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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두 Mar 26. 2024

아빠에게, 스물다섯이 된 아들이

양육환경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부모님과의 추억이라고 할 게 딱히 없다. 오래된 서랍을 열어 어릴 적 사진을 살펴보지만 부모님과 ‘함께 찍은 나’를 발견할 수 없었다. 매우 어렸을 적 사진을 찍는 날이란 무엇인가를 기념하는 특별한 날이었다. 이를테면 입학식, 생일, 휴가 등. 그러나 그 특별한 날에 나는 늘 혼자이거나, 엄마와 함께였다.

 

 우리 아빠는 항상 바빴다. 내가 더 놀고 싶어 잠을 쫓는 10시나 돼서야 퇴근하셨고, 이른 새벽 5시에 출근하셨다. 그래서 우리 아빠에겐 주차문제란 전혀 개의할 필요가 없는 사건이었다. 왜냐? 가장 늦게 퇴근하니 늘 있는 일이었으며, 어차피 가장 빨리 출근하니 아무 곳에 차를 대놔도 사람들은 아예 몰랐으니 말이다. 이렇듯 동네에서 가장 먼저 눈을 감고, 눈을 뜨는 사람이었다.

 

 이리도 독하게 매일을 살아내는 아빠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었다. ‘내가 네 아빠니까, 내가 아버지잖냐’ 술에 취해 몸은 못 가눠도 입은 노상 같은 말을 되풀이하셨다. 고단한 삶이라 집에 오면 한탄과 욕을 쏟아 내시다가도 결국 마무리는 ‘아빠리즘’이었다. 속앓이를 할 수 없으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가정의 분위기를 어둡게 만드는 것이 너무나 싫어 나는 방문을 닫곤 하였다.

 

 아버지가 만든 어둠이 그늘이란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내가 18살쯤이었다. 그때 아빠 나이는 50. 제2의 사춘기, 갱년기가 찾아왔는지 최근 들어 기력이 쇠한 아빠였다. 아빠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거실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술로 달래며 수염을 만지작거리셨다. 그러곤 지금껏 본 적 없는 평온한 표정과 나지막한 어조 속에 말머리를 뱉으셨다. ‘우리 아버지는 말이야...’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단 한 번도 할아버지를 뵌 적이 없다. 심지어 사진으로도. 우리 엄마 또한 시집갈 때 안 계셨다고 하니, 그저 일찍 돌아가셨구나 짐작하며 살았을 뿐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 속에 태어나 개울 근처 초가집을 짓고 살던 아빠는 7남매 중 다섯째였다. 유년시절 아빠는 고무신을 신고 아버지(나에겐 할아버지)를 따라 지게를 지고 나무를 캐러 자주 산에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2시간을 걸어가 시장에서 할머니와 나무를 팔아다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20살이 되어서도 가난이란 기생충을 털어내지 못했고, 할아버지는 아빠가 군대에 있는 동안 돌아가셨다고 한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아빠는 두 여동생의 가장이 되어 살아야만 했다.(할아버지가 왜 돌아가셨는지와 이외의 상세한 가정사는 매우 충격적이라 밝히기 어렵다)

 

 이야기하는 내내 턱을 들어 코를 훌쩍이셨다. 고개를 내릴 때라곤 술잔을 채울 때뿐이었다. 나와 함께 밥을 먹는 중임을 잊으신 듯 한참을 독백하셨다. 나는 자리를 비켜주어 방안에 들어와 가만히 생각했다. 아빠가 자주 뱉었던 말, 지겹도록 반복하니 늘 그렇듯 흘려들었던 말. ‘내가 네 아빠니까, 내가 아버지잖냐’

 

 비로소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가난한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처절한지 몸소 겪어왔기 때문에 나를 지키고자 자신의 수면시간을 깎아왔던 것이다. 또한 찢어지게 가난한 인생 그 이상으로 참혹한 것, 내게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를 더욱 슬프게 만들까, 이불속에서 숨죽이고 눈물을 훔쳤다.

 

 그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어릴 적부터 잦은 다툼 탓에 원망만이 가득했던 내 마음엔 당장의 여유가 없었다. 내가 당시에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의 자유를 간섭하지 않는 것뿐. 아빠의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술에 절여진 모습을 어리석게 바라보았고, 담배와 함께 자신의 건강을 태우는 모습이 꼴보기 싫었지만, 이 마저 나무란다면 그는 하루를 버틸 수 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그의 건강을 방관하게 되었다.

 

 어릴 적엔 책가방보다 지게를 더 많이 짊어진 우리 아빠. 동시에 ‘가장’이란 책임감에 짓눌려 일찍이 어깨가 굽어버린 아빠. 지금은 나의 아버지가 되어 해보다 먼저 일어나시고, 해가 잠들면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신다. 그는 30년을 같은 패턴으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적응하거나 단련될 수 없는 삶에 놓여있다.


 환갑이 되면 일을 그만하고 싶다는 아버지. 그때가 오면, 나는 그이와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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