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없는 귀신
*이야기의 모든 내용은 허구도 진실도 아니다. 어느 누군가의 속삭임일 뿐이다.
내가 중학교 시절 이야기다.
“여기에 걸면 되지?”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가 말없이 끄덕였다.
“뭘 이런 걸 다 해와서는…….”
혀를 차며 안방으로 들어간 아버지의 빈 자리엔 큼지막한 달마도 한 장이 붙어있었다.
당시 우리 집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이 갑자기 주저앉았고, 어머니는 사기를 당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동생까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니, 집안 꼴은 말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고 싸우셨고, 동생의 병은 악화할 뿐이었다. 오직 나만 별 탈 없이 지내는 듯하였다.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마음을 위로하고자 절에 다니셨고, 그곳에서 달마도 한 장을 얻어오셨다.
“저게 효과가 있기나 해? 거실 한가운데 있어서 기분만 더럽다고.”
안방에 누워서 계속 툴툴거리던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또 싸울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일을 나가시고 어머니는 동생 간호를 위해 병원을 갔던 날이었다. 난 같은 반 친구인 민규와 수호를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조심히 놀고 있으라며 짜장면을 시켜주었다. 배불리 먹고 수다를 떨고 있는데 수호가 나에게 와 물었다.
“거실에 붙어있는 건 뭐야?”
“아 저거? 달마도야. 엄마가 가져온 건데 잘은 몰라.”
시답지 않은 대화가 끝나려 할 때 민규가 불쑥 말했다.
“저거 좋은 거야.”
“어? 민규 너 달마도 알아?”
“응. 우리 집에 많아.”
민규의 어머니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점집을 하셨는데, 지금은 소위 신빨이 떨어져 그만두었다고 했다.
“좋은 거라면 비싼 거야?”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비싸다기보다 힘이 세다고 해야 하나? 나도 잘은 모르지만 느껴지는 건 있어. 힘이 잘 실린 달마도나 부적 같은 걸 보면 심장이 뛰고 그래.”
신기한 이야기에 나와 수호는 몇 차례 더 질문을 던졌고 민규는 아는 한에서 말해주었다. 난 혹여 집안 사정이 나아질까 하는 기대감에 더욱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러나 민규는 자세히는 모른다며 말을 흐렸다.
“저거 좋은 거 맞아? 아직 아무 일도 안 일어났는데.”
약간 실망한 내가 비꼬듯이 말했다. 민규는 잠시 달마도를 보더니 살짝 웃었다.
“달마도 가져온 지 얼마 안 됐지?”
“일주일 정도?”
“기다려야 해. 나 어릴 때 엄마한테도 너 같은 손님 많이 왔었어. 그때마다 엄마는 기다리라고 말하고 돌려보내더라.”
민규는 제 어머니의 말을 흉내 냈다.
“묵은 귀신은 쉽게 떠나지 않아. 진을 다 빼놔야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는 거야.”
귀신 얘기에 호기심이 동한 우리는 한동안 무서운 얘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그날 저녁,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하여 수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또한 일이 끝나고 바로 동생에게 가버렸기에 나는 혼자 집을 지켜야 했다.
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던 중, 거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베란다 문틈 사이로 바람이 새어들고 있었다. 그 바람에 걸려있던 달마도가 펄럭거리는 소리를 낸 것이다. 베란다 문을 닫기 위해 발을 옮기다 문득 달마도에 시선이 꽂혔다. 덥수룩한 수염에 뭉툭한 코, 튀어나올 듯한 눈이 당장이라도 버럭 화를 낼 것만 같았다. 또한, 아래로 내리깔린 눈동자는 묘한 위압감을 주었다. 아버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너무 기분이 더러웠다.
베란다 문을 닫기 위해 손을 막 대려던 참이었다.
“닫지 마.”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힘이 다 빠져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난 깜짝 놀라 손을 뗐다. 아버지가 온 것일까? 고개를 돌려 현관을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었나?’
다시 베란다 문을 닫기 위해 힘을 주었다. 그런데 문틈에 뭐가 걸린 듯 밀리지 않았다. 한참 씨름하고 있을 때, 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닫지 마. 닫지 마.”
그리고는 베란다 문틈 사이로 하얀 무언가가 일렁였다. 그것은 점점 뚜렷해지더니 남자의 형상으로 변했다.그는 상반신만 있고 두 눈이 파인 채로 베란다 문틈에 매달려 있었다.
“으악!”
난 외마디 비명과 함께 선 채로 굳고 말았다. 눈이 파인 남자는 거실 쪽으로 툭 떨어지더니 나를 향해 서서히 기어왔다. 허리 아래쪽을 질질 끌 때마다 거실 바닥은 피칠갑이 되었다.
“닫지 마. 닫지 마. 저 눈을 파버려야 해!”
남자는 온 집안이 울릴 정도로 절규를 해댔다. 나는 뒷걸음질 치며 피하다가 이내 거실 벽에 부딪혔다. 피할 곳이 없었다. 남자가 내 발밑까지 기어왔을 때 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런데…….
“켁켁…….”
남자가 무언가에 놀란 듯 멈칫했다. 그 순간 남자의 목이 기괴하게 꺾였고 피를 토해냈다.
“눈을 파버려야 해. 눈을 파버려야 한다고! 눈을! 눈을…… 눈, 눈!”
남자는 목이 꺾였음에도 계속 중얼거리더니 점점 형체가 흐릿해졌다. 그와 함께 내 시선도 흐릿해지면서 스르르 눈이 감겼다.
띠리링-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목이 뻐근했다. 밤새 벽에 기댄 채로 잠이 든 것이었다.
‘어제 일은 꿈이었을까?’
서둘러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막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려는데 거실에 붙은 달마도가 눈에 띄었다. 마냥 기분이 더러웠던 어제와 달리 그저 종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등교 도중 부모님께 연락이 왔다. 동생의 수술이 잘 끝났고 한시름 덜었다고 말이다.
며칠 후, 민규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민규는 지난번과 같이 달마도를 보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그러냐고 묻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달마도 수명이 다했어. 이제 이건 버려야 해.”
“응? 그걸 어떻게 알아?”
“저길 봐봐.”
민규는 달마도의 눈을 가리켰다.
“달마도 눈동자가 사라졌어.”
자세히 보니 달마도는 가로로 찢어져 있었다. 눈동자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면서. 나는 지난번에 꾼 악몽을 민규에게 털어놓았다. 민규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귀신이 네 가족 중 누군가를 데려가려고 했나 봐. 그런데 달마도가 막고 있으니 답답했던 거지. 아마 달마도의 기운과 함께 사라져 버렸을 거야.”
이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사업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다. 어머니 또한 우울증이 나아 평범한 주부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당시 동생은 안구 뒤쪽으로 작은 혹이 났었다고 한다. 동생 나이도 어리고 혹도 너무 작아 수술도 치료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혹이 커지는 바람에 오히려 수술할 수 있었다.
그날은 내가 눈이 없는 남자를 만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