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해서는 안되었을 골프
골프를 공부하는 것과 억지로 비교해 볼 수 있다면, 흔히 골프에서 말하는 백돌이는 중고등학생정도로 보면 될 것 같고 아주 간혹일지라도 싱글이라도 치면 대학생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이븐을 친다면 대학원생 정도나 박사과정에 있는 정도로, 언더파를 친다면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정도로 보면 어떨까 싶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골프를 하지 않아도 아무 지장이 없는데 요즘 사람들은 너도나도 골프를 한다. 학교가 그냥 좋아서 그냥 즐겁게 다니지 못하고 기어이 공부를 잘해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처럼 사람들은 골프를 그냥 하지 못하고 보다 더 잘해보려고 발버둥을 친다. 골퍼들은 네 사람이 한 차에 타고 골프장으로 가면서 골프 이야기를 하고 라운딩을 하면서 골프이야기를 하고 라운딩을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그날의 골프이야기를 한다. 골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골프에 미친 사람들을 욕하다가 자기도 골프를 시작하면 골프에 빠진다.
나는 두 딸과 함께 아프리카에 있다
골프 때문이다. 각각 중고등학생인 두 딸은 여기 마다가스카르에서 골프를 친다. 그냥 골프를 치는 것이 아니라 프로골퍼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멀고 먼 아프리카에서 말이다.
그간 우리 가족은 떠돌이 인생을 살았다
계획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었다. 다녔던 모든 나라에서는 아니었지만 머물렀던 나라들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했다. 모스크바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싱가포르에서도, 그리고 필리핀에서는 두 딸이 태어났다. 물론 한국에서도 태어난 아이들도 있다.
적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살면서 겪는 가장 큰 애로가 있다면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 군데서 오래 살지 못하고 옮겨 다니다 보니 그렇다. 그렇다고 그것이 꼭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애로라고 말한 것은 아이들이 자라서 생활하면서 애로를 느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간혹 들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가 외국에서 운영했던 작은 학교가 골프장 내에 있었기에 우리 가족은 우연히 골프를 시작했다. 나의 자녀들 중의 반은 그렇게 골프채를 들게 되었다.
둘째 딸 마리아는 12살, 넷째 딸 아도니아는 9살에 골프를 시작했다. 엄마의 고향 모스크바에 머물 때에 모스크바 국립 골프학교를 다녔다. 골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편입되면서 러시아는 국가스포츠정책으로 예쁜 9홀을 갖춘 골프학교를 열었다. 그 학교에서 가장 열심히 연습을 한 아이들이 마리아와 아도니아였다. 골프장 관리인은 학교가 문을 여는 아침부터 저녁에 정문을 잠그는 시간까지 연습하는 딸들을 보고는 이해하기를 힘들어했다. 두 딸이 하는 골프는 그들이 그저 생각하는 그런 골프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또 우리 가족은 또 이사를 했다. 우리 아이들의 나이는 그들이 태어나 이사를 했던 횟수와 비슷하다.
드디어 오랜만에 아이들은 아빠의 나라이자 그들의 낯선 조국인 한국으로 귀국하여 정착한 제주에서 각각 나이에 맞는 학교로 입학을 했다. 마리아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아도니아는 중학교로 입학을 했다.
아이들은 골프보다 학교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골프를 뒤편에 두고 학교생활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에 아도니아에게서 흔치 않은 병이 발견되었고, 마리아는 학교를 다니며 태권도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아도니아의 병은 깊었고, 다행인지는 모르나 두 아이는 골프와는 멀어지는 듯했다.
아도니아는 조울증을 판명받고 매주 한 번씩 대학병원을 다녀야 했고 마리아는 학교생활을 즐기면서 어느새 태권도 유단자가 되었다. 아도니아는 학교에 빠지는 날이 늘어났다. 딸이 다섯이나 되는 아빠인 나는 아도니아의 고통을 달래느라 다른 아이들에게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엇보다도 마리아와 아도니아가 그간 골프에 열정을 가지고 흘린 땀이 억울하고 지난날 골프로 인해 보낸 아이들의 짧지 않았던 시간이 아까웠다. 특히나 아도니아의 투병으로 인해 우리 가족의 삶은 흔들렸고 혼란스러웠다. 아도니아가 앓고 있는 병은 완치될 수가 없다는 담당 의사의 말은 절망의 나락으로 우릴 빠뜨렸다. 지난날 모스크바에서 아도니아가 골프시합에서 입상하여 받은 서랍 속의 상장과 메달을 보니 가슴이 저미었다. 단란했던 우리 가족의 행복은 겨울호수처럼 살얼음으로 덮여버렸고 우리 모두는 서로를 향한 말 수가 줄어들었다.
기적이란 게 있을까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만은 없었다. 다른 아이들의 삶에도 불씨를 꺼뜨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힘을 모아 기도하고 서로를 더 사랑하기로 했다. 누구나 아플 수가 있고 아도니아로 인해 온 가족이 힘든 것은 아도니아의 잘못이 아니라 단지 아도니아는 원치 않았던 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거라고 서로 격려했다.
다행히 아도니아는 기적적으로 조금씩 호전되었다. 그리고 아도니아는 다시 골프채를 만지작거렸다.
마리아, 다시 골프를 시작하면 안 되겠니
마리아는 단호했다. 학교 다니는 것을 너무 좋아했고 학교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여고생활을 사랑했다.
언제나 혼자서 골프연습장에서 골프채와 씨름하는 것을 싫어했다. 평소 착하고 얌전하고 순종적인 마리아는 골프이야기를 하면 늘 고개를 저었다.
떨어진 꽃도 아름답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꿈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꽃이 떨어진다고 나무의 생명이 꺼지는 것이 아니다. 나뭇가지에 붙은 꽃이 아름다웠듯이 떨어진 꽃도 아름답다. 올해만큼 예쁜 곳이 이듬해도 피어오르듯이 사그라진 꿈을 딛고 다시 또 다른 꿈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만 있다면, 죽지만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