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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베 Apr 21. 2024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음은 하지 못함과 같다

선택의 기준. 가치관.

여행의 시작


지난 3월 말,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총 3박 4일의 삶이 지난 1년의 삶보다 더 많은 인풋(Input)을 주었던 것 같다.

공항이 삿포로 근처에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삿포로에서 하루를 묵고 이후 모든 일정은 오타루 라는 작은 도시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타루는 운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소도시이다.

관광 명소인만큼 운하 근처에 가면 한국어뿐만 아니라 중국어/영어 등 세계 각국의 언어가 모두 들린다.

사람이 많은 곳이 싫기에 운하는 딱 한 번 아주 잠깐만 들리고 그 외 모든 시간은 오타루 시내에서 보냈다.


'순천만'에서 '순천'을 느낄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 방식은 간단하다.

관광지가 아닌 그 도시의 삶을 체험하는 것.

나는 순천이 고향이다.

순천은 자연생태습지인 순천만이 유명하고 매년 수많은 사람이 관광을 온다.

순천 사람인 나는 정작 순천만을 몇 번 가보지 않았다.

순천만에서 정말 순천을 느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곳엔 순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해외여행을 가도 관광 명소가 아닌 그 도시의 일상 속 장소를 둘러본다.

도서관, 서점, 동네 마트, 작은 음식점, 알려지지 않은 사찰, 학교, 놀이터 등.

그런 곳에 가면 그 도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솔직히 대도시가 아닌 이상, 하루면 이 모든 곳을 다녀올 수 있다.

하루면 모든 곳을 가보았으니 지겨워질 수 있지만 그다음 날부터 이 여행이 더욱 좋아진다.


모든 것이 새로운 곳에서 익숙함으로


첫째 날 에는 처음 가본 곳이니 길도 잘 모르고 어리둥절한 채로 길가에 서있는 순간도 많다.

당황해서 얼굴이 붉혀질 일도 벌어진다.


둘째 날부터는 어느새 이 도시의 길을 내가 안다.

저기서 우회전하면 어떤 가게가 있는지 머릿속에 그려지고

길을 건너 좌회전을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작은 놀이터가 있으며

오후 4시가 되면 서점에 중, 고등학생이 하교를 하고

만화책을 사러 서점에 온다는 것을 내가 안다.


그렇게 마치 내가 그 도시의 일원이 된 것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그들 속에 섞이는 그 순간의 기분이 좋다.


셋째 날이 되면 어느샌가 대부분의 길이 익숙해진다.

모든 길이 신기했던 첫째 날과 자신감이 넘친 상태로 다 알고 있다는 듯 길을 건너는 둘째 날과 달리

셋째 날에는 주변이 어느새 눈에 익어 길을 걸으면서 혼자 사고하게 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머나먼 여행지에서

스스로에 대해 깊게 생각하다 보면 이전에 하지 못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지금 이 순간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 근 1년 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좋아했던 산책/런닝 모두 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만 지냈다.

노력해봐도 밖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 여행을 오니 오타루라는 지역에서 하루에 약 2만 보씩 걸었다.

어떻게 한 순간에 사람의 행동이 변화할 수 있을까.

곰곰이 고민해 보았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이곳에 다시 오지 못한다는 것을 나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걷지 않으면 남은 인생동안 이 길을 걸을 확률이 매우 희박할 것이다.

지금 이 장소를 가지 않으면

거기서 마주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나와 평생 옷깃 하나 스치지 않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계속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던 것 같다.


넷째 날,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항철도를 타고 9호선으로 환승해서 집 앞 역에 내렸다.

매일 걸었던 그 길을 따라 집으로 향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남은 평생 동안 오타루의 그 길을 다시 걸을 수 없을까?

남은 평생 동안 오타루에서 인사했던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것이 불가능할까?


솔직히 불가능은 아니다.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하지 않는 것이다.


오타루에 다시 갈 돈이면 새로운 도시를 찾아갈 수 있으니까.

그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과 가게


횡단보도에 빨간불이 켜져 길 위에 멈춰 섰다.

바람이 세게 불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왼쪽에도 길이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굳이 집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니 걷지 않았던 길.

갈 수 있음에도 가지 않은 길이었다.

횡단보도가 파란색으로 바뀌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데 길가에 수많은 음식점과 술집이 보였다.

2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으나 가보지 않은 수많은 가게들이 보였다.

가볼 수 있지만 가지 않았던 수많은 가게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오타루의 그 길과 가게들 그리고 지금 내 옆에 있는 길과 가게들.

갈 수 있음에도 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묘하게 닮아있었다.


머리 위 벚꽃


하지만 정말로 갈 수 있음에도 가지 않는 것일까.

왜 가지 않을까.

오타루는 다시 가자니 돈이 아까워서라고 치자.

그럼 내 옆에 보이는 길과 가게는 왜 지난 2년 동안 가지 않았을까.

내면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니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한 것'이었다.


내 옆에 보이는 길을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한 것이다.

출퇴근에 지쳐 집으로 향하는 길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일에 에너지를 모두 사용해서 더 걷지 못한 것이다.

내 옆에 보이는 음식점, 술집은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한 것이다.

술을 좋아하지 않고 시끄러운 음악을 24시간 틀어대는

그 음식점과 술집은 앞에 있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였다.

내 성향상 그곳을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견디지 못하고 가지 못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다시 횡단보도에 서서 파란불을 기다리는데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머리 위 파릇파릇 피어나고 있는 벚꽃 잎을 보았다.

그 벚꽃을 보고 방금 했던 생각이 모두 정리가 되었다.


아마 여행 가기 전, 나였다면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바람이 불었더라도

땅바닥만 바라보고 이 벚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을 통해 마음속 여유가 생기니 그제야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못했다.

볼 수 있음에도 보지 않은 것은 보지 못한 것과 같다.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것은 하지 못한 것과 같다.


이후로 사소한 선택의 순간에도,

특히 하지 않는 결정을 내릴 때마다 물음이 항상 따라온다.

정말 하지 않은 것일까.


무언가를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것은,

사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모종의 이유로 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어떤 선택을 할 때,

특히 ‘언제든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에

무언가 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정말 하지 않은 것일까.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다시 한번,

눈을 감고 마음속 깊은 곳에 집중하고 느껴지는 감정에 집중해 본다.


이미 나 스스로 인지하고 있지만 마주하기 싫었던 그 이유와 원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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