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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에최 Dec 09. 2023

남자 없는 여자들

5. 남자 없는 여자들(3) - 여왕

모든 둘째처럼 이모는 자신의 언니이자 유일한 형제인 엄마를 바라보며 자랐다. 둘은 나이 터울이 적은 편이 아니라 같이 뒤엉키며 구르는 유년 시절을 보내지는 못했을 테지만 나이 터울이 크건 작건 알게 모르게 첫째가 둘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첫째들은 잘 모른다. 둘째들이 첫째들로부터 받는 영향력은 첫째들의 예상을 뛰어넘기 마련이다.      


짐작건대 이모는 엄마를 ‘할머니에게 선택받은 똑똑한 언니’로 바라봤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이모는 아주 사소한 것, 자신이 구매한 옷이 자신과 어울리는지, 부터 큰 일, 자신의 직장에서 생긴 인간관계 문제, 까지 엄마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는 이모가 엄마에게 열을 올리며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고 하나부터 열까지 의견을 묻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곤 했다. 엄마에게는 다소 부족한 활력이 이모에게는 있어서 엄마와 둘이 하면 심심한 일도 이모가 끼면 다이내믹해졌으므로 나는 엄마가 있는 곳에는 이모를 끼고 싶어 했다.


누군가가 매사에 나에게 질문하고 의견을 묻는 것이 굉장히 피곤하고 지치며 때로는 신경질이 나는 일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엄마는 자신에게 의존하는 이모를 괄시하면서도 언니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이혼하고 거의 매주 집에 오는 이모에게 엄마는 밥과 공간을 제공하고 때로는 반찬을 싸주었다. 그게 언니로서의 습관인지, 할머니의 유산인지 알 길은 없지만. 이모는 당연하게 그 모든 것을 받기만 했다. 마치 그 모든 것이 원점에서부터 존재했던 것인 마냥.


가기만 하고 오지는 않는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일방적인 관계가 종국에는 정리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게 가족이라면, 이야기가 좀 복잡해진다. 그래서 가족관계는 비틀리기가 참 쉽나 보다.  

   

엄마는 이모를 이기적이라며 비난하고 자신에게 의지하려는 이모와 거리를 두려고 하면서도 사사건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후견자적인 태도를 버리지는 못했다. 엄마의 말에는 지시어를 많았고 엄마의 어투는 점점 단정적이고 고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면서 자신의 당연한 권리인마냥 예측할 수 없는 신경질을 내고 대뜸 호통을 치기 일쑤였다. 날벼락을 맞은 이모는 걸핏하면 내 앞에서 신데렐라처럼 울었다.         


  

*     



엄마가 집안의 여왕으로 등극한 지는 꽤 되었는데 여왕의 권력은 점점 견고해져 갔다.

아마 그 권력이 정점이었던 시기는 할머니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쇠약해지고, 이모는 이혼을 하고, 내가 엄마집에서 숙식을 하고 있었을 때였을 것이다.

모두가 각각의 측면에서 엄마에게 의존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사실 여왕으로서 엄마의 지위가 굳건해지기 직전에 전임자인 할머니와 도전자격인 엄마 사이에 왕좌를 둘러싼 전쟁이 있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흔히 목격하게 되는 그런 광경이다. 늙은 권력자와 여기에 도전하는 젊은 피. 그 세계에서는 암컷을 누가 독차지하느냐를 두고 싸움을 일어난다.


우리집의 경우에는 곳간의 열쇠가 문제가 되었다. 아흔의 나이에 경미한 치매 증상이 있었던 할머니는 자신의 돈을 그것이 필요하다고 하는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했지만(그리고 여러 차례 나누어 주었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사실상 보호자인 엄마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던 것이다. 할머니의 재정에 대한 할머니의 결정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느냐가 다툼의 주제였으니, 이미 그 주제에서부터 승자와 패자가 갈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싸움은 격렬했다. 모녀지간의 싸움이라고 보기에는 더더욱 그런 면이 있었다. 차라리 부부싸움이라 했으면 이해가 될 법한 풀스윙의 고성과 극단적인 발언들. 엄마와 할머니의 새되거나 분노로 부르르 떨리는 고성이 충돌하기 시작하면 동생과 나는 조용히 모여 이 상황을 뒷담화 까기 시작했다. 묘하게 나는 할머니편, 동생은 엄마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이 악순환을 끊자고 다짐했다. 나에게 그 악순환이란 남자 없는 세계 속에서 우리끼리 지지고 볶는 것을 말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게 누군가와 지지고 볶는 일인데 그런 풍경을 집에서 보고 있자니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면 집에서 하도 목격하거나 경험해서 가장 피하고 싶은 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피비린내가 날 것 같은 싸움 끝에 왕관은 엄마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정이 찾아왔다. 엄마를 흔들림 없는 정점에 둔 삼각형 모양의 위계질서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다음 순서는 엄마와의 관계성으로 위치가 정해졌다.


당시 엄마집에는 같이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는데 엄마는 처음에 반려동물을 들이는 일에 반대하던 일이 무색하게도 함께 살기 시작한 그 강아지에게 애정과 정성을 쏟았다. 그 귀여운 강아지가 이상하게 할머니만 보면짖어대고 심지어 으르렁대며 이빨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오는 이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강아지가 졸릴 때 예민해 진다고 말할 뿐,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없어 보였다. 확실한 건 그 당시 엄마집에 세워진 위계질서에서 강아지가 할머니나 이모보다 위에 있었다는 점이다.  

    

절대권력의 통치는 흔들림 없는 위계의 안정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강한 압력에 대한 반동으로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는 불안정의 씨앗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돈을 벌기 시작하며 나는 엄마의 집을 나왔다. 엄마는 방도 많은 집을 놔두고 매달 꼬박 꼬박 월세를 내며 원룸에서 사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여왕의 권위에 작은 균열을 내는 행위라는 걸 엄마는 몰랐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여왕의 치하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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