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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언 Apr 26. 2023

비움

또 다시 움직여야 할 시간 

© dsalcius, 출처 Unsplash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지냈던 집도 넓지 않았었다. 회사 사택이었는데, 아이까지 키우기엔 좋지 않은 컨디션이라 판단한 남편이 사비를 들여서 수리해서 들어 갔었다. 그러다 호치민 주재원으로 발령받으면서 집이 갑자기 넓어졌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집은 넓어야 한다는 생각이 생긴 것 같다. 다시 귀국하고서 우리가 포항에서 구입한 집은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꽤 넓은 집이었다. 하반기쯤 다시 서울 사택으로 옮길 예정인데, 직원에게 빌려주는 사택이라 평수가 그리 크지 않았다.  아이들은 대뜸 "집이 왜 이렇게 작아요?"라고 했다. 언제부터 지들이 넓은 집에 살았다고. 아이들의 기억 속엔 없지만 우리는 작은 집에서 시작했었다. 작은 집에서 넓은 곳으로 옮겨가는 게 이상적이지만, 작은 데서 넓어졌다가 다시 작은 데로 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어차피 다 내 집도 아니고, 회사에서 빌려주는 집이니까. 


자회사에서 서울 본사 팀장으로 가게 된 것은 당연히 축하할 일이고, 집값 비싼 서울에서 사택에서 살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다. 남편은 우리에게 다른 옵션이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 예를 들어 단신 부임할 테니 계속 포항에서 살아도 된다고 했다 - 하지만 결국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답장너였다. 경제적인 면 뿐 아니라 사춘기에 접어 드는 아들들에게 아빠는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건 또 별개의 문제겠지만 말이다. 호치민에서 짧은 기간에 학교를 여러번 옮긴 안타까운 경험이 있으니, 어떻게든 적응하긴 할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진 큰 집 살이와 살림살이에 우리 집에 있는 짐들이 그 집으로 다 들어가기나 하려나 한숨만 나왔다. 그렇게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집 정리를 시작했다. 이사 갈 집 사이즈가 현재 상태를 억지로 구겨 넣어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아 조금씩이라고 비워 내기 위해서였다. 정리의 대상은 자리만 차지하고 2년 이상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들이다. 결혼할 때 마련했던 장 한 통과 테이블은 이미 찜해 놓은 분이 계신다. 호치민에서 구입했던 퀸 사이즈의 라텍스는 싱글사이즈로 잘라서 계속 써볼 계획이다. 막상 커버를 열었는데 자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면 나눔이나 폐기할 수도 있겠다. 사실 천연라텍스라 관리하기에 너무 무겁다. 그 외 한 번도 안 쓴 찻잔, 도자기 그릇 등은 기부하거나 나눔을 할 예정이다. 작은 소품들을 시작으로 당근마켓에 물건을 올리기 시작했다. 무료 나눔은 금방 거래가 되는데, 중고물품은 저가라도 거래가 잘 안되니 아쉽다. 어쨋든 이사를 앞두고 중고나라, 당근마켓, 아나바다 마켓과 급 친해지는 중이다.  


조금씩 버릴 건 버리고 나눌 건 나누면서 비울 건 비우려 하고 있다. 어쩌면 이번 서울행은 불필요하게 끌어안고 살던 물건들을 비우는 뚯밖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하나씩 비우면서, 불안한 마음도 진정이 되어 가고 있다. 한 달 전쯤 안 입던 옷과 전집들도 수거업체 통해서 비웠는데, 또 비울 게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비울수록 구겨놓을 짐이 줄어드는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아닐지도 모르겠다). 매번 이사를 앞두고 중고나라, 당근마켓와 급격히  오늘도 도 닦는 마음으로, 긍정 회로를  돌려본다. 


그나저나 2-3년에 한 번씩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군인 가족도 아니고 서울, 호치민, 포항, 다시 서울... 무슨 일인가 싶다. 우리 애들 어쩌나. 군인 가족으로 어렸을 때 이사가 잦았던 김영하 작가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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