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언 Nov 07. 2023

베트남 버킷리스트 #1. 타투

고양이와 연꽃, 자전거 타는 소녀 

2021년 5월 즈음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베트남에서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다. 이름하여 베트남 버킷리스트. 그중에 하나가 바로 타투를 하는 것이었다. 타투를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타투는 어르신들이 언짢은 시선을 부르는 일인 데다 불법 의료시술이기까지 하니 타투를 하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베트남에서 타투가 불법인지는 알 수 없지만, 타투 가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타투를 하기 전 남편에게  동의를 구했다. 아니 선언했다.    

- "나 타투할 거야! 한국 가기 전에 꼭 하고 갈 거야" 


외모에 관한 한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성향이 남편이라 싫은 내색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선선히 동의해 주었다. 

- "그래, 하고 싶으면 해. 예쁜 걸로"

타투 싫어하면서 왜 하라고 하냐고 물어보니, 어차피 네가 하고 싶으면 내 말을 듣겠냐고 했다. 맞는 말이다. 당장은 안 하더라도 결국엔 고집대로 했겠지. 어쩌면 한국 귀임 결정에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으니 웬만해선 하고 싶은 걸 하게 내버려 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생애 첫 타투라 어떤 디자인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먼저 타투를 한 인친님께 물어보니 큰 동물이 멋지다며 호랑이, 말 같은 거 하라고 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정작 본인은 레터링으로 했으면서. 일단 핀테레스트(pinterest)와 인스타그램에서 예쁜 타투 디자인들을 보는 대로 캡처해서 모았다. 베트남은 아직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원하는 디자인을 가지고 가면 타투가게에서 그대로 해준다고 했다. 


당시 코로나 때문에 호치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타투 시술하는 곳이 문을 닫을까 봐 락다운 되기 전에 예약을 잡기로 했다. 우리 가족이 자주 가는  헤어숍 사장님의 부인이 타투이스트였다. 덕분에 헤어숍 사장님의 몸은 온통 와이프님의 도화지 마냥 타투 투성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시기도 했다. 예약을 하고 가기 전까지 열심히 디자인 후보들을 찾아 휴대폰에 담아 갔다. 


가져간 디자인을 보여 주고, 실제 타투를 했을 때 괜찮을지를 상의했다. 타투를 하기 전에 어디에다 할 지도 정해야 했다. 부위별로(?) 통증의 정도를 물어보니  뼈가 있는 부분은 더 아프다고 했다. 후보지인 등, 팔, 손목, 발목 중 아픈 정도를 물어보니 팔이 제일 안 아프고, 발, 등 순서라고 했다. 어차피 아프긴 다 아프다고 하셨다. 잠시 고민하다가 세 개를 한 번에 하면 10만 동 할인해 주신다 해서 어차피 아플 거 한 번에 아프자라는 생각으로 디자인 3개를 등(목뒤), 손목, 발목 순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언젠가 또 타투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작업해 주신 분 말씀으로는 색이 잘 먹는 편이란다. 흰색이 잘 나와서 좋다고 하셨다. 흰색이 아예 안 먹으면 검은색 타투밖에 못한다고 하셨다. 어쨌든 잘 안 먹는 것보단 잘 먹는 게 좋은 거겠지? 그리고.. 아팠다. 팔이 제일 덜 아프다는 거였지 안 아프다는 게 아니었는데, 심지어 손목은 뼈가 있어서 더 아팠다. 등은 원래 아프다고 했고, 발목은 뼈가 있는 근처라 뼈 찌르는 아픔이 느껴졌다. 어쩌다 보니 아픈 곳만 골라서 타투를 한 셈이었다. 


다행히 타투는 예쁘게 나온 것 같았다.  타투를 하고 나니 주의사항을 말씀해 주셨다. 집에 가서 먹으라고 항생제를 주고,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하고 바셀린을 바르라고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타투하고 관리하는 요령이 나와 있었다. 시키는 대로 따라 했더니 신기하게도 타투는 흐려졌다가 다시 색을 드러냈다. 


나의 문신은 여전히 잘 있지만, 호치민과 다른 한국의 날씨 덕에 긴 바지, 양말, 목과 등을 가리는 옷을 입게 되어 나의 타투는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가끔은 내가 타투를 했다는 사실을 깜빡한다. 온천 갈 때 남편이 문신 있는 사람 출입금지하는 곳도 있다며 놀릴 때나 머리카락을 자르러 갔다가  헤어디자이너가 타투가 있네요 할 때나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도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타투가 아니라 내 만족을 위한 것이라 이 정도로도 만족한다. 



내가 고른 타투 디자인과 의미 


1. 연꽃(Lotus) 

연꽃은 베트남 국화이면서,  재탄생,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꽃이라고 한다. 베트남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무언가 베트남을 기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디자인을 찾고 있었는데 이 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베트남을 기억하고, 한국에서의 새롭게 시작하겠다! 는 타투 프로젝트의 명분, 연꽃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 고양이 

예전부터 타투를 하게 되면, 어깨에 넓게 퍼져있는 점이나 손목에 있는 흉터를 커버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수술한 흉터를 타투로 아름답게 커버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의 콤플렉스를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팔목 타투는 사실 타투를 하게 되면 등에 있는 큰 점과 손목에 있는 화상흉터를 커버하기 위해 하고 싶다는 오래전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매일 타투 디자인을 검색하다가 시술 바로 하루 전에 발견한 디자인. 베트남 타투이스트 작업물 같은데 베트남은 타투 저작권이 없다고 하긴 하시는데... 일단 예쁘니까 해봤다.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로. 


3. 오토바이를 타는 소녀 

발목 타투는 또 다른 베트남의 기억. 마지막 반년 가량을 타고 다녔던 나의 오토바이. 렌트차량 대신 나의 발이 되어 주었던 오토바이, 빨간색 혼다 리드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다. 열심히 찾은 타투 시안. 타투해 주시는 분도 디자인 너무 귀엽다고 작업 내내 좋아하시면서 작업을 해주셨다. 끝나고도 다른 직원들에게 보여주실 만큼 좋아하심. 나의 발이 되어 주었던 오토바이를 나의 발목에. 




 




매거진의 이전글 그날: 호치민 대탈출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