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산어보'의 촬영지를 다녀와서
윤슬은 황홀하다. 반짝반짝 반사된 햇빛이 물 위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햇빛이 물에 닿는 부분에서는 기름이 물 위에서 튀듯 빛이 요란하게 움직인다. 생명 있는 곳에 필요한 빛과 물, 바람이 만나니 생동감이 넘쳐난다. 비금도로 가는 배편을 기다리다 바다 위의 아름다운 윤슬에 취해 지루함을 달랜다.
얼마 전 우연히 ‘자산어보’라는 영화를 보았다. 정약용의 형인 손암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해양생물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자산어보를 섬사람들과 부대끼며 완성해 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였다. 영화에 나오는 정약전의 집 배경이 인상적이었다. 바다가 훤히 바라다 보이는 언덕 위의 집이었다. 영화촬영지는 흑산도가 아니라 비금도 옆의 도초도였다.
비금도(飛禽島)에 도착하니 두 날개를 활짝 핀 독수리상이 선착장 옆에 우뚝 서 있다. 섬 전체가 비상하는 독수리 형상이라 해서 비금도다. 두 날개를 활짝 펴 하늘을 날아오르는 독수리가 섬에 펼쳐져 있는 셈이다. 독수리의 핏줄처럼 난 섬 길을 차로 달렸다. 섬이라 하지만 내륙의 여느 시골길처럼 산과 들이 펼쳐져 있고 누렇게 익은 벼들이 곳곳에 있다.
언어는 생각과 감정을 일으키고 개념화되어 머릿속에 형상화는 것 같다. ‘섬’이라는 단어에는 외로움과 고립, 자립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육지와 떨어져 고립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고 자립해야 살 수 있는 섬사람들에게 외로움은 늘 함께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섬’ 하면 안쓰러운 감정이 일어난다. 인간도 자립과 고립,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섬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섬을 찾아가는 또 다른 이유가 무의식 속에 있었나 보다.
내촌마을의 메쌓기로 된 돌담길을 거닐었다. 흔히 섬의 돌담이 그럴 듯, 큰 돌과 작은 들이 서로 지지하며 쌓아 올려 400년을 버티어 냈다. 엉성하지만 모진 바람과 시간 속에 견디어 낸 인간이 만든 또 다른 자연이다.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283호로 지정되어 있고 마을 사람들이 잘 보존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파란색으로 칠해진 지붕과 어깨 높이에 돌담으로 이어진 내촌마을은 깨끗하고 조용하다. 집들 사이에 있는 텃밭에서 푸른 배추가 풍성한 잎을 자랑한다.
때마침 밭을 일구고 있는 할머니를 마주한다. 200평 되는 밭을 쇠스랑 하나만 가지고 혼자 일구고 있다. 깔끔하게 잘 가꾸어져 있는 밭에 조만간 시금치를 심는다 한다. 비금도 시금치는 섬초로 알려졌다. 섬의 게르마늄 토양에서 해풍을 맞고 자라 달고 영양분이 풍부하다. 40대 중반 때 10평도 안 되는 주말농장의 밭을 한번 일구고 바로 포기했던 때가 떠올랐다. 연세가 많아 농사일이 부대낄 수 있지만 할머니의 체력과 생활력 앞에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내촌마을 옆쪽으로 난 길을 따라 하트해변으로 향한다. 어느 순간부터 길은 외길이다. 차가 마주 온다면 낭패이기에 마음이 불안해진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 보니 하트모양의 해안선이 보인다. 저 멀리 펼쳐진 푸른색 바다와 하트모양의 해안선이 함께 어우러진 멋진 광경이다. 보고 있으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것 같다. 자연은 그렇게 인간에게 서로 사랑하고 살라는 표식까지 만들어 보여준다. 사랑을 고백할 장소로 이 보다 더 좋은 곳은 없어 보인다.
해변으로 내려간다. 외길은 더욱 험하고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가고 있다. 순간 외로움을 넘어 무서움이 느껴진다. 머릿속에는 별별 생각이 떠오른다. ‘기름이 부족한데 아직은 괜찮겠지’. ‘여기서 타이어가 펑크가 나면 대책이 없는데....’ 이곳 사람들도 나처럼 섬 곳곳에서 이런 외로움과 무서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도착한 해변에는 여름 따라 떠나간 사람들의 발자국만이 고운 모래밭에 굳어져 있다. 갈매기도 없는 해안에 잔잔히 부는 바람과 파도 소리만 있을 뿐이다.
도화도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 자산어보 촬영지로 향한다. 멀리 언덕 위로 황토색 길이 나 있고 초가집 한 채가 보인다. 주변에 집이 없는 것을 보니 영화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었나 보다. 영화 속 장면들이 세트장 곳곳에 보인다. 아궁이 위의 솥단지를 놓고 문어를 고아 허약해진 정약전에게 먹이는 장면, 창대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 장면, 저 멀리 바다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정약전의 모습 등이 다시 그려진다.
뛰어난 학식과 벼슬을 가진 조선시대 사대부가 한 순간에 죄인으로 몰려 돌아올 날을 기약하지 못한 채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심정을 누가 알 것이며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정약전은 큰 사람이었다. 첫 유배지인 신지도를 떠날 때나 지금의 소흑산도에서 대흑산도로 옮길 때, 백성들이 길을 막고 가지 말라고 하며 몹시 서운해했다고 한다. 힘든 상황에서 백성들과 어울리며 덕망 높은 선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약전이 자사어보를 쓰기 위해 비린내 나는 생선을 만지며 관찰하고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한 창대의 비위를 맞추어가며 차곡차곡 정보를 얻어내 글을 써가는 장면이 스친다.
"자산의 해중어족(海中魚族)은 매우 풍부하지만 그 이름은 알려진 적은 적다. 마땅히 박물학자(博物學者)들은 살펴보아야 할 곳이다. 나는 섬사람들을 널리 만나보았다. 그 목적은 어보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사람마다 그 말이 다르므로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자산어보 서(序) 중에
오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손암은 자신을 내려놓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천한 백성들의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 낮은 자세로 연구하고 열정적으로 책을 썼다. 원래 잘 어울리는 성향이라 하지만 섬은 그분에게 바다까지 품을 수 있도록 더 큰 마음을 갖도록 해주었으리라. 외롭고 고립된 섬에서 자립하기까지 겪은 어려운 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우리네 삶도 나름의 고통과 괴로움을 짊어지고 살기에 그분의 큰 모습이 더욱 빛나 보인다.
바람을 쐬러 떠나온 길에서 한 생각을 얻어간다. 따갑게 내리쬐는 가을 햇빛 속에 시원한 바람과 파도소리만 아무도 없는 세트장 대청마루를 드나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