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의 안전을 위하여
부스럭, 부스럭.
포장이 벗겨지는 소리가 흥겹게 들렸다.
침이 흐르도록 입가가 벌어진 관수는 이번에 새로 장만한 게임 팩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시리얼 넘버와 함께 두 장의 게임 CD 그리고 각종 상품.
“역시 특전을 사길 잘했어.”
관수가 설레는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사의 로고가 떴다. 이내 간단한 게임 소개 영상이 펼쳐졌다. 이윽고 게임 시나리오를 클릭하자, 검은 배경과 함께 주의사항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먼저 우리 ‘도시 괴담’ 게임을 찾아주신 플레이어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우리 ‘도시 괴담’은 여러분의 거주하는 지역 GPS 좌표를 전송받아 맵으로 활용하며, 모험을 즐기고 다양한 귀신과 괴물을 물리치는 VR게임입니다. 하여 별도의 위치 서비스 승인 요청이 있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그밖에 간단한 주의사항들이 있으니 화면을 넘기지 마시고 꼭 끝까지 숙지하시길 바랍니다.
첫 번째.
우리 ‘도시 괴담’은 VR게임입니다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진행하며, 전용 컨트롤러를 사용합니다. 가상 공간에서의 원활한 플레이를 위해 현실에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괴이'라는 NPC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괴이는 캐릭터를 공격할 수 없으며, 피격받지도 않습니다. 이는 지난 1.9.1 버전 VR헤드셋 업데이트로 인한 버그로 확인 되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추가적인 버그 픽스 업데이트를 진행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버그 픽스 업데이트 전까지, 플레이어 여러분은 캐릭터를 일렁이는 벽 근처로 이동하지 않는 걸 권장합니다.
'괴이'와 마주칠 경우, 드문 확률로, 캐릭터의 저장 기록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캐릭터의 피격 판정으로는 플레이어 화면에 붉은색 이미지가 활성화됩니다. 진동 외에 신체적인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게끔 기본 설정이 되어있습니다. 게임 안전정책상 이유로 위 설정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리얼한 게임 플레이를 원하신다면, 게임사로 문의 바랍니다. 모종의 절차를 거친 후, c̴̡̩͍̭̒͝ê̷̝̖̈́͜͠ņ̴̛̩̤̽s҉͈̝̊͜͡o҈̢͉̤̌̒͞r̶͓̍̾̚͢͝s҉̨̘̙̘҇̀h̶̨̳͑͛̔͡i̷͈̮͐͜͝p̸̛̲͉͈͗͊͜
네 번째.
게임 저장 목록에서 특수문자로 이루어진 저장 파일을 발견했다면, 절대 그 파일에 게임 기록을 덮어쓰지 마십시오. 실수로 덮어쓰기를 하셨다면, 저장 목록 중 빈 슬롯에 새로 저장이 가능할 때 까지 종료하지 마시고 플레이 하십시오.
- 특수문자로 이루어진 저장 파일에 덮어쓰기를 하셨다면, 게임 난이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또한, 설정 오류로 인하여 현실과 동일한 신체적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캐릭터가 사망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 만약 캐릭터의 HP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저장 목록 중 빈 슬롯에 새로 저장이 가능할 때 까지 버티십시오.
다섯 번째.
게임 '도시 괴담' 안에는 아이 모습의 귀신이나 괴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현실감을 반영한 VR게임 특성상, 아동을 공격하는 행위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게임 내에 아이 모습의 귀신이나 괴물을 보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게임을 진행하시다가 종료하십시오.
아이 귀신에게 반응해, 말을 걸거나, 서둘러 종료한다면, 그들은 자신을 보았다고 생각할 것이고, 흥미를 느끼고 따라다닐 것입니다.
여섯 번째.
게임 종료 시, 어두운 화면이 10초 이상 지속된다면, VR헤드셋을 강제로 벗지 마시고,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서너 차례 하시면서 기다리십시오. 이후, 눈을 뜬다면 정상적으로 게임이 종료되어 메뉴 화면이 보일 것입니다.
만약 강제로 VR헤드셋을 벗고 종료하셨다면, 무조건 우선적으로 즉각 게임사에 문의 주십시오.
주의사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자세한 주의사항은 게임 안내 책자를 참고하십시오.
고객님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와, 진짜 내 동네 같잖아!”
관수는 자신의 동네를 구현한 가상 현실에서 마음껏 귀신과 괴물을 사냥했다. 몇 시간 후, 배가 고파진 관수가 게임을 종료했다.
“어?”
메뉴 화면은 나오지 않고, 검은 화면만이 이어졌다. 거실에선 빨리 나와 밥을 먹으라는 어머니의 성화가 울렸다.
“아이, 이거 왜 이래? 렉인가?”
관수가 VR 헤드폰을 벗고 방문을 열었다.
거실엔 밥이 차려져 있었다. 어머니는 없었다. 다른 방에서 뒹굴던 동생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아이가 밥을 먹고 있었다. 매우 게걸스럽게.
관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터벅, 터벅.
아이에게 말을 걸려고 다가갔다. 아이의 모습이 낯이 익었다. VR게임 속에서 잠깐 마주쳤던 아이 귀신의 모습과 일치했다. 등줄기에 땀 한 방울이 맺혔다. 단단히 잘못된 기분이 들었다. 불현듯 게임 주의사항이 떠올랐다.
‘그들은 자신을 보았다고 생각할 것이고, 흥미를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관수는 방으로 고개를 돌려, 핸드폰을 봤다.
‘무조건 우선적으로 게임사에 문의…….’
관수가 조용히 몸을 틀었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모른 척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