚만 남긴 채 공사가 중간되었다고 한다.
SPEC(Saigon Planning Exhibition Center)
The SPEC from across the Saigon River. (Christopher Otis, September 2020)
2015년 공사가 시작될 당시, 스펙(SPEC, Saigon Planning Exhibition Center)은 투티엠 신도시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건물로 각종 기획전시와 주요 회의 장소를 위해 설계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프로젝트는 수년 동안 고착 상태에 머물러있다. 눈을 사로잡는 현대적인 건물 외관 덕분에 멈춰진 건물 상태에도 불구하고, 사이공 강 너머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상징적인 랜드마크로 남아 있다.
사이공원타워의 새로운 시작, IFC원사이공
출처: VNEXPRESS
한국으로 돌아온 지 1년도 더 지났는데, 우연히 멈춰있던 건물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페이스북에서 이런저런 소식들을 보다가 사이공원타워 공사가 재개되었다는 기사를 발견한 것이다. 지리적 입지도 좋고, 덩치도 큰 건물이 호치민 한가운데서 불 꺼진 유령 빌딩이 된 것이 볼 때마다 아쉬웠는데 잘되었다 싶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스타 피드에 해당 기사를 올렸더니 호치민에 있는 지인들이 깜짝 놀란다. 호치민에 사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데, 한국에서 어떻게 알았냐며 신기해했다.
기사에 따르면 11년 넘게 방치되었던 사이공원타워는 새로운 투자자 비바랜드(VivaLand)를 맞이하고 새로운 외관을 선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2018년 VAMC(Vietnam Asset Management Company)가 총 7 조동의 부채를 처리하기 위해 해당 건물을 경매에 부쳤고, 비바랜드가 사이공원타워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방치되면서 도시 외관을 해칠 뿐 아니라 유리창틀에 대한 안정성 문제가 제기되어, 비바랜드는 우선 건물 유리패널을 새로 설치하였고, 이후 진행은 허가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호치민시 야경의 검은 구멍이 예쁜 불빛으로 채워지다니, 기사 사진만 봐도 화려하고 생기를 되찾은 것만 같다. 언제 완공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다시 호치민을 방문하게 되면 크루즈를 타고 호치민 야경을 사진에 담아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