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스피어(Amazon Sphere), 시애틀
(2023 여름 미국여행 당시 기억을 떠올려 씀)
시애틀 하면 먼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부터 떠올랐는데, 알고 보니 스타벅스와 아마존닷컴 본사가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미국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 관련 네이버 카페 게시물을 살펴보다 보니, 시애틀은 매달 특정일에 무료로 개방하는 공간(도서관, 미술관 등)을 잘 활용하면 좋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중 특히 내 눈길을 끈 건 아마존 스피어(Amazon Sphere)의 퍼블릭 오픈이었다. 아마존은 매월 첫째, 셋째 주 토요일에 아마존 직원들의 휴식공간이자 식물원인 아마존 스피어를 일반인에게도 무료공개한다고 한다. 현지에 가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애틀에서의 모든 일정이 불분명했었지만, 시애틀까지 갔으니, 아마존 스피어를 보면 더 좋겠다 싶었다.
사전 예약이 필요해
문제는 예약이었다. 무료공개를 하긴 하지만, 사전예약을 한 사람만 아마존 스피어에 입장할 수 있다고 했다. 부랴부랴 아마존스피어를 예약 페이지를 검색해 보니, 예약 페이지는 15일 전에 오전 10시(현지 시간 기준)에 퍼블릭 오픈되는데 10시부터 15분 간격으로 슬랏이 오픈된다고 했다. 네이버카페에도 스피어 예약 페이지 왜 오픈 안되냐고 질문이 종종 올라오는 걸 보면, 예정된 시간에만 예약페이지가 오픈되고, 예약 자체도 쉽지 않아 보였다.
The Spheres weekend public visits
Stroll through The Spheres indoor gardens, which will be open to visitors by reservation during the first and third Saturday of each month, free of charge. To register for a visit, please select your preferred Saturday and time. Reservations become available 15 days before the date.
(www.seattlespheres.com)
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안돼도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으로 사전예약에 도전해했다. 시애틀에 머무르는 일정 중 첫째, 셋째 토요일을 확인한 다음 그로부터 15일 전 날짜를 계산해서 달력에 표시해 두었다. 우리 가족이 미국에 머무는 일정 중 가장 이른 일정인 7월 15일(7월의 세 번째 토요일)에 아마존스피어를 방문하는 스케줄로 예약해 보기로 했다. 그 이후로 예약을 잡으면, 다른 지역 방문 스케줄 때문에 방문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이변이 없다면 예약페이지는 15일 전인 6월 30일 아침 10시(시애틀 시간 기준, 한국 7월 1일 새벽 2시)에 열릴 예정이었고, 나는 7월 1일 새벽 2시에 알람을 맞춰 놓고 잠들었다. 하지만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고, 새벽 3시 30분쯤에 잠이 깬 나는 당황했지만 일단 예약부터 도전했다. 열려 있는 예약시간대에 맞춰 어른 2, 아이 2를 입력했는데, 에러가 났다. 물리적인 거리가 인터넷 속도에도 영향을 미치나 싶어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 상태를 점검하고, 다시 15분을 기다려서 예약에 도전, 극적으로(!) 성공했다. 이게 뭐라고 또 이렇게 기쁠 일인가 싶었지만, 이제 시간에 맞춰 아마존까지 가기만 하면 된다.
아마존스피어 방문일정을 이틀 앞둔 7월 13일, 아마존 스피어에서 이메일이 왔다. 혹시 예약에 문제가 생겼나 걱정반 긴장 반하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열어 보니 아마존 스피어에 있는 시체꽃이 곧 개화할 것 같다는 희소식이었다. 시체꽃은 5-10년마다 꽃을 피우는 희귀한 식물인데, 꽃이 피면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고 해서 시체꽃이라 불린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시체꽃이 피었을 때 화제가 되었었는데, 그때 못 본 시체꽃을 미국에서 보게 된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었다. 시체꽃만 보는 사전예약을 받아 공개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올림피아에서 시애틀까지 가는 게 쉽지 않으니 사전예약한 토요일에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출발 전에는 걱정만 가득했던 미국여행이 점점 더 기대감도 커지고 있었다.
7월 15일(토), 이 날은 같이 입국했던 남편이 일주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사전예약 당시에는 남편 항공편 스케줄을 정확히 알지 못해 어른 2, 아이 2로 예약해 가능한 같이 방문할 계획이었는데, 그럴만한 여유는 없었다. 결국 남편은 아마존스피어 앞까지만 우리를 데려다주고, 다시 타코마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달 반 후에나 만나게 될 남편을 배웅도 하지 않은 채 아마존스피어를 방문했다. 좀 매정했나?
예약이 제대로 되었는지 다시 한번 입구에서 큐알코드를 보여주고 확인했다. 퍼블릭 오픈이라고 입구에 스탠딩 배너를 세워 놓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직원에게 들어가 볼 수 있냐고 질문했다. 당연히 예약한 사람들에 한 해서만 입장가능하다고 하니 실망해서 돌아섰다. 그걸 보고 아이들에게 엄마가 15일 전 새벽에 일어나서 예약해서 볼 수 있게 된 거라 말해주니 아이들도 특별한 기회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 삽질한 보람이 있었다. 예약도 확인했겠다 한결 여유가 있어진 우리는 아마존 스피어 주변을 둘러보며 입장을 기다렸다. 아마존 스피어 입구 옆에는 작은 광장에는 고바나나트럭(Go Bananas!)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바나나 1개씩 주는 바나나트럭, 반가운 마음으로 하나씩 받아먹었다. 한국 아줌마답게 한 개씩 더 챙기려다가 아들이 만류하는 바람에 겨우 자제했다.
마침내 우리 입장 순서가 되어 아마존 스피어에 입장했다. 아마존 스피어는 직원들을 위한 휴게 공간인 실내 정원으로 온통 초록초록한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아래층부터 차례로 올라가면서 공간을 관찰했는데, 하루종일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초록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면, 훨씬 좋을 것 같긴 했다.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한 날까지도 시체꽃은 개화를 하지 않았다. 시체꽃이 개화를 했다면 이 특별한 공간이 시체 썩는 냄새로 뒤덮이는 생경한 경험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했다. 우리는 시체꽃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외양부터 특이한 아마존 스피어는 실제 직원들이 근무하는 공간으로 휴식공간만 일반 공개된다고. 휴식공간이라 그런지 햇볕 잘 드는 꼭대기 층에는 썬베드가 놓여 있어 광합성하며 휴식하기 좋아 보였다.
아마존 스피어 구경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아마존(Amazon go)에서 식료품을 사보려고 했는데 주말엔 문을 닫는 듯했다. 아마존 계정만 있으면 줄을 서지 않고도 구입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시애틀 시내까지 나온 김에 스페이스니들과 치훌리 가든 앤 글래스(Chihuly garden & glass), 시애틀 아쿠아리움까지 다 챙겨보고 버스를 타고 다시 올림피아로 돌아왔다. 남편이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서 아쉬웠던 날이지만, 낯선 미국 땅에서 남편 도움 없이 씩씩하게 아들들이랑 시내 투어를 했다는 데에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해외여행은 주로 남편이 주도적으로 움직였었는데, 남편 없이 이게 될까 하면서도 열심히 계획을 짜고 거듭 확인하면서 움직이다 보니, 이게 되네? 남은 기간 동안도 무사히 잘 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