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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낙 Apr 15. 2024

초등교실엔 태권도 사범님이 필요해.

feat. 지친교사의아무말대잔치

올해 초 7살 아들이 태권도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낌짝 놀랐다.

칼같이 군기 잡힌 6-7살 남자아이들이라니.

강아지 망아지마냥 풀어놓으면 신나게 뛰어다니고 장난꾸러기인 남자아이들이 사범님 부름에 기합을 넣으며 큰소리로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올해 초등1학년 담임을 맡은 교사다.

10년전에 1학년 담임을 하고 온갖 병치레를 한 후 다시는 1학년을 하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다시 하게 되었다. 이제는 아이도 길러봤겠다, 아들 엄마겠다, 10년 전과는 다르겠지.


그리고 사범님을 보며 나도 저렇게 아이들을 지도해 보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나는 사범님이 아니었다.


물론 10년 전보다는 짬밥이 있는지라 훨씬 나아졌지만, 그래도 사범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풍채에서 나오는 아우라는 범접 불가능한 카리스마였다.


우리 반에는 최근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adhd아동이 있고 내가 그 아이에게 3월 내내 눈을 떼지 못하느라 생긴 사각지대로 인해 학폭이 열리고 말았다.


학폭이 진행되는 동안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태권도 사범님 같은 사람이었다면 우리 반에 학폭이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내가 비록 체구가 작지만 예전 덩치 큰 6학년을 지도하면서도 꿀리는 것 없이 당당하게 지도했었는데 어린 망아지 같은 1학년들에겐 아무래도 시각적인 카리스마 덩치가 필요한 것일까.

두부처럼 순딩이같이 생긴 내 외모도 한몫하겠지.


아무튼 각 교실에 한 명, 아니 한 학년당 한 명이라도 교실 복도에 태권도 사범님 같은 분이 한 분 계시면 좋겠다.

무너져가는 교실에는 태권도 사범님이 필요하다.


나는 꿈꾼다.

다음 생에도 꼭 초등교사를 해야 한다면

마동석 같은 풍채와 외모로 태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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