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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영 Jan 20. 2022

모두 위를 올려다봐야 할 때

영화 '돈 룩 업' 리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다르게 해석할 방법이 있을까. 일부 관객들은 이 영화를 정치풍자의 성격이 짙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로만 본다. 전작 ‘빅쇼트’와 ‘바이스’ 등에서 현실 비판에 주력해온 감독 애덤 맥케이 특유의 풍자적 요소, 권력과 이익에만 탐닉하는 기업인들에 대한 묘사를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돈 룩 업(Don’t Look Up)’은 무엇보다 기후위기에 대한 영화다. 아니, 정확하게는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무지하고 무감각한 인류에 대한 비판이다. 애덤 맥케이는 ‘돈 룩 업’을 통렬한 현실 고발극으로 만들기 위해 그동안 그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가상의 장치를 등장시켰다. ‘혜성’이라는 메타포가 바로 그것이다. 이 영화는 혜성이라는 ‘당면한 위협’을 못 본 체하며 자기 잇속을 채울 궁리만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다.


 미시간주립대 대학원생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분)는 연구 중에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다. 그 혜성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게 된 기쁨도 잠시, 혜성과 지구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교수인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의 계산에 따르면 이 혜성은 정확히 6개월14일 뒤 지구와 충돌한다. 충격에 빠진 민디와 디비아스키는 이 사실을 신속히 정부에 알리고 해결책을 찾으려 분투한다. 그러나 정부는 마치 남의 지구 이야기인 양 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랜 검증 끝에 혜성과의 충돌이 반드시 일어날 일, 예견된 일임을 깨닫게 되지만, 이 사안을 어떻게 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에만 골몰하며 시간을 낭비한다.


 정부는 가까스로 핵을 장착한 무인기를 발사해 혜성의 궤도를 바꿔놓자는 해결방안을 찾는다. 마침내 무인기를 발사하는 날, 대기업 배시(스마트기기를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의 대표인 피터 이셔웰이 찾아와 발사를 막는다. 그는 혜성에서 엄청난 광물을 채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혜성을 분해해 지구로 떨어지게 만들어서 광물을 채취하려는 계획을 세운 참이다. 그런데 사실상 멸망을 막을 유일한 해결책이 사라져 버렸는데도 사람들은 이것을 당면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피터가 광물 채취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그 수익으로 폭넓은 복지를 실현할 것이라고 하자 여기에 현혹돼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늘어나기까지 한다.


기후 현실 그대로 반영한 풍자극  


 자, 여기까지 읽으니 어떤가? 인류가 기후위기를 대하는 방식과 너무도 닮아 있어 허탈한 웃음이 나오지 않는가? 얼마 전 개봉한 그레타 툰베리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떠올려 보자. 툰베리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머리 위로 떨어질 혜성을 막는 일이라고, 모두가 죽는데 돈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각국 정상들은 자기들의 이익만 계산하며 툰베리를 외면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를 비웃고, 나아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까지 했다.


 ‘돈 룩 업’엔 기후위기 역시 기술의 힘으로 너끈히 해결할 수 있다며 기술만능주의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 기후위기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며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펴는 사람들, 나아가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음모론에 가깝다며 폄하하는 사람들, 이 모든 상황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그대로, 그러나 아주 코믹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감독 애덤 맥케이가 그리는 미래는 어둡다. 그는 인류가 지금껏 그래왔듯, 최후의 순간에도 어떤 것도 반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상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그의 시나리오 속 지구는 끝끝내 종말을 맞는다. 두 시간 내내 껄껄 웃으며 이 영화를 봐 온 사람이라도 영화 속 종말 묘사마저 즐겁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지표면이 흔들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이 흐릿해지는 영화의 엔딩에선 엄숙한 기운마저 감돈다. 이 결말은 (인류의 지금 행태로 미루어보아)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감독은 이런 현실적인 묘사를 통해 기후위기에 눈감은 우리를 흔들어 깨움으로써 모두가 각성하고 변화하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돈 룩 업’이 인물들을 그리는 방식은 흥미롭다. 대통령과 그 비서실장, 배시의 CEO, TV 프로그램 사회자, 유명 가수 등 등장인물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캐릭터화되어 있는데, 역할들이 대표성을 띰으로써 현실 속 누구를 대입해 생각해도 무리가 없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이 영화의 웃음 포인트가 있다.(나라와 지구엔 눈곱만큼도 관심 없는 미국 대통령과, 수준 낮은 발언만 끊임없이 내뱉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보라!) 혜성에 대한 두려움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좋아요’와 구독자 수를 늘리려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 역시 민망할 만큼 현실적이다.(그렇다. 이 영화는 결코 결정권자들만 비판하지 않는다. 기후위기 앞에 놓여 있는 우리 모두를 조롱한다.)


한발 더 나아가지 못한 문제의식


 애덤 맥케이는 영화 중간중간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쇼트도 끼워놓았는데, 가령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모습이라든가, 인적이 뜸해진 거리를 동물들이 뛰어다니는 모습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식이 조금 더 깊어지지 못한 점은 아쉽다. 일례로 영화 속 인물들이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면서 자연산 연어와 양식 연어의 색깔을 비교하는 장면. 감독은 양식이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하려는 듯하지만, 당연하게도 자연산 연어(어업)를 먹는 것이 기후위기의 대응책이 되지는 못한다. 엔딩에서 식탁 위에 고기가 여러 접시 올라와 있는 모습도 문제적인데, 육식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배우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제니퍼 로렌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외에도 케이트 블란쳇, 메릴 스트립, 티모시 샬라메, 조나 힐 같은 걸출한 배우들이 등장해 저마다 빼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애덤 맥케이 특유의 속도감 있는 편집은 좌충우돌 우왕좌왕하는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딱 맞게 어울린다.


 그러나 상기한 모든 장점들은, 영화가 담고 있는 묵직한 메시지 앞에서 묻히고 만다. 우리는 지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가? 아니면 근거 없는 낙관론에 휩쓸려 올려다보기를 주저하고 있는가? 감독 애덤 맥케이의 시도가 ‘기후위기와는 상관없는, 그저 한 편의 재미있는 정치풍자극’으로만 읽히는 세상에서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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