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 리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아민’이 카메라 아래에 자리를 잡는다. 카메라는 누운 아민을 위에서 찍고 있다. 처음 누운 곳은 카메라의 한참 아래쪽. 아민의 얼굴이 화면에 제대로 잡히지 않자 감독(아민의 친구)은 조금만 더 위로 올라와 보라 주문하고, 그는 몸을 꿈틀댄다. 그러나 이번에 아민이 멈춘 곳은 지나치게 위쪽이어서 그의 이마가 앵글을 벗어나고 만다. 아민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가까스로 카메라에 가장 잘 나오는 위치를 찾아 정착한다. 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곳에 나를 멈춰 세우려는 노력. 어쩌면 그 노력이야말로 지금까지 난민으로서 아민이 해왔던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고 영화는 말한다.
아민은 편안히 누운 채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에 살던 아민의 어린 시절, 평화로운 시절로 되감긴다. 때는 1984년. 아프가니스탄은 사회주의 정권이 지배하고 있었고, 대도시는 소련의 지원을 받는다. 카불에 사는 아민은 유복한 가정에서 안정적인 유년기를 보낸다. 하지만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아버지가 어느날 비밀경찰에 체포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던 무자헤딘 세력은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소련군이 철수하자 전국으로 활동 범위를 넓힌다. 급기야 내전이 발발한다. 대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러시아로 피난을 떠나는데, 그중에는 아민의 가족도 있었다. 전쟁을 피해 스웨덴으로 망명한 아민의 큰형이 멀리서나마 가족들이 머물 곳을 마련한다. 큰형은 가족 모두를 스웨덴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밀입국 비용도 조달하려 애쓴다.
공산주의가 붕괴한 이후의 러시아는 삭막했다. 루불의 가치는 급락했고 마트엔 먹을 것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부패한 경찰 권력뿐. 경찰은 여권이 만료된 피난민들에게 돈이나 금품을 요구하고, 돈이 없는 여성들에겐 몸으로 때우라며 성폭행마저 일삼았다. 아민의 두 누나는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고 먼저 큰형이 있는 스웨덴으로 넘어간다. 오랜 기다림 끝에 엄마와 아민, 작은형의 차례가 오지만, 밀항 중 배에 물이 차면서 난민들이 타고 있던 배가 해양경찰에 발각되고 만다. 아민의 가족은 난민수용소에 오랜 시간 갇혀 있다가 다시 러시아로 돌려보내진다.
큰형은 이번엔 돈이 모이는 대로 한 사람씩 데리고 나오기로 결심한다. 아민은 우여곡절 끝에 홀로 밀입국에 성공해 덴마크에 도착한다. 브로커는 아민에게 가족이 모두 죽었다고 해야 하며, 여기까지 혼자 힘으로 도망쳐왔다고 말해야 한다고 일러둔다. 혹여 가족들이 살아있다는 것이 탄로나면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려보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려웠던 어린 아민은 이후로 평생을 가족이 없는 사람처럼 살게 된다.
존재를 도구화하지 않는 기록 방식
난민과 난민을 돕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난민, 난민화되는 삶’(갈무리 출판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삶을 침범하지 않는, 존재의 장소를 엿보고 감시하지 않는 비가시화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그 존재에 대한 모독이 되지 않는 그러한 기록은 가능할까? 어떤 관계 속에서?” ‘나의 집은 어디인가’를 보는 내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안에서 실존 인물들을 보호하며, 난민의 삶을 파헤치지 않고도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성공한다.
아민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는 여전히 두려우며 누군가를 전적으로 믿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신분이 들통나면 언제든 추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민의 오랜 친구인 감독은 그런 아민의 상황을 고려해 영화 속에서 실제 인물의 이름과 지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또 아민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묘사함으로써 그의 얼굴을 가리고, 오히려 더 진솔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
그림이 가지는 장점이 비단 이것뿐일까. 난민들이 자신들의 나라에서 탈출하며 목숨마저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 현장을 영상으로 남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민(들)의 기억과, 당시 아민(들)이 적어둔 기록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있었던 일을 극영화로 재현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타자의 취약성과 고통을 도구화(‘난민, 난민화되는 삶’)”하게 될 위험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의 조합이라는 이 영화의 선택은 난민들이 처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보호하는 최적의 방식인 것이다.
개별적 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앎
사회적 약자가 처한 상황을 알리거나 불합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데 효과적인 방식 중 하나는 개인에게서 출발하는 것이다. 개별적 개인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깊이 있게 들여다볼 때 역설적으로 모두의 어려움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역시 아민이라는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해 난민의 삶 전체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민이라는 개별적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앎을 제공함으로써 난민 전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아민은 전쟁 난민이면서 동시에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남성에게 성적으로 끌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두려워 그 사실을 입밖으로 낼 수 없었다. 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내기도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성소수자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지우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는 아민을 통해 난민 역시 단일한 집단이 아니며, 난민이면서 동시에 성소수자이거나 여성이거나 장애인인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상기시킨다.
영화 속 아민은 책임감이 강한 형 덕분에 아프간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고, 온 마음으로 존중해주는 가족이 있어 성소수자로서의 삶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난민이 아민과 같은 가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당면한 현실을 홀로 헤쳐나가야 하는 난민에게는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 2018년 6월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에 도착했다. 우리에게 난민은 더이상 먼 나라의 추상적 집단이 아니다. 집을 찾는 그들의 여정이 부디 너무 고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