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늑한 서재 Aug 14. 2022

브런치의 글들을 삭제했다.

- 저장 글을 깨끗이 비운 이유 

브런치에 저장된 글 열댓 편을 삭제했다. 후련하다. 사실 저장 글뿐 아니라 브런치를 통째로 없앨까 한 이틀 고민했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 어떤 가치가 있나? 강한 회의감이 들었다. 


나보다 글을 잘 쓰는 분들을 의식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훌륭한 작가들은 언제나 존재했고, 나는 좋은 글을 읽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이웃이 많아지면 좋겠다. 단순한 진심이다. 




가끔 손글씨로 쓴 일기장을 본다. 형편없는 생각들을 정성스럽게도 풀어놓았다. 일기를 쓸 때 약간의 결벽증이 발휘되는 것 같다. 필기감이 좋은 펜으로 또박또박 까지는 아니어도 가지런한 필체로 쓰려 노력한다. 


혼자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곧잘 우울이나 후회의 늪으로 빠져버리기 때문에 일기 내용은 엉망진창이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불만과 불안이 잔뜩 풀어져 있고, 사람들은 왜 그럴까? 류의 문단이 끝없이 이어진다. 결국 '당신들은 틀렸고' 내가 옳아. 나만 정상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 같다. 


하찮아서 견딜 수가 없다. 무의식이 이 모양인데, 좋은 글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가끔은 일기장에조차 쓰지 못한 밑바닥 생각들에 질려버릴 때도 있다. 이런 생각은 결국 자기비하로 이어진다. 우울이 깊어지고 식욕을 잃는다. 악순환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가급적 생각을 하지 말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혼자 한다는 생각이라는 게 죄다 쓸데없는 것들 뿐이다. 요새 들어 더 그러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생각이 자꾸 과거로 날아가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을 뻥뻥 차 올린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생각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것뿐이다. 최소한 집 정리를 하는 나는 지질한 생각 안에 갇혀있지 않다. 멀쩡하게 생산적인 일을 하는 나로 변신할 수 있다. 확실한 결과가 눈에 보이는 일을 하면 성취감이 밀려온다. 


나는 단일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의 나와 가족과 있을 때의 나, 친구와 있을 때의 나, 학생들과 있을 때의 내가 다르다. 간극이 좀 있는 편이다. 짧은 생각에 나는 '아이들과 있을 때의 나', '학생들과 있을 때의 내'가 가장 괜찮은 사람 같다. 


육아를 하지 않으면,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찌질한 나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게 뻔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결혼해 아이를 낳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며,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을 갖게 된 것도 스스로 칭찬할만한 일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같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는 선택에 달렸다. 나는 더 이상 찌질하고 궁상맞고 꼰대 같은 생각을 하는 내게 귀중한 시간을 내어주고 싶지 않다. 그걸 포장하는 일에도 매달리고 싶지 않다. 그런 가식 자체에 구역질이 난다. 요새 들어 더 그런 걸 보면 (더 에세이류의 글이 써지지 않는 걸 보면) 이제 가식조차 떨기 싫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청신호다.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으면 된 거 아닌가? 찌질한 나를 포장하려 노력하느니 글 따위 차라리 안 쓰고 말겠다는 나 자신이 조금은 대견하다. 




그러나 한 겹의 허위가 남아있다. 내 형편없는 일기를 공개하고 싶은데 '그것까지는~' 이라며 슬금슬금 뒷걸음치고 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좋은 사람이란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사람'쯤인 것 같다. 글이 어찌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지,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깨달음 하에 에세이를 쓰지 않기로 한다. 


단순하게 살자. 찌질해도 날 원망하지 말자. @  




 






매거진의 이전글 솔직하기 위해 필요한 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