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정리 프로젝트
생각이 많은 건 피곤한 일입니다. 저를 게으르게 만들기도 하고요. 머리가 몇 시간 뒤, 며칠 뒤의 일까지도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동안 몸은 중압감에 고요히 누워있을 뿐입니다. 타임스톤으로 14,000,605 가지의 미래를 돌려보는 닥터스트레인지가 따로 없습니다.
조심스럽고 예민한 기질 탓에 어려서부터 생각이 많았습니다. 많아도 너무 많았죠. 오늘 놀고 싶지 않다고 하면 친구는 뭐라고 할까, 갑자기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달은 왜 달이지. 지금 이 세 가지 예시를 떠올리는 데만 해도 20분이 걸렸으니 생각이 많은 건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하네요.
이런 사람이 취업을 목전에 앞둔 나이에 갑자기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떠나왔다니. 많아도 많은 생각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제는 고민의 범주가 친구와 공부를 넘어선 지 오래고,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생각으로 머릿속은 한 달 동안 치우지 않은 방처럼 어지럽습니다.
어느 정도냐면요, 가끔씩은 14,000,605 개의 동시다발적인 생각들이 얽히고설켜 뭐 하나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니까요.
이제는 생각들을 하나씩 꺼내 가지런히 정리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창문 열어 환기도 시키고 난잡하게 늘어놓은 노트와 펜들을 제자리에 잘 정리하려고 합니다. 쓰레기봉투는 또 얼마나 많이 나올까요. 20L짜리로 여러 개 준비해 놓아야겠네요.
땀도 나고 시간도 오래 걸리겠지만, 어쩌면 평생 정리되지 않는 고민들도 있겠지만 두 팔 걷어붙이고 해 보겠습니다. 생각 정리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도 붙여 대단한 일을 하는 양 굴어보려고도 합니다.
저의 방청소, 구경 오세요. 훈수를 두셔도 좋고요.
제 청소를 보다가 바닥에 굴러다니던 볼펜 뚜껑 하나가 생각날 수도 있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