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에세이 #1
<독수리가 되고 싶은 메추리>
독수리가 되고 싶은 메추리가 있었다.
작은 나뭇가지 아래에서 창공을 가르는 독수리를 볼 때마다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푸른 하늘을 다 가진 독수리는 메추리의 작은 눈으로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세상이었다.
메추리는 독수리가 부러웠다. 그래서 다짐했다. 짹짹이 아니라 까악 까악 목청껏 울기로. 작은 지렁이가 아니라 거대한 뱀을 먹기로.
매일매일 연습했다. 시끄러운 소리로 울어댈 때마다 친구 메추리들은 멀어져 갔다. 뱀을 먹기 위해 사냥할 때면 죽을 고비도 넘겨야 했다. 그렇게 견뎠다. 모든 것은 독수리가 되기 위한 과정 이리라. 그렇게 참았다.
눈부신 어느 날, 메추리는 무심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독수리와 참 많이 닮아있었다. 그동안의 고통과 외로움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머리 위로 독수리의 우렁찬 울부짖음이 들렸다. 작은 동물들은 낮은 수풀 사이에 숨어 벌벌 떨었다.
메추리가 포효했다. 그리고 날개를 폈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큰 날개였다. 독수리가 있는 높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드디어 독수리가 됐어!”
햇빛이 눈에 번졌다. 앞이 아른거렸다. 독수리가 다가왔다.
쉬익-
순식간이었다. 메추리는 어느새 독수리의 부리에 물려있었다. 온몸이 잘근잘근 부서졌다. 그 아픔에 몸부림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것도 독수리가 되는 과정이라고. 진정 독수리가 되지 못할 바에야 독수리의 일부가 되는 것이 옳다고.
햇살 좋은 어느 날, 푸른 하늘에는 독수리 한 마리가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었다.
전 연기를 하는 배우였습니다. 배우는 적힌 글을 표현하는 직업입니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등 떠밀리듯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극단을 만들었는데, 대본 쓸 사람이 없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눈동냥, 귀동냥으로 글을 배웠습니다. 억지로 글을 썼고, 발표했습니다. 올리는 공연마다 실패했습니다. 다들 눈치를 주더랍니다. 글이 제대로 나왔다면 성공하고 남았을 거라고. 저도 남을 탓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너희가 잘하면 그만이라고.
자존심이 상한 저는 다시 글을 배웠습니다. 제대로 쓰리라, 대단한 작가가 되리라, 날 욕한 놈들의 콧대를 꺾어 놓으리라 다짐했죠.
내로라하는 분들에게 찾아갔습니다.
“글을 배우고 싶습니다.”
말은 ‘배운다’였고, 뜻은 ‘당신처럼 되고 싶다’였죠.
그분들이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글이라면 사회 부조리함을 드러내야 해.”
“글이라면 정치 구조를 비판해야 해.”
“글이라면 국가 의식을 고취해야 해.”
노력했습니다. 그 말들을 지키기 위해. 당신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 오로지 성공을 위해.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제 곁을 떠났습니다. 많이 외로웠습니다. 제게 글쓰기란 어울리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도 모르게 한 편의 대본을 썼습니다. 사람들이 울고 웃을 만한 이야기, 내가 울고 웃을 만한 이야기를 말입니다. 사회 부조리함이나 정치 구조를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국가 의식을 고취하는 것 또한 아니었습니다. 그저 바보 같은 글이었습니다.
공연을 올렸습니다. 비록 많은 관객이 들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두 웃음 만연한 얼굴로 공연을 즐겼습니다.
많이 행복했고, 그만큼 울었습니다. 처음으로 ‘성공’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문득 깨달았죠.
내가 되고자 했던 모습과 내가 가고자 했던 세상 속엔, 내게 어울리는 성공 따위 없었다는 것을.
독수리는 독수리만의 세상이 있고, 메추리는 메추리만의 세상이 있습니다. 급수를 매기자는 것이 아닙니다. 독수리가 메추리의 세상을 원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큰일이 납니다. 두 세상 모두 완벽하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내로라하는 작가들은 독수리입니다. 멀리 보고 멋진 목소리를 냅니다.
저는 작은 새, 메추리입니다. 땅 아래의 어여쁜 꽃들과 어울리고, 맑고 곱게 지저귑니다.
당신은 당신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나요? 혹시 다른 세상을 동경해 당신의 세상을 버리려 하고 있진 않은가요?
세상 모든 것은 당신의 아름다운 삶 속에 있습니다. 그것을 잊지 말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