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선행의 보답
*이야기의 모든 내용은 허구도 진실도 아니다. 어느 누군가의 속삭임일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다.
2000년대 초반, 당시 나는 이른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얼른 가자. 늦겠다.”
“아빠, 오늘도 주호 태워줄 거야?”
“방향이 같은데 태워줘야지.”
아버지는 항상 날 차에 태워 학교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럴 때마다 동승하는 불청객이 있었다.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주호였다.
주호는 속된 말로 바보였다. 당연히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였고, 나 또한 직접 괴롭히지 않았으나 대놓고 무시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주호가 안타깝다며 매번 나와 함께 차에 태워 등교를 도와주었다. 그 바람에 학교에 가까워질 때면, 난 머리를 푹 숙여 다른 친구들의 눈을 피했다. 특히 짓궂은 동네 친구들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놀림거리가 될 터였다. 어느 날엔가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겠다는 나에게 아버지가 엄하게 타이른 적이 있다.
“주호 때문이냐? 다른 친구들이 주호를 괴롭혔을 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피하겠다고? 그러면 못 쓴다. 한 번만 더 그러면 혼날 줄 알아.”
난 아버지의 꾸지람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막돼먹은 사춘기 시절일지라도 아버지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더불어 주호는 점점 더 미워질 뿐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하교 시간이 되었다. 터덜터덜 집에 가고 있는데 학교 후문 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궁금함에 몰래 숨어 후문 쪽을 보니 주호가 땅바닥에서 뭘 주워 먹고 있었다. 과자였다. 동네 친구들이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대고 있던 것이다.
“맛있지? 더 줄까?”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대장 격인 강수가 바닥에 과자를 던졌다. 주호가 서둘러 그걸 집어 들자 옆에 있던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과자를 뿌렸다.
“과자를 얻어 처먹었으면 감사합니다. 해야지.”
강수가 주호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주호는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꾸벅 인사를 했다. 강수의 무리가 주호를 둘러쌌다. 이윽고 몇 차례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더니 재미없다며 후문을 나섰다. 와중에도 주호는 감사하다며 연신 절을 해댔다. 주호가 혼자 남아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찾고 있을 때 내가 살며시 다가갔다. 그리고는 방금 산 빵 하나를 내밀었다.
“떨어진 거 먹지 말고 이거 먹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주호는 웃으며 빵을 받아들었다. 나는 도망치듯 집으로 향했다. 뜬금없는 선행에 나 스스로 놀랐다. 물론 좋은 마음으로 베푼 것은 아니었다. 괴롭힘당하는 주호를 보며 아버지의 엄한 모습이 떠올랐기에 덜컥 겁이 났을 뿐이었다.
며칠 뒤 등교 시각. 난 아버지와 함께 주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올 시간이 지났음에도 주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은 오지 않나 보다. 지각할 것 같으니 먼저 가자.”
아버지의 말에 내심 좋아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막 출발하려는데 삐쩍 마른 아저씨가 창문을 두드렸다. 창문을 내리고 보니 주호네 아버지였다.
“죄송합니다. 우리 주호가 일이 좀 있어 늦었는데……. 지금이라도 태워다 주실 수 있을까요?”
아저씨는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뒤로는 주호 어머니가 주호의 손을 잡고 뛰어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괜찮다며 주호를 차에 태웠고, 주호의 부모님은 아버지께 매번 감사드린다며 거듭 인사를 했다. 나는 아쉬워서 입을 삐죽 내밀었다. 오늘도 눈치 보며 등교를 해야 할 판이었다. 그때 아저씨가 나에게 빵 한 봉지를 내밀었다.
“네가 주호에게 빵을 주었다고? 고맙다. 이 빵들은 주호 없을 때 친구들이랑 나눠 먹어. 주호는 이미 많이 먹었으니까 꼭 따로 먹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호를 보았다. 이리저리 흙먼지가 묻어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아침 주호는 집에서 나온 후 강수 무리에게 걸렸다고 한다. 어김없이 과자를 바닥에 뿌렸고 주호는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흙바닥을 굴렀다. 이 상황을 주호네 아버지가 발견하고는 아이들을 쫓아버렸다. 그렇다 보니 아저씨는 주호 몰래 빵을 나눠 먹으라 당부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당신 아들과 빵을 먹다가 놀림당하지 말라는 슬픈 배려였으리라. 20년이 지난 지금도 차창 밖 두 분의 얼굴이 잊히질 않는다.
이후로 난 등교 시각에 주호를 볼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네와 학교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안쓰러워 죽겠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려간 것이다, 여자가 미칠 만 했다……. 소문의 내막은 이러했다.
주호의 아버지는 병을 앓고 있었고 찜질방에서 심장 마비로 돌아가셨다. 장사를 지낸 지 며칠 만에 잠을 자던 주호가 돌연사했다. 아주머니는 충격을 받고 쓰러지더니 정신이 나가 실종되어 버렸다. 그렇기에 죽은 아버지가 괴롭힘당하는 아들을 데려갔다는 말이 오르내린 것이다.
소문이 잠잠해질 무렵,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강수가 자기 집 옥상에서 놀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수와 함께 놀던 아이들이 크게 다치는 일이 연달아 발생했다. 철없는 어른들은 주호가 귀신이 되어 왔다는 둥 수군거렸고, 이 말을 들은 강수네 부모님이 크게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당시 우리 집은 다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아버지가 환청에 시달리시는데 자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환청이 들릴 때면 심한 오한이 들어 축 늘어지기가 일쑤였다. 다행히 빈도수는 많지 않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었고, 단순 스트레스라 치부하고 넘기셨다.
비바람이 심하게 치던 날, 아버지가 일을 일찍 정리하고 퇴근하시는 길이었다. 차가 동네로 들어선 순간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한이 들기 전에 서둘러 집에 가야겠다며 속력을 내는데, 갑자기 어린아이가 차로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아버지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대형 간판이 차 앞으로 떨어졌다.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5층 높이에서 떨어진 듯했다. 정말 간발의 차였다. 차가 조금만 앞으로 갔어도 큰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다.
아버지는 문득 바로 앞으로 달려들었던 아이가 생각났다. 급히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아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가 비를 맞으며 멍하니 섰을 때, ‘감사합니다’ 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그때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은 주호의 목소리였다는 것을.
주호의 목소리는 나에게도 들렸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막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봉지째로 버려진 빵이 보였다.
‘누가 흘렸나?’
내가 빵에 시선을 뺏긴 찰나, 트럭 한 대가 찢어질 듯 경적을 울리며 내 앞을 스쳤다. 다리에 힘이 풀렸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멀어지는 경적 틈으로 속삭이듯 주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돌아보니 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주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금도, 나와 아버지는 주호가 우리를 도와준 것이라 믿고 있다. 생전에 주었던 작은 선행에 보답한 것으로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