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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Aug 10. 2024

출간 계약 ; 집도 삶도 리모델링하고 있습니다(가제)

오래된 공간을 고치며 내 오랜 삶도 리모델링하는 여정에 관하여





공간으로 삶을 리모델링하는 이야기


"집도 삶도 

리모델링하고 있습니다" (가제)



출간 계약 소식을 전합니다.








서울 아차산 자락, 1979년식 작고 오래된 단독주택을 고치며 제 삶도 함께 리모델링해 온 지난 여정의 기록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집도 삶도 리모델링을 하겠다는 결심의 순간부터 완성이 되어가는 단계마다 영감을 받은 [미술 작품]과 [이국의 정취] 그리고 공간을 연출하는 디자이너로서의 미학이 투영된 시공 공정을 '나다운 삶'을 위해 용기 낸 한 사람의 변모 과정을 통해 엮어 내고 있습니다.


2021년 유독 더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이던 가을, 처음 이 낯선 집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2022년 봄부터 2023년 봄까지 2년여의 예상치 못한 긴 기간 리모델링을 했어요. 그렇게 이젠 모든 걸 다 끝냈다며 잠시 한 여름의 숨을 가다듬은 후,  혹독한 침잠의 지난겨울 숱한 과거의 시공간을 여행하며 초고를 썼습니다. 정신적 피로감에서 채 회복되지 않은 과거를 반추하며 글을 쓴다는 건 희열과 고통의 극적 감정에 완충재 하나 없이 스스로를 또다시 내던지는 일이더군요. 하루는 한 문장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대책 없는 막막함에, 또 어떤 하루는 겨우 완성한 한 꼭지 글을 읽으며 나르시시즘적 자기 만족감에 도취된 채 보드라운 훈풍에 떠밀려 봄을 맞이했습니다. 봄, 이젠 내 삶도 소생의 봄이기를 간곡히 소망하며 욕망으로 점철된 서툰 초고와 바쁜 편집자에게 친절한 인내심을 요하는 ppt 30페이지 분량의 출판 기획서를 한 곳 한 곳 불온한 주술을 걸며 투고했습니다. 


민음사, 을유문화사, 휴머니스트, 미디어 창비, 위즈덤하우스....... 처음에는 계약만 된다면 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반전시켜 줄 게 자명해 보이는 탐나는 메이저 출판사 위주로, 그다음에는 서점과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가며 제 눈길을 유독 사로잡는 유려한 문체와 디자인의 책을 펴낸 감각적인 출판사 몇 군데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반드시 내 이야기를 좋아할 거야!'라는 달뜬 기대보다는 '이렇게 투고하는 게 맞는 거야?' 의심하며 아무 회신 없는 메일창의 알람만 발갛게 달아오른 심각한 얼굴을 하고 뚫어져라 노려봤죠.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언제부터인가 나는 약자로 전락해서 이렇게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는 게 다반사가 되어 버렸구나. 지난 리모델링 기간 동안 숱하게 나를 애태웠던 기다림의 순간들이 무뎌진듯한 상처 위를 흩고 스쳐갔습니다. 죄다 무심한 사람들! 그렇게 생각도 못한 자괴감이 움트기 시작할 무렵, 그러니까 대략 3주가 지난 시점부터 하나씩 하나씩 비스므리한 답변의 메일이 쌓이기 시작했어요.







① 편집부에서 논의한 결과 흥미로운 작품입니다만,
저희가 현재 기획하는 출간방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저희 회사에서는 출간이 어려울 듯합니다.
선생님께서 완성하신 원고의 방향과 더 잘 맞는 좋은 출판사를 만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정성 들여 쓰신 원고를 저희 출판사에 투고해 주시고
또 오랜 검토 기간 동안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②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투고 메일은 잘 받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송구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0000 과는 출간 방향이 달라 출간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모쪼록 좋은 책으로 빛을 보았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③ 선생님, 안녕하세요.
00000 기획편집부입니다. 먼저 저희 출판사에 선생님의 귀중한 원고를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원고를 신중히 검토하였으나, 저희 출판사에서 출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귀한 원고를 보내주셨는데 긍정적인 답신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럼, 선생님의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평안한 나날 보내세요!


④ 김서윤 님, 안녕하세요.
투고해 주신 원고의 검토를 진행한 0000입니다.
먼저 작가님의 소중한 콘텐츠를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검토 결과, 보내주신 기획은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좋은 콘텐츠를 보내주셨는데 긍정적인 회신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더 눈 밝은 출판사를 만나 작가님의 원고가 세상과 만나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⑤ 안녕하세요.
0000 편집부입니다.
먼저 저희 0000을 믿고 귀한 원고를 보여주신 데 대하여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원고와 기획서를 읽고 다방면의 가능성을 검토, 토론하였으나
이번 기회에 선생님의 원고를 출판하기에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반려하게 되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이번에는 기회가 닿지 않았으나 이 원고 역시 저희보다 훨씬 잘 맞는 출판사를 만나 좋은 책으로 나오기를 기원합니다.


⑥ 인사드립니다.
보내주신 메일,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0000에서는 출간 의향이 없음을 정중히 말씀드립니다.
저희는 독자의 마음으로 다른 곳에서 나올 책을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⑦ 안녕하세요, 작가님.
0000 000 편집자입니다.
보내주신 원고는 감사히 잘 받아보았습니다.
내부에서 신중히 검토하여 살펴보았습니다만, 죄송하게도 저희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는 차이가 있어서, 출간 진행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어디까지나 저희 역량이 부족하여 아쉬운 답변을 드리게 된 것이니
부디 너른 마음으로 혜량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나같이 정중하게 거절하는 방법을 잘 습득하고 있었습니다. 출판사에는 공통의 거절 매뉴얼이 있는 게 분명했죠. 이유가 뭘까요? 무엇보다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야 수정을 거쳐 매력적인 이야기로 채택될 수 있을 테니까요. 몇 번을 되읽어보아도 상투적인 메일에서 일말의 단서조차 짚어 내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붙여 넣기 했을 게 뻔한 예의 바른 문장 속에는 실상 아무 내용도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이죠. 거짓말, 모조리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콘텐츠라는 말도, 자신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말도, 신중히 검토해 보았다는 말까지도. 오로지 출간이 어렵다는 말만 진실로 느껴졌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출판사에서는 제 투고에 대해 어떤 회신도 주지 않았기에 이렇게 거절의 메시지라도 보내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도 들긴 했죠. 귀찮음직한 일일 텐데(?) 그래도 원고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표해준 셈이니까요. 성의 표식 하나 없이 한 사람의 극진한 바람을 무시해 버린 출판사 책은 앞으로 사지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지도 말아야지! 이런 하등 영향력 없는 유치한 복수의 감정으로 은근 무너져 내린 자존감을 은폐시키며 또 다른 출판사를 찾았습니다. 



'뭐 그래봐야 고작 서른 군데 남짓 보냈으니 아직 좌절할 것까지는 없잖아.' 


내 이 낭만에 취해야 할 봄날에 야만스러운 감정이 또다시 깃들지 않기를.

그 야만에 허덕이기에는 봄 햇살이 너무도 찬란했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기준으로 출판사를 고를 것인가. 무턱대고 내 원고와 별 연관성 없는 곳에는 투고하지 말자.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맥락 있게 행동하자. 이것만이 여기저기 거절당한 제 원고의 바닥난 품위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태도 같았거든요. 


공간을 이야기한 곳, 그중에서도 가장 내밀한 '집'이라는 공간의 사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 곳, 그런 에세이를 펴낸 곳을 찾기로 했습니다. 제가 동경하는 우아한 품위와 대중의 트렌드에 가벼이 편승하지 않는 단단한 사고의 철학으로 한 자 한 자 진심을 담아 출판하는 곳,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딱! 그런 곳에서 감동적인 메일 하나를 받았습니다. 





제 글에 대한 초반의 긍정적인 평가와 더 나은 방향성에 대한 제시, 뒤이어 어김없이 이어지는 거절의 메시지, 그럼에도 미약하게나마 남겨 놓은 가능성의 후반부, 무엇보다 메일의 마지막 문장은 결국 저를 울리고 말았죠. 지금도 느슨하게 지속되고 있는 몇 년 간의 긴 리모델링 여정에 기대, 불안, 용기, 절망, 좌절, 환희..... 이렇듯 여러 의미의 눈물이 많았지만, '내가 정말 이해받았구나'하는 깊은 안도와 '피상이 아닌 진실로 공감하고 있구나'싶은 본질적인 위로는 처음이었습니다. 곧 저 가느다란 희망의 문장 하나에 기대어 저희 집 초대장을 보냈어요. 리모델링의 객체인 동시에 주체인 이 집을 직접 본다면 제 원고가 보다 설득력을 확보하지 않을까 하는 좀처럼 영리하지 못한 성향의 제가 야심차게 수립한 드물게 영리한 전략이었습니다.    


아니 거짓말, 어쩌면 저의 이 말 또한 거짓일지 모릅니다. 그저 저 메일이 너무도 따뜻해서, 공감의 감흥이 너무도 애틋해서 꼭 뵙고 차라도 한 잔 나누고 싶었어요. 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해도 정말이지 괜찮았습니다. (이건 사실이에요!)   




저 출간 계약했어요!!!


그렇게 잔잔한 감동으로 시작된 귀한 인연이 이렇듯 출간 계약을 하게 되는 드라마틱한 행운으로 이어졌습니다. '공간'이라는 실재적 감각을 만들던 제게 '책'이라는 정신적 공간을 창조할 수 있게끔 다정한 행운을 주신 출판사 실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저 그렇게 쉬이 편승한 책이 아닌 누군가의 고유한 우주가 담기는 책, 제가 집(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책을 바라보는 분을 만나 작업하게 되는 행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 모든 것을 투영해 이 집을 만들었던 그 마음으로 글을 써나겠다는 다짐, 애써줄 출판사에 누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과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긴장을 가장하여 저를 오랜만에 설레게 합니다.



더 이상 지금까지처럼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며 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오래된 단독주택을 고치며 내 한정돼왔던 공간 작업의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로 시작한 일.


실상은 달 달 달..., 매 순간 잘못된 선택일까 가슴 졸이며 떨었고 고단함과 외로움에 한숨 쉬었으며 그럼에도 진정으로 나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부단히 스스로를 응원했던 질곡의 여정이었습니다. 길고 지난했지만 아마도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 이런 양가적인 감정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처연한 이 문장으로 이해되지 않을까 합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작고 오래된 단독주택을 고치며 제 오랜 삶도 리모델링해 온 이야기, 그 이야기가 의미 있는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보여지기까지 앞으로 소소한 관심도 부탁드려요. 집도 삶도 리모델링하는 이 이야기가 제 지나간 시간을 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나마 건넬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요.




* 저의 브런치북 [집도 삶도 리모델링하고 있습니다]가 출간할 에세이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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